[와글와플 브뤼셀] 대변인에 꽃다발 안긴 EU 수장

연합뉴스 2024-11-30 08:00:18

'5년간 브리핑' 대변인에 감사인사…"앞으론 주말마다 안괴롭힐 것"

'2기 행정부' 출범 앞두고 프레스룸 깜짝 등장한 EU수장

(브뤼셀=연합뉴스) 정빛나 특파원 = '오 마이 갓!'(Oh my god)

28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 있는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프레스룸. 여느 때와 다름없이 정례브리핑을 하던 에릭 마메르 수석 대변인이 화들짝 놀라며 이렇게 외쳤다.

행정부 수반 격인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이 꽃다발을 들고 예고 없이 등장해서다.

'정오 브리핑'(midday briefing)이라고 불리며 평일 낮 12일 매일 같이 열리는 정례브리핑은 출입기자단들과 상시 소통하고 당일의 주요 일정을 안내하는 자리다.

마메르 수석대변인 주도로 업무 분야별 대변인 16명이 참석한다.

EU 고위 당국자가 정상회의 등 주요 계기에 나서는 기자회견과 비교하면 참석하는 출입기자 수도 많지 않고, 특별한 사안이 없는 한 이 자리에서 나온 발언이 기사화되는 경우도 많지 않다.

그런 현장을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이 찾은 건 이날이 현 집행부 체제하의 마지막 정례브리핑이었기 때문일 터다.

내달 1일부로 '폰데어라이엔 2기' 체제가 출범하면서 대변인실 인적 구성도 전면 개편된다. 이에 지난 5년간 'EU의 입'으로 역할한 이들에게 직접 감사 인사를 전한 셈이다.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지난 5년간 매일 아침 그날의 주요 뉴스를 브리핑받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고, 그것은 나의 일상에서 모닝커피처럼 필수적인 것이 됐다"며 "모든 대변인실 팀원들에게 진심 어린 감사의 뜻을 표하고 싶다"고 밝혔다.

마메르 수석대변인을 향해서는 "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 백악관 방문까지 당신은 나의 훌륭한 동반자였고, 극도로 부담이 큰 시기였다는 것을 잘 안다"며 "이 자리를 빌려 당신의 가족들에게 사과의 뜻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더는 주말마다 전화해 괴롭히지 않겠다고 약속한다"며 웃었다.

이날 정례브리핑 현장에는 이례적으로 마메르 수석대변인의 가족도 자리했다.

작년 7월 근무공로훈장 받는 나토 당시 대변인

2년여간 해외 특파원으로 일하며 기관장이 대변인의 공로를 치하하는 장면을 본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샤를 미셸 EU 정상회의(이사회) 상임의장은 작년 7월 EU-중남미·카리브해국가공동체(CELAC) 정상회의 공동회견에서 중남미 국가 정상들에게 양해를 구한 뒤 자신과 8년간 함께 일한 바렌드 레이츠 당시 EU 이사회 대변인의 마지막 기자회견임을 언급하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비슷한 시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옌스 스톨텐베르그 당시 사무총장은 오아나 룬제스쿠 당시 대변인의 사임을 앞두고 별도 환송 행사를 열고 '근무공로훈장'을 직접 수여하기도 했다.

반면 10년 넘게 한국의 정부부처·기관을 출입하면서는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풍경이다. 한국 관공서의 대변인은 대체로 운신의 폭이 좁고 종종 언론 대응 실패했다는 책임을 홀로 뒤집어쓰는 듯했던 적이 더 많다.

조직을 대신해 시민과 언론을 대면하고 '위기의 순간'을 함께 헤쳐 나간 이의 마지막을 꽃다발로 장식하는 모습이 그래서 더 특별해 보였을 것이다.

shin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