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가치 제고, 기업에 실익…美 80년대처럼 우리도 과도기 진통"
'고려아연 거버넌스 지적' 영풍도 주주 갈등…"자기 문제도 고쳐야"
소수주주 다수결제 등 도입 시급…"오너家도 고집만 부려선 득 없어"
(서울=연합뉴스) 김태균 기자 = 우리 경제가 '주주권익'과 '기업 거버넌스(지배구조)'라는 두 개의 키워드에 들썩인다.
정부가 주주환원 증대 등을 골자로 '밸류업(기업가치 제고)' 정책을 퍼뜨리고, 소수주주가 두산 등 재벌 오너가(家)에 맞서 거버넌스 개선 요구안을 내미는 사례가 잇따른다.
대기업 영풍[000670]이 사모펀드인 MBK파트너스와 손잡고 '거버넌스 쇄신의 계기를 만들겠다'며 영풍그룹 주력 계열사 고려아연[010130]의 경영권 분쟁에 뛰어든 것은 향후 한국 경영학 교과서에 실릴 만한 이례적 사건으로 주목받는다.
예전 '투기 자본'이라며 지탄을 받던 국내 사모펀드들이 최근엔 지배주주를 견제할 '메기'로 재평가를 받기도 한다.
이런 난맥상은 어디로 흘러갈까?
기업 거버넌스 전문가인 이창민 경제개혁연대 부소장(한양대 경영대 교수)은 주주와 회사 사이의 지금 혼란이 한국 경제의 다음 성장을 위한 진통이라고 강조했다.
이 부소장은 최근 서울 한양대 연구실에서 연합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주식의 저평가) 원인은 명백히 거버넌스 문제"라며 "후진적이고 일방적인 의사결정 관행을 고치고 주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게 하는 것이 우리 기업에 실익이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 부소장은 "자본시장이 발전하면 주주 행동주의가 나타나며 미국도 1980∼1990년대 사이 주주와 경영진 사이의 갈등이 극심했다"며 "미국도 원래 주주 친화적 나라가 아니었던 만큼 우리도 지금의 과정을 잘 헤쳐 나가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는 법제 개선이 없는 밸류업은 '반쪽'에 불과하다고 지적하며, 대주주 이해상충 문제가 있는 인수합병 등 사안에는 마이너 주주에게 의결권을 강하게 부여하는 '소수주주 다수결제'(MOM) 등을 도입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 부소장은 영풍 등 거버넌스 개편 움직임을 촉발한 시장 주체들의 의의를 높게 평가하면서도 쇄신에는 예외가 없다고 지적했다.
영풍은 최근 자사 소수지분을 보유한 자산운용사로부터 주주 정책 개선을 요구받고 있다.
그는 "영풍도 내부 거버넌스가 잘못된 것은 고쳐야 하며, 이를 게을리하면 후폭풍을 맞게 될 것"이라고 평했다.
이 부소장이 속한 경제개혁연대는 최근 영풍 석포제련소의 환경 오염에 관한 손해배상을 요구하며 영풍 일반주주들과 함께 회사에 대해 주주대표 소송을 시작해 주목을 받기도 했다.
다음은 이 부소장과의 일문일답.
-- 경제개혁연대가 영풍에 대해 주주대표 소송을 결심한 계기는
▲ ESG(환경·사회책무·지배구조) 경영을 얘기하며 회사가 환경에 피해를 준 것에 대해 주주들이 나서는 계기를 만들고 싶었다. 해외에서는 이런 환경 관련 소송이 꽤 있지만 국내에서는 그렇지 않아 상징적 의미가 크다고 봤다.
-- 영풍은 석포제련소가 이미 회사의 큰 위기라고 강조한다. 소송이 오히려 회사에 해를 준다는 지적도 나올 수 있을 것 같다.
▲ 소송이 경영진을 옥죈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주주가 외부에서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정당한 통로와 채널인 만큼 이를 막을 수는 없다고 본다. 소송은 이사가 회사에 끼친 피해를 복구하는 조처이기도 한 만큼, 회사에 도움이 된다.
--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은 어떻게 보는가
▲ 한국의 경영학 교과서에 실릴 사례다. 자본시장과 기존 경영진 간의 경쟁이 벌어진 것이다. 적대적 M&A(인수합병) 세력이라고 영풍·MBK파트너스 연합을 비판하지만 이들의 의의를 크게 봐야 한다. 미국 사례를 봐도 거버넌스 개선의 기폭제가 된 것이 이런 적대적 M&A다. 경영권은 보호의 대상이 아니다. 경쟁의 대상이다. 회사 운영을 잘 못하면 더 잘하겠다는 사람과 경합해야 한다.
-- 투자 주기가 5∼10년으로 짧은 금융 자본이 고려아연처럼 긴 투자가 중요한 제련 업종을 잘 경영할 수 있을 것이냐는 견해도 있다.
▲ 바이아웃 펀드(사모펀드)는 나중에는 기업을 팔아야 하며, 그 기간 내 기업 가치를 최대한 올려야 하는 만큼 단기적 시야로 운영할 수가 없다. 또 펀드가 직접 회사를 운영하는 게 아니다. 원래 그 회사에서 있었던 경영인에다 영입 인재를 뒤섞고 조화를 꾀한다. 그렇게 근시안적 시야로 운영했다면 과거 미국의 바이아웃 펀드는 이미 다 망했을 것이다.
-- 영풍도 주주가치 제고 요구를 받는다.
▲ 영풍도 거버넌스에 문제가 많다. 자사주를 많이 갖고 있고, 주가순자산비율(PBR)이 너무 낮은데 시장에서 버는 돈을 제대로 못 쓴다는 얘기다.
-- 영풍이 이 문제를 못 풀면 고려아연 사태에도 여파가 있을까
▲ 우선 경영은 MBK가 하는 걸로 되어 있다. 단 MBK가 고려아연을 정리할 때가 됐을 때 영풍이 다시 고려아연을 가져오려고 할 수 있다. 그럼 시장에서 반발이 클 것이다. 현재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에게 거버넌스가 나쁘다고 문제를 제기한 것 아닌가. '자기네 거버넌스를 저렇게 이상하게 했던 영풍이 다시 고려아연을 인수한다'며 후폭풍을 맞을 수 있다.
-- 주주권익 관련해 요즘 뉴스가 많아졌다
▲ 한국 지배주주들의 가장 큰 문제는 회사를 상장한 이후에도 이를 자기 개인 회사로 착각한다는 것이다. 국내에서는 주주들이 자기 권리에 관한 인식이 부족했다. 이에 대한 문제 제기를 안 했다. 자본시장이 발전하면 주주행동주의가 나타난다. 미국도 원래부터 주주 친화적이지 않았다. 미국 재계 단체가 주주권익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선언한 게 1990년대다. 1980년대까지는 미국 거버넌스가 지금 한국 상황과 같았다. 경영진이 자기 마음대로 했다. 미국에서도 그 당시를 경영진과 주주 간의 '갈등의 10년'이라고 표현한다.
-- MBK 같은 대형 사모펀드가 지배구조 개선을 얘기하는데 지금 상황을 어떻게 보나
▲ 국내 사모펀드는 미국 펀드의 노하우를 벤치마킹한다. 기업가치를 높이려면 매출을 높이거나 비용을 줄여야 한다. 그런데 한국은 법적으로 해고가 어렵다. 비용 효율화의 다른 길을 찾아야 한다. 왜곡된 거버넌스를 그래서 주목하는 것 같다. 예컨대 계열사 내부 거래만 고치더라도 비용을 크게 아낄 수 있다. 실익 때문에 사모펀드도 그렇게 움직이는 것이다.
-- 포괄적 주식교환이나 인수합병은 국내 소수주주가 제동을 걸 방법이 없다고 하던데
▲ 사실이다. 현재는 서한이나 여론 압박 외에는 방법이 없다. 주총에서 표 대결을 할 수도 없다. 소수주주 다수결제도(MOM) 같은 제도가 필요하다. 이익 상충 문제가 있는 사안에는 지배주주의 의결권을 일정 정도 제한해야 한다.
-- 행동주의 펀드가 '그린메일'(경영권 탈취를 빌미로 지분을 비싸게 파는 행위)로 일탈한다는 의혹도 있다. 그린메일 금지 규정을 만들어야 하는가
▲ 그린메일이 문제인 건 맞다. 단 법으로 금지하는 것은 제도적 경직성이 심해질 수 있다. 우리 자본시장이 아직 과도기라는 사실로 볼 때 이 사안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 우리 증시의 밸류업 프로그램이 미흡하다는 지적이 많다.
▲ 정말 반쪽이다. 지금 잃어버린 다른 반쪽이 바로 법 제도 개선이다. 상법에서 '이사 충실 의무' 조항을 도입하는 것이 끝이 아니다. 법 제도를 여럿 손봐야 한다. 우리 밸류업은 일본을 벤치마킹했다. 일본이 10년을 해온 사업인데 이중 최근 2년치만 떼서 '기업 자율'이라면서 강도도 낮췄다. 이런 조처가 잘 될까? 시장 반응만 보면 알 것이다.
-- 주주가치 제고와 관련해 우리가 특히 주목해야 할 사례가 있다면
▲ 지배주주가 바뀌어야 한다. 국내에서도 주주들에게 여론 조사를 해서 다수가 반대하자 합병을 철회한 경우가 있다.
-- 우리 재계에서도 가족 승계를 중단하고 회사를 사모펀드 등에 넘기는 경우가 나오고 있다. 이런 사례가 많아질 것으로 보는가
▲ 큰 재벌 중에서 그런 사례가 없을 뿐이지, 작은 재벌 중에서는 엑시트(투자 회수)한 경우가 꽤 있다. 가족 기업은 승계가 3∼5세대로 내려갈수록 리스크가 커진다. 1세대의 창업자 정신이 계속 온전히 갈 수 없다. 2세까지는 잘 버틸 수 있어도 3세대부터 리스크가 커진다. 이건 연구 결과로도 입증된 얘기다. 전 세계적 현상이다. 능력 있는 경영자가 회사를 맡아야 한다. 우리 경제를 위해선 엑시트 사례가 더 많아져야 한다. 가족 기업을 계속하려면 비주력 계열사는 매각하고 핵심 계열사만 갖고 가는 식으로 집중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
-- 상법 개정과 관련해 어떤 메시지를 던지고 싶은가
▲ 상법 규정은 선언적 의미다. 이거 하나 바꾼다고 소송이 늘지 않는다. 입증 책임이 주주에게 있다는 현실부터가 그렇다. 소송이 너무 힘들어 승산이 없는 것이다. 상법을 개정하면 1주 가진 주주도 소송한다는 얘기도 나오지만 이는 공포 마케팅이고 과잉이다. 입증 책임을 주주에게만 돌리는 지금 상황도 고쳐야 한다.
-- 회사는 누구의 것인가? 경영진은 누구를 위해 결정을 내려야 하나?
▲ 세계적으로 경영진은 주주를 우선으로 봐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가 등장하면서 그 범위가 넓어졌다. 더 나아가 직원, 소비자, 사회구성원 등 다른 이해관계자도 고려해야 한다는 원칙이 생겼다. 한국에서는 주주가 최우선이라는 말을 하고 싶다. 주주 권리가 아직 굉장히 낮기 때문이다.
-- 우리 증시가 바뀌려면 꼭 이뤄져야 할 일은 뭔가
▲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가장 큰 원인은 거버넌스 문제다. 남북 관계와 정치적 불안전성도 거론하지만, 실증적으로 데이터로 확인된 요인은 거버넌스가 유일하다. 남북 관계는 이미 우리 시장이 완전히 적응했다. 남북 간 큰 이벤트가 나도 주식 시장에 별 영향이 없다. 우리 주식이 저평가된 원인은 거버넌스 하나다. 법제를 바꿔야 하고 앞서 말한 것처럼 지배주주가 전향적으로 바뀔 때가 됐다. 아직도 옛날 말만 하고 너무 오래 버틴다. 이래선 실익이 없다는 걸 다들 알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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