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사법·자본시장법 위반 혐의 등 모두 무죄…검찰 "수긍 어렵다…항소 적극 검토"
재판부 "검찰도 수고했지만…소송 의미 뭔가…과학에 대한 사법적 통제 생각 필요"
(서울=연합뉴스) 한주홍 기자 = 골관절염 유전자치료제 인보사케이주(인보사) 성분 조작 관련 의혹으로 재판에 넘겨진 이웅열(68) 코오롱 명예회장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2020년 7월 기소된 지 4년여만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4부(최경서 부장판사)는 29일 약사법 위반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이 회장에게 1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코오롱생명과학 이우석 대표, 권순욱 코오롱티슈진 한국지점장, 양윤철 코오롱생명과학 상무 등에게도 모두 무죄가 선고됐다.
다만 이 회장의 주식 차명 거래 당시 명의를 빌려준 송문수 전 네오뷰코오롱 사장은 벌금 1천만원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검사는 피고인들과 코오롱 담당자들이 인보사 2액 세포의 기원에 착오가 있었다는 걸 상장 이전에 이미 인지했다고 봤지만, 제출된 증거만으로는 공소사실이 충분히 입증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어 "인식 시점은 제조·판매보다 늦은 2019년 3월 31일 이후로 봐야 한다"며 "품목 허가를 다르게 받고서 고의로 판매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안정성에 관한 부분을 속이고 판매한 혐의도 "2액 세포 기원 착오의 안전성 문제에 대해 검사가 객관적 자료를 제출한 바 없다"며 무죄로 봤다.
또 "미국 식품의약품청(FDA)은 사건이 불거진 이후 코오롱티슈진의 소명을 받아들여 인보사에 대한 (미국 내) 임상 3상 절차 재개를 허용했고, 올해 7월 환자 투약이 모두 마쳐진 사실이 있다"고 덧붙였다.
FDA로부터 임상중단(CH) 명령을 받은 사실을 숨긴 채 수출입은행으로부터 1천만 달러(한화 약 120억원) 상당의 지분투자를 받은 혐의도 무죄로 봤다.
재판부는 "검사는 피고인들이 1차 CH로 인해 인보사의 임상중단이 알려지면 신약개발 투자유치 및 상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해 조직적으로 은폐·은닉했다고 보고 있다"며 그러나 일부 문서를 빼면 조직적 은닉의 증거를 확인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실제로 1차 CH는 기소 훨씬 전인 2018년 7월 이미 해제됐다"며 "1차 CH로 인해 인보사의 미국 임상 진행에 현저한 차질이 발생한 것으로 보이지 않고, 1차 CH를 고의로 은닉·은폐했다는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코오롱티슈진을 코스닥에 상장해 약 2천억원을 유치하는 과정에서 허위 공시로 계열사 주가를 띄운 정황과 관련한 혐의도 회계처리기준을 위반했다고 명백히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 회장의 차명주식 보유와 관련해서는 "2019년에 사법적 판단이 이뤄져 확정된 바 있다"며 "이미 판단받은 것과 포괄일죄(여러 행위가 포괄적으로 하나의 죄를 구성) 관계에 있는 사안이라 면소 사유"라고 설명했다.
법원은 선고 말미에 이번 사건에서 생각해 볼 논점을 길게 언급해 눈길을 끌었다.
재판부는 "(인보사 사태에 대한) 우리나라와 미국의 조치와 진행 경과는 사뭇 다르다"며 "FDA는 사람에 미치는 영향과 안전성에 대해 과학적 관점에서 차분히 검토했고, 우려가 해소됐다고 보고 임상시험을 승인한 반면 한국에서는 품목허가 취소 후 현재까지도 그 처분의 강도를 다투는 행정소송이 진행 중이고, 형사재판이 수년간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대법원) 최종 판단이 이 법원 판단과 동일하다면 수년에 걸쳐 막대한 인원이 투입된 이 소송의 의미는 무엇이었는지, 과학 분야에 대한 사법적 통제는 어떻게 진행돼야 하는지는 깊이 생각해볼 문제"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국가형벌권의 행사라는 공적인 성격을 갖는 형사절차에서는 (재판 결과를) 승패 개념으로 볼 수 없다"며 "2019년 사회적 파장 이후 사건을 수사하고, 공소유지한 검사님들도 대단히 수고가 많았다"고 덧붙였다.
이 회장은 판결 후 "감사합니다"라고 짧게 답한 뒤 떠났다.
검찰은 입장문을 내고 "증거에 대한 평가, 관련 사건 진행 경과 등에 비춰 법원의 판단을 바로 수긍하기 어렵다"며 "판결문을 면밀히 검토한 후 항소를 적극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인보사는 사람 연골세포가 담긴 1액과 연골세포 성장인자(TGF-β1)를 도입한 형질전환 세포가 담긴 2액으로 구성된 관절염 유전자치료제 주사액으로, 2017년 국내 첫 유전자 치료제로 식약처 허가를 받았다.
하지만, 2019년 3월 인보사의 최초 개발사인 코오롱티슈진이 미국에서 임상 3상을 진행하던 중 애초 한국에서 허가받을 때 밝힌 성분과 실제 성분이 다름을 확인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2액을 만드는 데 사용된 세포가 허가받은 '연골세포' 대신 '신장유래세포(GP2-293)' 성분임이 드러났고, 식약처는 2019년 7월 허가를 취소했다.
이후 검찰은 이 회장을 2017년 11월부터 2019년 3월까지 인보사를 허가받은 성분과 다른 '신장유래세포' 성분으로 제조·판매해 160억원의 매출을 올린 혐의 등으로 2020년 7월 기소했다.
한편 인보사 성분 조작과 허위 서류 제출 등의 혐의로 별도 재판을 받는 코오롱생명과학 임원들은 1·2심 무죄를 받고 대법원 판단을 앞두고 있다.
코오롱생명과학은 식약처 품목허가 취소에 행정소송을 냈지만, 1, 2심에서 패한 뒤 상고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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