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한국 최성수 기자] 반복적인 특허소송으로 막대한 합의금이나 로열티를 요구하는, 이른바 해외 '특허괴물'의 공격으로부터 국내 기업을 보호할 수 있는 법안이 발의됐다.
특히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에서는 우리나라가 의약품 주권을 확보 및 강화할 수 있는 법적 장치가 마련될 것으로 평가하며 기대감을 모으고 있다.
법안 통과시 글로벌 제약사들의 특허 시비에 가로막힌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수혜를 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29일 국회와 제약바이오 업계에 따르면 지난 27일 김교흥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가전략기술 보호를 위해 특허심판에 전문심리위원과 기술심리관 참여를 의무화하는 특허심판 선진화법(특허법 일부개정법률안, 법원조직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특허심판 선진화법은 해외 특허괴물로부터 국내 기업의 피해를 막기 위해 국가전략기술 특허심판에 한해 전문심리위원과 기술심리관 제도를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았다.
국가전략기술은 외교·안보 측면의 전략적 중요성이 인정되고 국민경제와 산업에 미치는 영향이 큰 기술로 △반도체·디스플레이 △이차전지 △첨단 이동수단 △차세대 원자력 △첨단 바이오 △우주항공·해양 △수소, △사이버보안 △인공지능 △차세대 통신 △첨단로봇·제조 △양자 등12개 분야로 분류된다.
전문심리위원과 기술심리관은 과학, 의학 등 기술적 전문성이 요구되는 재판에 참여해 자문이나 의견을 제시하는 전문가다. 전문심리위원은 법원 외부, 기술심리관은 내부 소속이라는 차이가 있다.
현재 국내에서는 특허심판의 전문성을 보완하기 위해 두 제도를 시행하고 있지만 참석이 의무가 아닌 탓에 활용이 저조하다는 한계가 있다.
실제 지난 3년간 전문심리위원이 활용된 사례는 26건에 그쳤다.
김 의원은 “기술패권경쟁시대에 국가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국가전략기술을 세계적인 기업이나 특허괴물로부터 보호할 필요성이 크다”며 “일부 글로벌 기업이 후발주자를 견제하기 위해 고의로 특허 분쟁을 일으키는 사례도 있는 만큼 선진화법을 통해 전문성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국내 법이 유독 해외사의 특허를 과도하게 보장한단 점이 문제로 꼽힌다.
여러 기술이 적용된 의약품 분야 특성상, 단순히 특허법 외에도 각종 의학적 지식을 요구한다. 국내 사법 및 행정 기관이 이를 해석할 전문지식이 부족해, 현행 특허법만 기준으로 판결을 내렸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특허분쟁이 사실상 법관들의 판단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데 이들이 첨예한 기술적 사안을 파악할 수 있는 전문성을 갖췄다고 보기는 힘들다.
고도로 첨단화된 기술 분야의 경우 재판부의 기술 이해도가 재판 결과는 물론 기업의 존폐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전문가의 참여가 필수다.
실제로 국내와 해외 특허법원에서 동일한 사안에 대해 서로 다른 판단을 내리면서 피해를 본 국내기업의 사례도 다수 발생했거나 진행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나 이제 막 걸음마를 떼고 도약을 앞두고 있는 국내 제약·바이오 산업의 특성상, 기술 선점 기업에 가로막혀 새 약품을 가질 권리를 박탈당한 채 해외 기업에 의존하는 현실이 고착될 수 있다.
반면, 주요 선진국에선 의약품 분야 법률 해석의 전문성을 높여 특정 제약사가 후발주자 시장 진입을 저해한 사례를 견제해왔다.
유럽의 경우 지난해 유럽통합특허법원(UPC)을 개원하고 기술 경력과 자격을 갖춘 이공계 출신 기술 판사가 특허 분쟁을 담당하도록 하고 있다.
UPC는 특허권 소송의 본안 결론을1년 내에 내리는 것이 목표다. 하지만 국내에서는2021년 기준 본안 처리에 평균 554일이 걸렸다.
제약바이오업계 관계자는 "최근 국내에서 개발된 신약 기술에 대한 글로벌 제약사들의 특허 공세가 심화되고 있어 특허심판 기관들이 전문성을 확보하는 것이 시급한 문제"라며 "제약 바이오 분야에서 국가 경쟁력이 될 기술을 적극 보호할 수 있도록 특허심판 제도의 정책적, 제도적 보완이 이뤄지길 희망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