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계획적 범행 죄책 매우 무거워…반성 없고 유족에게 사과 안해"
(부산=연합뉴스) 김선호 기자 = 채무 탕감과 사망 보험금을 노리고 고교 동창을 필리핀에서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40대 남성에게 무기징역이 선고됐다.
부산지법 형사6부(부장판사 김용균)는 28일 강도살인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하며 법정구속했다.
보험계약서 위조에 가담한 혐의(사기미수 등)로 함께 기소된 보험설계사 B씨에게는 징역 1년을 선고했다.
검찰 공소사실을 보면 A씨는 2019년 친한 고교 동창 C씨에게 연 6∼8% 이자를 주겠다고 속여 6천만원을 빌린 뒤 갚지 않았다.
A씨는 C씨의 변제 요구를 받자 평소 알고 지내던 보험설계사 B씨와 공모해 대필 등의 방법으로 서류를 위조해 C씨 명의 생명보험을 들고 사망 수익자로 자신의 이름을 기재했다.
2020년 1월 C씨와 단둘이 필리핀 보라카이로 여행 간 뒤 숙소에서 향정신성의약품인 졸피뎀을 탄 숙취해소제를 먹여 의식을 잃게 하고 질식시켜 살해한 혐의를 받는다.
C씨는 애초 자연사로 숨진 것으로 보고 필리핀 현지에서 화장됐다.
A씨는 C씨가 숨진 뒤 보험회사에 사망 보험금을 청구하고 지난해 1월 부산지법에 보험회사를 상대로 사망보험금 약 6억9천만원 지급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재판부는 A씨에게 적용된 강도 살인, 사기, 사기 미수, 사문서위조, 위조 사문서 행사 혐의를 모두 유죄로 인정했다.
경제적 어려움을 겪던 A씨가 애초 빚을 갚을 의지나 능력 없이 고율의 이자를 주겠다고 큰돈을 빌려 갚지 않았고, 사망보험금 수익자가 자신이라는 사실을 숨긴 채 C씨 명의 생명보험에 가입한 것도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이번 재판의 쟁점은 직접적인 살인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A씨 강도살인 혐의가 인정되느냐였다.
재판부는 피해자 C씨가 건강상 이상 징후나 지병이 없었고 사망 당일 술에 많이 취하지 않은 점, 졸피뎀 치사량이 1천정이라는 점 등을 고려했을 때 자연사나 돌연사 가능성은 작다고 봤다.
결국 재판부는 피해자 사망 원인 중 가장 유력한 것은 A씨 살인 가능성이며 그 죄가 인정된다고 밝혔다.
근거로 A씨가 C씨 사망 직후 한 진술의 일관성과 합리성이 없고 유족을 만날 때 구체적인 말을 아끼거나 유독 사망에 대한 질문을 극도로 회피하는 점, C씨 몸에서 경부 압박 소견이 없더라도 코와 입만 막는 질식사 가능성은 배제하기 어려운 점을 들었다.
평소 수면제로 졸피뎀을 복용해온 A씨가 졸피뎀 투약 시 어떤 반응이 나타나는지 잘 알았고, C씨 사망 4일 만에 B씨에게 사망보험금 청구를 부탁하고 화장 확인서, 사망 증명서를 준비한 것도 적시했다.
재판부는 A씨는 C씨가 사망할 경우 6천여만원의 채무가 면제되고 최대 7억원의 사망보험금을 받을 수 있는 점, 허위 공정증서 등으로 C씨의 원룸 보증금 반환 등 약 1억2천만원의 이익을 기대할 수 있어 살인 동기도 충분하다고 봤다.
재판부는 "A씨는 유족에게 거짓말 연습까지 하며 허위 공정증서에 대해 채무변제를 독촉하고 실제 민사소송을 제기하는 등 재산적 이익 취득에 매우 골몰했다"며 "C씨 사망 이후 '보라카이에 다시 가고 싶다"는 등 절친한 친구를 잃은 사람으로 보기 힘든 행태를 보였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A씨는 피해자 재산을 가로채고 채무 면탈 목적으로 계획적으로 피해자를 유인해 살해했고, B씨와 공모해 보험 서류를 위조한 뒤 보험금을 청구하는 등 죄책이 매우 무겁다"며 "그런데도 A씨는 반성하지 않고 유족에게 사과하지 않았다"고 무기징역 선고 이유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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