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데콧상 차호윤 작가 "전래동화 접하며 한국인 정체성 인식"

연합뉴스 2024-11-29 08:00:36

'2024 부산국제아동도서전' 참석…"미국선 아이들에게 책 쥐여주는 법 고민"

'2024 부산국제아동도서전' 참석한 차호윤 작가

(부산=연합뉴스) 황재하 기자 = "주로 제가 경험한 강연은 사서나 어린이 도서 전문가들이 대상이었는데, 여기선 아이들이 뛰어노는 소리가 들리는 게 너무 좋네요."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미국 칼데콧상 영예상을 받은 그림책 작가 차호윤은 지난 28일 부산 벡스코에서 기자들을 만나 '2024 부산국제아동도서전'에 참여한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이날 개막한 도서전에서 작가와의 만남 행사에 참석한 차 작가는 "어떤 이야기를 해야 좋을지 잘 몰랐는데, 다들 너무 따뜻하게 제 이야기를 들어주셨다"며 밝은 표정을 지었다.

행사는 '칼데콧상 수상자 차호윤을 만나다'라는 제목으로 진행됐다. 차 작가는 자기 작품에 관해 설명하고 그림책 작가로 성장하게 된 배경을 이야기했다.

그는 "강연(작가와의 만남)을 마쳐서 내일부터는 도서전에서 좋은 책들을 찾아다니며 사심을 채울 예정"이라고 했다. 그는 도서전 마지막 날인 12월 1일 오전 한국을 떠날 계획이다.

'2024 부산국제아동도서전' 차호윤 작가와의 만남

차 작가는 미국인 작가에게만 수여하는 칼데콧상을 받은 유일한 한국인이다.

미국으로 이주한 한국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한국과 미국 이중국적자로 초등·중학생 시절 몇 년을 한국에서 공부한 것을 제외하면 대부분을 미국에 살았다.

그런 그가 그림책 작가가 된 것은 어린 시절 잠들기 전 부모가 읽어줬던 그림책의 영향이 컸다. 부모는 한국에서 가져온 전래동화 전집으로 책장을 빼곡하게 채우고 자기 전에 항상 읽어줬다.

특히 그는 어린 시절 그림책 '갯벌이 좋아요'를 읽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미국 텍사스주에 살면서 갯벌이라는 개념 자체를 잘 몰랐는데, 부모님이 '진흙에서 바다 생물들이 사는 생태계'라고 설명해주셔서 마치 갯벌이 마법의 세계처럼 느껴졌다"고 말했다.

한국의 그림책을 읽은 경험은 자연스럽게 한국인으로서 정체성을 인식하는 계기가 됐다. 차 작가는 "부모님이 책을 읽어주시던 그때부터 한국을 향한 애정과 관심이 생긴 것 같고, 제 뿌리가 한국이라는 것이 각인됐다"고 설명했다.

'2024 부산국제아동도서전' 차호윤 작가와의 만남

그에게 칼데콧상과 아시아·태평양 미국문학상을 안겨준 수상작은 지난해 미국에서 출간되고 올해 9월 한국에도 번역 출간된 '용을 찾아서'(영어 제목 'The Truth about Dragons')다.

이 작품은 한 소년이 두 가지 용을 찾아 떠나는 이야기를 다룬다. 동양과 서양의 용이 서로 다르게 묘사되는 데서 착안한 이야기로, 서로 다른 두 용은 동양인과 서양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암시한다.

'용을 찾아서' 작화를 맡은 차 작가는 이야기를 집필한 중국계 미국인 줄리 렁 작가의 원고를 읽다가 눈물을 터뜨렸다고 한다. 작품 속 소년을 안내하는 할머니가 "너는 두 세계 모두를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하는 대목에서다.

차 작가는 "저희 부모님은 한국분이고 저는 미국 내에서 동양인이 많지 않은 지역에서 자랐다"며 "정체성 문제는 개인적으로 숙제처럼 느껴졌는데, 제가 만약 아이일 때 '두 세계 중 하나를 고르지 않아도 된다'는 이 글을 읽었더라면 많은 위안을 받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2024 부산국제아동도서전' 차호윤 작가와의 만남

미국에서 성장기 대부분을 보내고 그림책 작가가 된 차 작가에게 미국 사회가 아동도서를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지도 물어봤다.

그는 "사서나 교육자들, 그리고 아이들을 키우는 양육자들(부모)이 동화를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고 실제로 학교에서 동화를 이용해 가르치는 일이 많다"며 "예를 들어 동양의 12간지라는 개념을 동화로 가르치는 사례도 봤다"고 떠올렸다.

차 작가는 "(미국 사회가) 단지 책을 사서 서가에 보관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어떻게 책을 쥐여줄 수 있을지 고민하는 부분이 인상적"이라고 덧붙였다.

jae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