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권자와 결혼 서두르는 경우도…"중범죄 전과자 먼저 추방될 수도"
불법이민 가장 많은 캘리포니아주 '생추어리' 선언…"가만히 있지 않을것"
(로스앤젤레스=연합뉴스) 임미나 특파원 = 불법 이민자 대거 추방을 공언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내년 1월 20일 취임을 앞두고 미국 내 한인사회도 정책의 향방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미국에 거주하는 한인들 대부분이 영주권 등 합법적인 체류 신분을 보유하고 있지만, 일부는 여러 사정으로 영주권을 아직 받지 못해 불법 이민자 신분인 경우도 있어서다.
트럼프 당선인은 선거 기간 불법 이민자를 범죄와 실업률, 집값 상승 등 사회 문제의 근원으로 지목하고서 당선되면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군대까지 동원해 대규모로 추방하겠다고 공약했다.
미국에 불법 체류 중인 한국인의 수는 그 특성상 정확한 통계는 없으며 추정치만 있는데, 그마저도 최신 자료는 없고 기관별 추정치의 차이도 크다.
미 국토안보부 통계실의 올해 4월 발간 자료에는 미국 내 불법 이민자(추정치 기준)의 출신국이 10위인 중국까지만 나와 있으며, 한국은 10위 안에 들지 않았다.
이 자료에서 중국 출신 불법 이민자 추정치가 2022년 기준 21만명인 것에 비춰 보면 한국 출신 불법 이민자의 수는 21만명보다는 적은 셈이다.
국토안토부 통계실이 2018년 발표한 자료에는 2015년 기준 불법 이민자 출신국 순위에서 중국에 이어 한국이 8위로 올라 있다. 당시 한국 출신 불법 이민자 수는 23만명으로, 미국의 전체 불법 이민자(1천196만명) 중 약 2%를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하지만 뉴욕에 있는 비영리 단체 이민연구센터(The Center for Migration Studies, CMS)의 추정치는 이보다 훨씬 적다.
이 단체에 따르면 2022년 기준 한국 출신 불법 이민자 수는 12만9천758명으로, 출신국별 순위로 13위 수준이었다.
이 단체는 국토안보부 통계실과 마찬가지로 미 인구조사국의 '미국 사회 조사'(American Community Survey, ACS) 표본(약 300만가구) 자료를 토대로 추정치를 도출하지만, 이에 더해 조사 대상자의 직업 등을 토대로 합법적 신분일 가능성이 있는 사람의 수를 빼는 '논리적 편집' 절차를 추가한다고 설명했다.
미국에서 한인들이 가장 많이 사는 로스앤젤레스(LA) 주재 총영사관은 27일(현지시간) 미국 내 한국 출신 불법 이민자 수에 대한 연합뉴스의 질의에 "공식 통계는 없다"고 밝혔다.
이민 관련 전문가들은 트럼프 당선인의 말처럼 모든 불법 체류 이민자 추방이 즉각 현실화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본다.
LA에서 활동하는 이민법 전문 김덕균 변호사는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트럼프가 군대까지 동원하겠다고 했지만, 미국 이민법상 군대를 동원해 불법 이민자를 추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게다가 캘리포니아주와 LA 같은 도시들은 '생추어리'(sanctuary, 피난처·보호구역이라는 뜻)를 선언하고 불법 이민자 추적에 협조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연방 정부가 이들을 찾아내기도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캘리포니아주(州) 정부는 2017년 경찰이 사람들에게 이민 신분을 묻거나 연방 이민 단속 활동에 참여하는 것을 금지하는 생추어리 법을 제정해 현재까지 시행 중이다.
민주당의 잠룡으로 꼽히는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지난 7일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앞으로 주 정책을 뒤집기 위한 소송에 나설 것을 대비한 추가 법률 자금 지원을 주 의회에 요청할 것이라면서 "캘리포니아에서 소중히 여기는 자유가 공격받으면 가만있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하기도 했다.
미 국토안보부 자료에 따르면 캘리포니아주는 미국의 모든 주 가운데 불법 이민자 인구가 가장 많은 지역으로, 2022년 기준 전체 불법 이민자(추정치 1천99만명) 중 약 4분의 1인 260만명이 거주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LA시는 2019년 비슷한 내용의 행정지침을 발표해 시행해 오다 최근 시의회에서 '생추어리 시티'(피난처 도시) 조례를 제정해 통과시키면서 이를 법적으로 명문화했다.
김 변호사는 "LAPD(경찰)는 누군가를 체포하거나 구금했을 때 체류 신분을 절대 물어보지 않게 돼 있고, 체류 신분만으로는 체포하지 않는다는 정책을 펴고 있다"며 "이는 샌프란시스코나 뉴욕도 마찬가지"라고 전했다.
하지만 중범죄 기록이 있는 경우에는 미 연방수사국(FBI)이 해당 기록을 모두 보유하고 있으며 연방 정부가 사회보장번호(SSN) 등을 통해 이들의 주소를 추적할 수 있고 우선적으로 추방을 시도할 수 있다고 김 변호사는 설명했다.
트럼프의 불법 이민자 강제 추방 엄포에 미주 한인 사회는 대체로 긴장하는 분위기다.
특히 아직 영주권을 받지 못하고 신청을 준비 중이거나 절차를 진행 중인 한인들의 걱정도 크다.
김 변호사는 "시민권자와 결혼을 준비 중인 상황에서 (트럼프 정부의) 추방 우려 때문에 영주권을 빨리 신청하려고 결혼을 서두르는 경우도 있다"며 "영주권 신청이 일단 접수된 상태에서는 어느 정도 보호받을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절차를 서두르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LA 한인회에서는 '불법체류 청년 추방 유예'(DACA) 제도를 통해 체류 중인 한인 청년들이 피해를 볼 것을 우려하며 관련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DACA는 어린 시절 부모를 따라 미국에 왔다가 합법 체류 신분을 취득하지 못한 이들이 추방을 면하고 취업할 수 있게 한 제도로,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인 2012년에 만들어졌다.
미 이민정책연구소(MPI)에 따르면 2012년 기준 DACA를 즉시 적용받을 자격이 있는 한국 출신 청년의 수는 4만4천명이었으며, 2015년 3월 말 기준 한국 출신의 DACA 신청자 수는 9천명이었다.
스티브 강 LA한인회 수석부회장은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DACA로 체류 중인 한인 등이 향후 얼마나 영향을 받을지, 어떤 대책이 필요한지 등에 대해 내부적으로 논의 중"이라며 "아직은 조 바이든 정부가 두 달 정도 남아있기 때문에 최대한 현 정부에서 해줄 수 조처를 해달라고 백악관에 요청했다"고 밝혔다.
또 "트럼프 정부에서 실제로 강제 추방 정책을 시행할 경우 그 영향을 최소화할 방안을 모색할 것"이라며 "한인회뿐만 아니라 여러 아시아계 단체들과 함께 협력해 항의를 표현하는 시위 등을 진행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min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