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조성진 기자] 오랜만에 상큼하고도 아찔한 앨범이 나왔다.
그간 K팝 여성 보컬에서 듣기 힘든 기술적으로 최고봉의 수준과 표현의 영역이다.
‘상큼’과 ‘아찔’은 함께 할 수 없는 어휘지만 태연이 지난 18일 발매한 미니 6집 [Letter to Myself]를 접한 첫 인상이 이랬다.
태연의 곡을 꾸준히 들어온 사람이라면 미니 6집에서 낮익은 이름도 볼 수 있는 반면 그렇지 않은 이름도 있을 것이다.
‘153/줌바스’가 타이틀곡 ‘Letter To Myself’를 비롯해 ‘Hot Mess’, ‘Strangers’, ‘Disaster’ 등 무려 4곡을 썼다. 153/줌바스는 현재 K팝씬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작가그룹 중 하나다. 6곡 분량의 미니앨범에 4곡이나 참여할만큼 ‘153/줌바스’는 SM엔터테인먼트와 긴밀하게 공조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볼빨간사춘기’ 소속사로 유명한 쇼파르엔터테인먼트 여성 듀오 ‘스웨덴세탁소’의 최인영‧왕세윤은 ‘Blur’를 작사했다. 또한 애플뮤직 ‘엡 넥스트 코리아’ 아티스트로 선정된 바 있는 싱어송라이터 한로로(한지수)는 ‘Blue Eyes’ 작사로 참여했다. 한로로는 태연 전작인 미니5집 [To.X]에서도 작사가로 함께한 바 있다.
이전에도 그랬듯 이번에도 해외 작가진 다수가 작곡에 참여했다. 특기할만한 사실은 영국 런던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가수 겸 작곡가 사라 워렌(Sarah de Warren)만 빼곤 모두 미국의 작곡가 프로듀서가 주를 이룬다는 것이다.
타이틀곡 공동 작곡가 디노는 태연의 ‘Heaven’ 작곡에도 참여한 낮익은 이름이다. 레나 러브리스 레나 러블리스, 니아 러블리스, 케이시 모레타 등은 LA의 여성 팝록 밴드 ‘헤이 바이올렛’에서 함께 활동한 멤버들이다.
‘Hot Mess’의 작곡자 라즈 프린시패토는 두아 리파와도 작업한 유명 프로듀서 겸 작곡가다. 에스파, 라나 델 레이, 바네사 윌리엄스, 레이첼 플래튼, 데미 로바토, 에이브릴 라빈 등과 작업한 챈트리 존슨은 ‘Blue Eyes’ 공동 작곡가에 이름을 올렸고, 라이언 폴스는 미국 컨트리음악계에서 유명한 키스와 애드리언 폴스의 아들이다. 제이콥 콜리어 밴드 투어 멤버로 함께한 린지 로미스는 ‘Strangers’ 작곡에 참여했다.
‘Blur’는 애틀랜틱, 아일랜드, 소니 등 여러 레코드사와 작업한 버클리 음대 출신의 마이크와 브루클린의 믹싱&마스터링 엔지니어 겸 프로듀서 닉 스퀴란테가 함께했다. 80년대를 풍미한 미국의 팝스타 팻 베네타의 9장의 오리지널 앨범에 참여한 유명 드러머 마이런 그롬바허의 딸 지지 그롬바허가 ‘Disaster’ 작곡에 참여한 것도 눈에 띈다. 지지 그롬바허는 (여자)아이들, 있지, NCT U 등 여러 K팝 스타와도 작업해 국내에도 친숙하다.
2023년 11월 공개한 [To. X]에 이어 1년 만에 나온 새 앨범 [레터 투 마이셀프]는 첫 곡 ‘Letter to Myself’부터 ‘Disaster’까지 상큼하게 진행하는 와중에 곳곳에서 감각을 뒤흔드는 아찔함이 지뢰처럼 터져 나온다. 아찔함의 절정은 ‘Blur’다.
태연 미니6집 [Letter to Myself]는 전작 [To. X]와 마찬가지로 일렉기타가 흐름을 이끌어가는 방식엔 변화가 없지만 음악적으로 더욱 다양한 시도로 깊게 들어갔다.
사진='Letter to Myself' 뮤직비디오 캡처앨범 [To. X]에선 대중적 어법 중에서도 일반화된 표현을 많이 사용한 반면 [Letter to Myself]에선 대중적 어법을 견지하면서도 더욱 높은 수준의 보컬 세계를 구현했다. ‘더욱 높은 수준’이라고 표현했지만 어쩌면 미니 6집 [Letter to Myself]는 ‘지존’을 넘어 ‘극락’급으로 갔다고 해도 좋을 만큼 놀라운 영역이다. 그리고 태연의 이러한 수준은 가히 독보적이다. ‘Hot Mess’의 후렴구인 “일그러지는 Oh~”나 “온통 헤집어 Oh~”, 그리고 ‘Blur’에서 들을 수 있는 아찔한 발성은, 단지 고음을 기술적인 수단(임팩트)으로 잠깐 내보이는 게 아니라, 초고음은 가장 멋진 멜로디 라인으로도 승화될 수도 있다는 예를 보여준다. ‘태연’의 이러한 초고음은 머라이어 캐리의 소위 ‘돌고래 발성’, 즉 인간이 내는 소리라곤 믿을 수 없을 만큼 파격적인 것과는 또 다르게 여린 듯 강하고 부드러우며 아름다운 톤과 울림이다. 그래서 더 아름답고 아찔했다. 음악계 대표적 ‘집순이’로 알려진 태연이지만 그 시간동안 음악에 얼마만큼 많은 피와 땀을 쏟아부었나 알 수 있게 한다.
그리고 이건 결코 차력이 아니다. [레터 투 마이셀프] 전곡의 중요한 표현 방법론 중 하나가 고음의 미학, 좀 더 높은 음을 멜로디컬하고 아름답게 감동적인 영역으로 끌어 올리는 시도다. 쉽게 말해 남들이 하지 않는 더 어렵고 많은 노력이 필요한 다른 방식의 표현을 선택한 것이다. 그래서 더 신선하고 상큼하다. 노래 하나의 특정 부분에 잠깐 등장하며 “이래도 놀라지 않겠느냐” 식의 보여주기가 아니라 미니6집 [Letter to Myself]에서 일관되게 흐르는 테마인 셈이다. 이러한 예술적 시도를 ‘차력’이란 단어로 표현하는 건 아티스트에 대한 존중이 아니며 불쾌하게 들릴 수도 있다.
미니 6집을 들으며 왜 ‘Blur’를 타이틀곡으로 하지 않았을까 궁금해진다. 물론 어디까지나 취향의 문제일 수 있지만.
[레터 투 마이셀프]는 전체적으론 전작 [투 엑스]를 잇는 진행이지만 그럼에도 새로운 시도와 강렬한 임팩트를 많이 보여주고 있는 앨범이란 점에서 ‘Blur’의 아찔함이 6곡 중에선 대장 격이라 느꼈기 때문이다.
서빛나래 동아방송예술대 실용음악 보컬 교수는 타이틀곡 ‘레터 투 마이셀프’에 대해 “태연이 국내에서 팝록 장르를 가장 잘 표현해내는 여가수임을 입증하는 곡”이라고 했다. 서빛나래 교수는 “꽉 차 있는 악기들을 뚫고 나오는 힘있는 태연의 진성과 고음이 잘 담겨 있다”며 “이 곡에서 태연은 팝록 장르 곡이 주는 에너지를, 굳이 거칠어지지 않아도, 단단하고 명료한 톤과 딕션으로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표현해 낼 수 있음을 입증하고 있다”고 평했다.
김기원 보컬트레이너 겸 정화예대 실용음악 교수는 “‘Letter to Myself’는 서정적 분위기 속에서 강렬한 록 사운드를 편안하게 묻어냈다”고 했다. 김기원 교수는 “곡의 아웃트로에서 디스토션이 걸린 기타 배킹으로 사운드를 증폭시키는 대신 신스를 사용한 점은, 록의 강렬함은 가져가지만 그동안 지향해왔던 팝 느낌을 유지하기 위함이란 느낌을 받았다”며 “전작 ‘To. X’에서 보여준 음절 수가 많은, 빠른 리듬의 가창 플레이는 이제 태연만의 스타일이 돼, 장르는 다르지만 묘하게 겹쳐 보이며 반가움을 준다”고 말했다.
오한승 동아방송예술대 실용음악 보컬 주임교수는 “최근 글로벌 팝 씬에선 보컬의 복합적인 창법 구사가 중요한데, 이는 유연함과 단단함의 비율과 농도를 조절할 수 있는 가수의 역량이 중요하기 때문이며 매우 감각적인 영역”이라고 말하며 타이틀곡 ‘Letter to Myself’를 높게 평가했다. 오한승 교수는 “후렴에서 태연의 소프트 벨팅은 곡의 내용 전달력을 극대화시킨다”며 “그간 태연의 곡 중 자전적인 내용의 가사 중에서 듣는 이의 귀와 가슴을 찌르고 들어올만큼 가장 진솔하다. 그동안 아이돌에서 솔로 아티스트로서 우뚝 서게 되는 개인 서사가 파노라마처럼 느껴져서 뭉클했다”고 말했다.
오한승 교수는 또한 “‘Hot Mess’와 ‘Blur’는 극강의 최고음을 너무나도 편하게 보여주는 곡인데, 이제 태연은 자신이 가진 모든 테크닉을 후련하게 다 보여주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오 교수는 “‘Hot Mess’의 후크 부분에선 돌고래 소리 또는 휘슬 보이스(whistle voice)라고 부르는 팔세토를 여리게 품어서 유연하게 슬라이드 다운으로 흘러내려오는 표현이 너무 귀를 간지럽히듯 잘 표현했고, ‘Blur’에선 이 팔세토를 뒤쪽 두성으로 목을 더 열고 드라마틱하고 크게 표현했다”고 평했다.
그리고 오한승 교수는 “보통 최고음 팔세토는 휘슬처럼 소리가 얇고 볼륨이 작게 나는데 이를 목을 더 열어 마치 성악가처럼 콘트롤 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놀라울 뿐이다. 이는 목 상태가 매우 건강하고 깨끗해야만 가능하기도 한데 그만큼 태연의 자기관리 능력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덧붙였다.
눈부신-brilliant로 표현하고 싶다- 신작 [Letter to Myself] 관련 내용은 오는 12월 스포츠한국 ‘조성진의 가창신공’에서 계속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