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방의 동의 없는 성적인 접촉은 당연히 성폭력에 해당한다"
"교제폭력특별법 제정해 엄중 처벌해야"…김도연 데이트폭력연구소장
[※ 편집자 주= 김도연 한국데이트폭력연구소장의 인터뷰 기사는 분량이 많아 네 차례로 나눠 송고합니다. 이번이 세 번째 기사로, 연인 간 성폭력을 다뤘습니다. 생활 통제와 정서적 폭력을 담은 첫 번째 기사는 지난 11일 [삶] "누굴 유혹하려 짧은치마냐? 넌 처맞아야"…남친문자 하루 400통[http://www.yna.co.kr/view/AKR20241101078500546?section=search]이라는 제목으로 송고됐습니다. 물리적 폭력을 다룬 두 번째 기사는 지난 18일 [삶] "애인이 내 머리털 모두 잘랐다…내가 남들 앞에서 잘 웃는다고"[http://www.yna.co.kr/view/AKR20241109035500546?section=search]라는 제목으로 송고됐습니다. 네 번째 기사는 다음 주 후반에 나가는데, 연인을 대상으로 하는 사이버 폭력과 교제 폭력의 구조적 문제 등을 다룰 예정입니다. [삶]은 자서전적 인터뷰여서 개인적 내용이 많이 들어갑니다.]
(서울=연합뉴스) 윤근영 선임 기자= 대학원생 커플이 있었다.
남자가 먼저 사귀자고 해서 연애가 시작됐다. 남자가 지나치게 집착하자 여자는 고민 끝에 헤어지자고 했다. 격분한 남자는 때리고, 옷을 벗기고, 사진을 찍었다. 그러고는 성폭행했다. 여자는 피해를 입은 후에 신발도 신지 않고, 알몸 상태로 집 밖으로 뛰쳐나왔다. 여자를 보고 놀란 행인들이 경찰에 신고했다.
김도연 한국데이트폭력연구소장이 지난 4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전한 교제 폭력 가운데 성폭력의 사례다.
김 소장은 "연인 간에도 성폭력이 발생한다"면서 "헤어지자고 했다는 이유로 성폭행하고, 폭언과 폭행을 한 뒤 화해하자면서 성적(性的)으로 유린한다"고 했다.
그는 "어떤 사람은 자기 친구들과의 술자리에 여친을 불러놓고는 가슴을 만지고 강제로 키스하기도 한다"면서 "본인은 사랑이라면서 과시하는 것일지 모르지만, 명백한 교제 성폭력에 해당한다"고 했다.
김 소장은 연인으로부터 성폭력을 당했다면 빨리 경찰에 신고해야 한다고 했다. 이런 사람과의 관계는 재고의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그는 "교제 폭력을 근원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교제폭력특별법을 제정해 가해자들을 엄중히 처벌해야 한다"면서 "교제 폭력 전수조사를 통해 그 심각성을 파악하는 일도 진행돼야 한다"고 했다.
김 소장은 대학 학부에서 심리학을 전공했고, 대학원에 진학해서 임상심리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2014년 한국청소년자살예방협회를 창립해 정서적으로 힘든 청소년들을 도왔다. 2016년에는 한국데이트폭력연구소를 만들어 교제 폭력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상담과 지원을 하고 있다.
<김도연 소장의 인터뷰 1차 기사 요약>
-[삶] "누굴 유혹하려 짧은치마냐? 넌 처맞아야"…남친문자 하루 400통[http://www.yna.co.kr/view/AKR20241101078500546?section=search](11월11일 송고)
"너는 도대체 아이큐가 얼마냐", "너는 처맞아야 정신 차린다", "네 주제에 어디서 나 같은 사람을 만날 수 있겠니", "저번에 보니까 너의 부모도 가방끈이 짧은 것 같더라", "입술은 누굴 유혹하려고 진하게 칠했냐"
이는 교제 폭력 가운데 생활 통제와 정서적 폭력의 사례들이다. 교제 폭력은 교제 시작 단계, 교제 중, 이별 후에 발생하는 모든 폭력을 말한다. 심리적, 정서적, 언어적, 물리적, 경제적 폭력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어떤 사람은 하루에 욕설 문자를 300∼400통씩 보내기도 한다. 부재중 전화도 수백통씩 쌓이니 피해자의 일상이 마비된다.
경제적 착취도 교제 폭력 중 하나다. 돈을 빌려달라고 하고는 갚지 않는다. 연인에게 신용카드를 달라고 해서 그걸로 생활을 유지하는 사람도 있다. 금융기관 대출이나 사채를 이용해서라도 돈을 마련해달라고 한다.
정서적 폭력, 언어적 폭력 단계에서 피해자가 이별하지 못하면 살인을 포함한 물리적 폭력을 당할 수 있다. 이별할 때는 단독으로 행동하지 말고 가족과 친구 등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고 전문가와 상담하는 게 좋다.
<김도연 소장의 인터뷰 2차 기사 요약>
-[삶] "애인이 내 머리털 모두 잘랐다…내가 남들 앞에서 잘 웃는다고"[http://www.yna.co.kr/view/AKR20241109035500546?section=search](11월18일 송고)
교제 폭력 가운데 물리적 폭력은 다양하다. 여자가 늦게 귀가한다는 이유로 발길질하고 쓰러트리고는 목을 조르면서 다리미로 지지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야구방망이나 골프채로 연인을 마구 때리고, 식칼을 집어 던지기도 한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잘 웃고 상냥하게 군다는 이유로 여친의 머리털을 모두 잘라버리는 사람도 있다.
물리적 폭력을 당한 경험이 딱 한 번만이라도 있으면 빨리 헤어져야 한다. 다시는 그런 짓을 하지 않겠다고 하늘에 맹세하더라도 그걸 반복할 가능성이 높고, 심하면 살인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교제 살인은 잔인하다. 발이나 손으로 때려서 장 파열 등으로 숨지게 하기도 하고, 칼로 여러 번 찌르기도 한다. "내 소유였던 사람이 감히 나를 버리다니. 네 인생을 모두 망쳐놓겠다"면서 증오에 불타오른다. 이별을 통보받았을 때 상대방뿐 아니라 그 가족들까지 죽이는 일도 종종 일어난다.
다음은 김도연 소장과의 3차 인터뷰 기사 일문일답.
-- 본인은 한국데이트폭력연구소를 운영하기 전에 한국청소년자살예방협회를 창립했는데, 그 협회는 어떤 일을 하나.
▲ 나는 2013년부터 6년간 그 협회 회장을 맡았다. 전국의 외진 곳에도 다니면서 지원활동을 했다. 학교 선생님들은 전문가가 아니어서 정서적으로 불안한 아이들을 봐달라고 요청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나는 그 아이들을 대상으로 심리치료도 하고 자살 예방 교육도 했다.
-- 우리나라 청소년 자살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가운데 1위인데,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 학업 스트레스가 주요 원인 중 하나다. 한국 학생들은 심한 입시 경쟁으로 정신적 고통을 많이 겪는다. 자녀들이 집에서 정서적 지지를 충분히 받지 못하는 것도 그 원인 중 하나다. 유교적 가부장 문화 영향 때문인지, 한국 부모들은 자녀들과 대화하는 시간이 많지 않다. 대화 내용도 주로 학업에 관한 것이다. 그러니 자녀가 갖고 있는 진짜 고통을 부모들은 잘 모른다.
-- 본인은 한국청소년자살예방협회 이후에는 교제 폭력에 집중했는데, 주로 어떤 계층의 사람들이 이런 폭력을 저지르나.
▲ 거의 모든 직업군에서 일어난다. 정치인, 의사, 연예인, 변호사, 기업인, 프로 운동선수 등도 교제 폭력의 가해자가 되기도 하고 피해자가 되기도 한다. 성직자가 신도와 교제하다 폭력을 행사하는 일도 있다. 교제 폭력 피해자를 돕는 전문가 역시 교제 폭력을 당하기도 한다.
-- 교제 폭력을 하는 사람들의 연령대는 어떻게 되나.
▲ 거의 모든 연령대에서 일어난다. 70대 이상의 노인도 교제 폭력의 가해자 또는 피해자가 되기도 한다.
-- 사랑하는 사람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이유는 뭔가.
▲ 연인을 소유의 대상으로 보기 때문이다. 이는 집착이어서 생활 통제와 정서적 폭력으로 이어진다. 심해지면 살인을 포함한 물리적 폭력으로 확대된다. 영유아 시절에 억압받았던 욕구를 연인에 대한 폭력으로 충족하려는 심리적 측면도 있다.
-- 그들은 성격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들인가.
▲ 정신적으로 불안증이 있고 공감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인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런 성향은 기질적으로 타고나는 측면이 있다. 후천적으로는 어린 시절, 부모님과의 애착 관계 형성에 문제가 생겼을 가능성이 있다. 예를 들어, 엄마가 자기를 두고 떠난 뒤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았다면 어른이 돼서도 연인이 자기를 버릴 가능성에 불안해한다. 그걸 '유기 불안'이라고 한다.
-- 심리학적 분류로는 어떤 사람들이 교제 폭력을 많이 저지르나.
▲ 성격장애(personality disorder)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자기중심적이며 감정 통제가 안 된다. 공격성과 충동성을 조절하지 못한다. 대인관계도 좋지 않다. 성격장애는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기에 교제 초기에 파악이 어려울 수 있다. 상대방의 통제나 지배, 폭력성에 대한 세밀한 관찰이 필요한 이유다.
-- 교제 폭력은 동성 간에도 발생하나.
▲ 우리 연구소에 상담하러 오는 사람들의 10%는 동성 커플이다. 동성 간에도 남성 위치에 있는 사람과 여성 위치에 있는 사람이 있다. 대체로 남성 위치에 있는 사람이 파트너를 공격한다. 외양상 아주 여성적인 사람이 남성 위치에서 폭행하는 일도 있다.
-- 동성 간의 교제 폭력 양태는 이성 간의 교제 폭력과 다른가.
▲ 때리고, 목 조르고, 물건을 던지는 행태들이 비슷하다.
-- 동성 간 교제 폭력 사례가 있나.
▲ 여성A-여성B 커플이 있었다. 어느 날 B가 남자를 사귀기 시작했다. 그는 양성애자였는데, 일종의 외도를 한 것이다. A는 그걸 알고는 B에게 사귀는 남자와 헤어지라고 했다. B는 그럴 수 없다고 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에 B는 그 남자와 결혼하기로 했다. 결혼 전날 밤 A는 B의 집 앞에 찾아와서 난리를 피웠다. "이대로는 못 헤어진다. 나는 억울하다. 너의 신랑한테 동성애 사실을 알리겠다"고 협박하면서 소동을 벌였다. 그 바람에 B의 부모도 자기 딸이 동성애를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A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B의 결혼식 당일에 신부 대기실에 찾아와서는 또 한 번 난리를 피웠다. 그 부모는 A에게 돈을 주면서 합의를 시도했다. B의 부모는 "정말로 미안하다. 내 딸이 그냥 잘 살게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 남성-남성 커플의 경우, 피해자가 물리적 힘이 있는데도 교제 폭력을 당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 상대방이 심리적으로 억압하기도 하고, 공포를 주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내 말을 듣지 않으면 우리의 동성애 관계를 주변 사람한테 알리겠다"고 협박해서 파트너를 지배하는 경우도 있다.
-- 연인 사이에서도 강간에 해당하는 성폭행이 발생한다는데, 여기서 말하는 성폭행의 개념은 무엇인가.
▲ 상대방의 동의 없이 강제적으로 성관계하는 것을 말한다. 친밀한 관계에서 성폭행당하면 트라우마가 더 클 수 있다. 누군가를 신뢰하기 어렵고, 세상 전반에 대한 불신이 생기기 때문이다. 연인 사이라고 하더라도 성관계를 할 때는 동의를 구해야 하는 이유다.
-- "성관계를 하겠느냐"고 직접적으로 물어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인 듯한데.
▲ 그래도 동의를 구해야 한다. 예를 들어, 상대방이 호텔에 들어가는 데 동의했다고 해서 성관계에 합의한 것으로 간주하면 안 된다. 그 사이에 상대방의 생각이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호텔에 들어온 뒤에도 성관계에 대해 동의하는지 또다시 물어야 한다. 성관계 도중에도 상대방이 성관계를 거부하면 멈출 수 있어야 한다. 상대방을 존중한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 맞다.
-- 성관계 도중에도 상대방의 의사를 확인해야 한다는 것인가.
▲ 예를 들어, 키스했다면 그다음 단계로 넘어갈지 여부에 대해 물어봐야 한다는 뜻이다. 상대방이 키스나 스킨십 정도만 원하고 그 이후 단계는 원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키스에 동의했으니 모든 성행위를 해도 된다고 생각하면 파트너의 의사에 반(反)하는 성관계가 될 수 있다. 그게 성폭력이다. 일부 남성은 호텔에 같이 가거나, 1박 2일간 여행을 함께 하면 여자가 성관계에 동의했다고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여자의 마음은 다를 수 있다. 법정에서 종종 다툼이 일어나는 이유다.
-- 자신의 애인을 강간 수준으로 성폭행하는 사람도 있는데.
▲ 수치심을 주기 위한 것이다. 자기가 힘에서 우위에 있고, 말을 안 들으면 이렇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그런 짓을 한다. 연인에게 폭언과 폭행을 하고는 화해하는 차원이라면서 강제적으로 성행위를 하는 사람도 있다. 이것도 성폭행이다. 그렇게 하면 갈등을 비롯한 모든 게 풀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인데, 성에 대해 완전히 잘못된 통념이다.
-- 공공장소에서 연인을 성폭행하는 사람도 있다고 하던데.
▲ 다툼을 벌이다 공중화장실, 공원, 대학교 강의실, 어두운 골목, 불 꺼진 상가 건물 등으로 끌고 가서 성폭행하기도 한다.
-- 다른 형태의 공개적 성폭력 사례가 있다면.
▲ 대학생 커플 남자 A와 여자 B가 있었다. A는 동성 친구 C와 승용차로 국내 여행을 가는 길에 여자친구 B를 동반했다. 세 명이 함께 가는 여행이 됐다. 친구 C가 운전했고 남자 A와 여자친구 B는 뒷좌석에 앉았다. 얼마 후 A는 여친의 상의를 모두 벗기고 추행을 시작했다 운전 중인 친구가 백미러로 이를 보다가 "그만하라. 내 차에서 지금 뭐 하는 짓이냐?"고 했지만 A는 멈추지 않았다. C가 "계속 그럴 거면 차에서 내리라"면서 화를 내자 A는 그제야 중단했다.
-- 친구들 앞에서 성추행하는 등의 행위에 대해서는 거부 의사를 분명히 밝혀야 하는 것 아닌가.
▲ 연인이 그런 행위를 하면 뿌리칠 수 있다고 일반적으로 생각하는데, 그게 쉽지는 않다. 보는 사람이 많은 상황에서 저항하면 '애인이 민망해하지 않을까?', '더 상황이 나빠지는 것은 아닐까?'라는 걱정이 들기 때문이다. 피해자가 그 상황을 대충 무마하는 쪽을 선택하는 이유다. 그렇지만 분명히 말해야 한다. 상대방이 원하지 않는 성적 접촉을 해오면 단호하게 거부 의사를 밝혀야 한다. 자기가 신뢰하는 친밀한 사람이 자신을 성적 욕망의 대상으로만 생각해서 그런 행위를 하면 당연히 중단하라고 해야 한다.
-- 이러니 연애를 두려워하는 사람이 적지 않은 듯하다.
▲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연애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연애 시도조차 하지 않으려는 사람들도 있다. 반면, 남자를 범죄자로 취급한다면서 불쾌해하고, 여성에 대한 혐오 수준을 높이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교제 폭력 피해자가 항상 여성인 것만은 아니다. 남성이 피해자인 사례도 꽤 있다. 물론, 모든 연애가 교제 폭력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다.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연인들이 대부분이다. 일부에서 폭력이 발생하는 것이다.
-- 안전한 연애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 이미 언급했지만 교제 폭력 초기에 나타나는 생활 통제, 정서적 폭력 단계에서 빨리 헤어져야 한다. 사람이 갖고 있는 폭력성과 공격성은 쉽게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성폭력을 당했다면 경찰 신고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증거 자료 확보에도 노력해야 한다. 신고하고 싶지만 입증 자료가 없어서 못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 연애 중인 남녀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 연애에서 1순위는 수용과 존중이다. 상대방이 살아오면서 형성한 가치관을 받아들이는 수용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라고 하면서 자기중심적 태도를 갖고, 자기만 생각하면 원만한 연애가 어렵다. 수용 능력은 키우기 나름이다. 노력하지 않으면 변화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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