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권 참여 펀드 '파죽지세'…유통·렌터카·비철금속 등 업종 불문
회사 체질·자본효율 개선 순기능 vs 단기수익 우선 '약탈적 투자' 논란 계속
(서울=연합뉴스) 김태균 기자 = 올해 국내 도입 20년째를 맞는 사모펀드(PEF)가 재계의 주요 실력자로 급부상하고 있다.
과거 몇몇 초대형 인수합병(M&A) 거래 때만 잠시 모습을 드러내던 '은둔의 투자자'에서 현재는 중공업, 생활용품 기업, 햄버거 프랜차이즈, 렌터카 업체 등을 쥐락펴락하며 사회 각계의 주목을 받는 '큰손'이 됐다.
특히 재계 사업 개편의 파트너 역할을 넘어 대기업 경영권을 적극적으로 확보하려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재벌 오너가(家)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M&A 주체로 입지를 다지고 있다.
PEF는 자본시장의 핵심 구성원으로 M&A 시장에 돈이 돌게 만들고, 인수한 회사의 체질을 바꿔 업계에 활기를 불어넣는 역할도 한다.
그러나 진통도 적지 않다. '기업을 인수해 다시 판다'는 운용 방식 탓에 투자 차익만을 노려 '약탈적' 경영을 한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노동계 등과 갈등을 겪는 경우도 늘고 있다.
◇ 국내 PEF 설정액 133조9천억원…엑시트 기업 몸값 평균 35% 증가
PEF의 법제상 정식 명칭은 '경영참여형 기관전용 사모펀드'다.
'경영참여형'은 기업을 인수해 전략과 리더십을 관리하고 구조조정을 이끄는 방식을 취한다는 의미다. '기관전용'은 일정 자본금과 위험 감수 역량을 갖춘 연기금 등 주요 기관투자자만 출자할 수 있어 그 전문성과 배타성이 매우 큰 펀드란 얘기다.
PEF 제도는 2004년 12월 간접투자자산운용업법을 개정하면서 국내에 도입됐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외국계 PEF가 대거 M&A 시장에 진출하면서 토종 PEF를 키워야 한다는 지적이 잇달아 나온 데 따른 조처였다.
28일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국내 PEF는 이후 가파른 성장을 거듭해 작년 말 기준 펀드 수 1천80개, 설정액은 133조9천억원에 달한다.
이는 국내 증시 대장주인 삼성전자[005930] 시가총액(340조2천억원)의 39%에 해당하며, 2위인 SK하이닉스(123조8천억원) 시총을 웃도는 규모다.
비(非)경영참여형 사모펀드까지 더하면 펀드 수는 1천126개, 설정액은 136조4천억여원이다.
PEF만 다루는 전업 운용사는 310여곳으로 추산된다. 이중 통상 업계에선 한앤컴퍼니, MBK파트너스, 스틱인베스트먼트, IMM프라이빗에쿼티, IMM인베스트먼트를 '탑 5'로 꼽는다.
이들 펀드는 현재 대다수가 아는 유수의 기업들을 대거 보유하고 있다. 남양유업(한앤컴퍼니), 오스템임플란트(MBK), SK렌터카·버거킹(어퍼니티), 하나투어(IMM PE) 등이 대표적인 예다.
자본시장연구원에서 PEF가 투자비 회수(엑시트)를 한 기업 135개사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투자 시점과 엑시트 사이 기간에 해당 기업들의 가치는 평균 35% 증가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는 기업가치와 몸값을 높이는 PEF의 순기능이 실제로 작동한다는 뜻이다.
국내 PEF의 높아진 위상은 올해 5월 아랍에미리트(UAE) 대통령이 처음 방한했을 때도 주목을 받았다.
당시 UAE 대통령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등 재계 주요 수장과 면담한 뒤 한앤컴퍼니와 IMM PE 등 주요 PEF 운용사 대표를 따로 만났다.
글로벌 투자업계에서 영향력이 큰 UAE의 국가원수가 몸소 국내 토종 PEF들을 찾은 것을 두고 업계에서는 이례적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 약탈적 'M&A 사냥꾼' 불신 여전…'상생 경영' 신뢰 확보 관건
PEF는 투자 차익을 위해 M&A를 악용한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PEF가 기업 미래는 무시하고 엑시트 전망만 따져 무분별한 M&A를 벌이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는 것이다. '기업 사냥꾼' '투기 자본'이라는 성토가 나오는 이유다.
PEF에 대한 이런 우려는 MBK가 작년 말부터 한국앤컴퍼니[000240]와 고려아연[010130] 경영권 분쟁에 잇달아 참여하면서 더 커졌다.
MBK가 최근 대기업 거버넌스(지배구조) 변화를 추동하는 자본시장의 역할을 강조하면서, 재계에서 'PEF발 M&A 격랑'이 일어나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온다.
특히 많은 대기업의 오너가 승계가 3∼4세대째로 접어들고 지배 지분이 대폭 희석되면서 주식 매입을 통한 외부의 인수 시도에 취약해진 상황도 이러한 전망에 힘을 싣는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재계에 오너측 이익만 좇아 일방적 결정을 내린 사례가 적잖아 시장의 평이 나빴던 것도 인정은 해야 한다. PEF 등과의 갈등이 재계를 새롭게 바꿀 계기가 될지, 소모적 M&A 분쟁으로 이어질지가 앞으로 지켜봐야 할 대목"이라고 평했다.
PEF 입장에선 상생 경영을 내세우지만 신뢰를 얻기 어려운 점도 고민거리다.
기업 내부에서부터 '먹튀' 자본인 PEF가 구조조정을 주도하는 것을 믿을 수 없고 회사 자산만 빼돌리는 것 아니냐고 반발하는 경우가 잦기 때문이다.
실제 사모펀드 운용사 KCGI가 올해 8월 한양증권[001750]을 인수키로 하자 이 회사 노조는 "성급한 부동산 매각과 고용 불안이 걱정된다. 건전한 자본에 회사를 매각하라"며 반대 집회를 열었다.
MBK는 홈플러스 점포를 대거 처분하고 슈퍼마켓 부문(홈플러스 익스프레스)의 분할 매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노조 및 지역사회와 갈등을 겪고 있다.
PEF 운용사들이 폐쇄적 소수 정예 구조로 운영되는 데다, 보안이 중시되는 M&A 시장에서의 관행 탓에 투명성이 낮아 이런 불신 문제를 더 키운다는 지적도 나온다.
연세대 경영대의 신진영 교수(자본시장연구원 원장)는 "PEF가 애초 대외의 부정적 이미지 때문에 바깥 언급을 자제했던 성향이 있다. 노동자 등 이해당사자와 협의하는 것이 기업가치 증대에 큰 의미를 갖는 만큼 대외 커뮤니케이션 역량을 증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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