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삶은 팍팍하고 힘든 걸까…김의경 소설집 '두리안의 맛'

연합뉴스 2024-11-28 00:00:29

"가시와 구린내 견뎌야 단맛 느끼는 두리안, 인생과 닮아"

'두리안의 맛'

(서울=연합뉴스) 황재하 기자 = 대학생이자 이른바 '파워블로거'인 윤지는 들뜬 마음으로 난생처음 여권을 만들어 태국으로 공짜 해외여행을 떠난다.

코로나19로 막혔던 관광길이 막 뚫리기 시작한 2022년, 관광 대국인 태국이 해외여행객을 다시 유치하기 위해 마련한 팸투어(홍보를 위한 여행)에 윤지도 운 좋게 참석하게 된다.

윤지는 고급 호텔과 풀빌라에서 즐기는 해외여행에 설레지만, 불쾌한 일들이 자꾸 벌어진다.

사람을 태우는 투어에 동원된 코끼리는 등에 피를 흘리고 있고, 여행길에 차량의 타이어에 구멍이 나서 사고가 날 뻔한다. 설상가상으로 여행 마지막 날엔 팸투어 참가자인 남성이 술에 취해 윤지의 풀빌라 객실에 몰래 들어온다.

다행히 윤지의 단호한 태도에 남성은 순순히 돌아가지만, 윤지는 불안한 마음에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다. 그러면서 "다시는 공짜를 탐내지 않겠다"고 중얼거린다.

최근 출간된 소설가 김의경의 신작 단편집 '두리안의 맛' 표제작 이야기다.

윤지는 코코넛 아이스크림, 망고밥, 똠얌꿍 등 "먹거리 천국"인 태국에서도 대표 음식은 두리안이라고 생각한다. 두리안 사진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두리안의맛'이라는 태그를 달아 올린다.

김의경 작가는 27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두리안은 가시가 뾰족한 데다 구린내를 맡아야 먹을 수 있는 과일"이라며 "고급 여행을 가기 위해서 불쾌한 감정을 느껴야만 하는 윤지의 처지와 닮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화려하고 좋아 보이는 것들도 사실 겉보기와 다른 불쾌한 면이 있다는 것을 표현했다"며 "인생도 그런 것이란 생각이 든다"고 강조했다.

김의경 작가

작가의 말처럼 이번 소설집에 담긴 여덟 편의 소설은 모두 두리안의 껍질이나 고약한 냄새처럼 팍팍하고 힘든 사람들의 모습을 포착했다. 특히 생계를 위한 노동의 고단함에 초점을 맞췄다.

삼각김밥 공장에서 새 아르바이트생이 올 때마다 일자리를 잃을까 전전긍긍하는 70세 할머니의 이야기 '순간접착제', 감정 노동을 하는 두 40대 친구가 2박 3일 동안 호텔에서 호화로운 휴가를 보내며 삶을 돌아보는 '호캉스', 취업에 실패하고 단기 아르바이트로 연명하는 청년들의 이야기 '시디팩토리' 등이다.

작품에 묘사된 단기 또는 초단기 아르바이트는 대부분 작가의 실제 경험에서 나왔다. 김 작가는 "제가 워낙 아르바이트를 많이 했다"며 "'시디팩토리' 속 인물들이 CD 공장에서 일하는 장면이 있는데, 실제 제 경험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일부 수록작은 온라인 플랫폼의 발달로 나타난 새로운 형태의 노동을 다룬다. 표제작은 파워블로거의 이야기이고, '유라TV'는 홀어머니 아래서 자란 스물두살 유지가 '먹방'(먹는 방송) 유튜버로 돈을 벌기 위해 잘 먹지 못하는 매운 음식을 먹는 이야기를 담았다.

작가는 "인플루언서나 유튜버가 되려 하는 사람이 많지만, 사실 그들에게도 어려움이 많을 것"이라며 "그들의 속사정을 들여다보고 어려움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번 단편집에는 두 여성 주인공이 등장하는 작품이 여럿이다. '시디팩토리', '순간접착제', '호캉스'에선 두 여주인공이 함께 일하면서 가까워지고, '유라TV'에선 두 싱글맘과 그들의 딸이 서로에게 버팀목이 된다.

여성들이 연대하는 서사에 대해 작가는 "사실 의도한 부분은 아니었고 개연성에 맞게끔 설정한 것"이라며 "저도 여성이고 힘든 노동을 하면서 여성들이 서로 의지하게 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전개라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김 작가는 2014년 장편 '청춘 파산'으로 한국경제 청년신춘문예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장편 '헬로 베이비'와 '콜센터', 소설집 '쇼룸'을 펴냈으며 '콜센터'로 2018년 수림문학상을 받았다.

은행나무. 292쪽.

jae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