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성 드리운 재계 인사 키워드…"기술·트럼프·승진축소"

연합뉴스 2024-11-27 16:00:25

삼성전자 파운드리 CTO 신설…현대차 첫 외국인 CEO 등용

LG, 'ABC' 인재 대거 등용하면서 임원 승진은 10% 이상 줄여

삼성전자 서초사옥

(서울=연합뉴스) 김아람 기자 = 내년에도 경영 불확실성이 클 것으로 예상되면서 주요 기업이 정기 인사를 통해 분위기 쇄신과 미래 준비에 속도를 내고 있다.

올해 연말 재계 인사 트렌드로는 ▲ 기술 인재 중시 ▲ '트럼프 2기' 대응 글로벌 인재 등용 ▲ 임원 승진 축소 등이 꼽힌다.

◇ 결국 돌파구는 '본업'…기술·현장 인재 전진 배치

27일 재계에 따르면 올해 많은 기업이 지지부진한 실적 흐름을 지속한 가운데 분위기를 전환하고자 미래 먹거리를 이끌 기술 인재 발탁에 힘쓰고 있다.

대내외 불확실성이 커지고 시장 트렌드와 경쟁 구도가 급변하는 가운데 미래 시장을 선도하기 위한 돌파구는 기술을 통한 본업 경쟁력 강화라는 판단에서다.

반도체 사업에서 위기를 겪는 삼성전자는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부에 사장급 최고기술책임자(CTO) 보직을 신설했다.

메모리·파운드리 제조기술센터장, DS부문 제조&기술담당 등을 지낸 반도체 공정개발 및 제조 전문가인 남석우 사장이 CTO를 맡아 기술 경쟁력 강화를 주도한다.

이문태 LG AI연구원 어드밴스드 ML 랩장

LG그룹은 미래 먹거리인 인공지능(AI)·바이오·클린테크 등 이른바 'ABC' 인재를 대거 등용했다. 전체 신규 임원의 23%인 28명을 ABC 분야에서 발탁했다.

특히 이문태 LG AI연구원 어드밴스드 ML 랩장(수석연구위원), 이진식 엑사원 랩장(수석연구위원), 조현철 LG유플러스 상무 등 AI 분야에서 글로벌 수준 연구 역량을 갖춘 1980년대생 3명을 임원으로 신규 선임했다.

SK이노베이션이 SK E&S와의 통합을 앞두고 지난달 단행한 인사에서 교체된 자회사 사장 3명(SK에너지 김종화·SK지오센트릭 최안섭·SK아이이테크놀로지 이상민)은 모두 이공계 출신이다.

그룹 차원에서 고강도 리밸런싱(구조조정)에 나선 가운데 신임 사장들이 기술과 현장에 집중하면서 회사 체질 개선에서 성과를 낼 것으로 회사 측은 기대했다.

◇ '트럼프 시대' 맞춤형 글로벌 인재 두각

내년 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취임을 앞두고 글로벌 정세 불확실성이 커질 '트럼프 2기' 시대에 대응하려는 움직임도 두드러진다.

북미 수출이나 투자 비중이 큰 업종을 중심으로 국제적인 경험과 감각을 갖춘 인사를 잇따라 요직에 등용하는 분위기다.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장은 미국에서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을 이끌어온 한진만 DS부문 미주총괄 부사장이 사장으로 승진해서 맡는다.

한 사장이 미국에서 글로벌 고객을 대응하며 네트워크를 쌓아온 만큼 미국 현지에 고객사가 많은 파운드리 사업 경쟁력 강화를 이끌 적임자로 낙점됐다.

현대차는 대표이사에 호세 무뇨스 최고운영책임자(COO) 겸 북미권역본부장을 선임하는 파격 카드를 꺼냈다. 현대차 1967년 창사 이래 첫 외국인 최고경영자(CEO)다.

그는 2019년 현대차 합류 이후 딜러 경쟁력 강화와 수익성 중심 활동으로 북미 지역 최대 실적을 잇달아 경신하면서 성과를 인정받았다.

호세 무뇨스 현대차 신임 대표이사

또 현대차는 대외협력·국내외 정책 동향 분석, 홍보·PR 등을 총괄하는 그룹 싱크탱크 수장에 성 김 고문역을 영입해 사장으로 임명할 예정이다.

미국 외교 관료 출신인 그는 미국 국무부 은퇴 후 올해 1월부터 현대차 고문역으로 합류해 현대차그룹의 글로벌 통상·정책 대응 전략 등을 지원해왔다.

LG화학은 북미 외교 전문가인 고윤주 전 제주특별자치도 국제관계대사를 최고지속가능전략책임자(CSSO)를 전무로 발탁했다.

외교관 출신인 고 CSSO는 외교부 자유무역협정상품과장, 뉴욕총영사관 영사, 북핵외교기획부단장 등을 거쳐 트럼프 1기 때인 2019년 외교부 북미국장을 지냈다.

◇ 임원 승진 줄이며 '조직 슬림화'

글로벌 경기 침체가 길어지고 경영 여건이 어려워지는 가운데 승진 폭을 최소화하고 임원 자리도 줄여 조직을 슬림화하려는 경향도 두드러진다.

LG그룹의 전체 승진 규모는 작년의 139명보다 18명 줄어든 121명이다. 이 가운데 신규 임원은 지난해(99명)보다 13명 줄어든 86명으로 집계됐다.

특히 배터리 업황 둔화로 실적 부진을 겪는 LG에너지솔루션의 임원 승진자는 14명으로 작년의 24명 대비 대폭 축소됐다.

LS그룹도 이번에 부회장 승진을 포함한 총 승진자는 22명으로, 최근 3년 내 가장 적은 수준이다. 41명이 승진한 작년과 비교하면 약 절반으로 줄었다.

LS그룹은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전 세계 경영환경 불확실성이 더욱 고조될 것으로 보고, 최근 3년 내 최소 규모의 승진 인사를 단행하고 조직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기로 했다"고 인사 배경을 밝혔다.

앞서 지난달 CEO 인사와 함께 조기 임원 인사를 단행한 SK지오센트릭의 경우 어려워진 화학 업황을 고려해 임원 수를 기존 21명에서 18명으로 14% 줄였다.

또 지난달 발표된 SK에코플랜트 인사에서도 임원 수가 66명에서 51명으로 23% 축소됐다.

이런 기조를 감안하면 곧 SK그룹 정기 인사 때 다른 계열사에서도 임원 축소가 잇따를 것이라는 전망에 무게가 실린다.

ric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