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쇼크'에 소비자·기업 심리도 악화
대외변수 대응전략 마련하고 내부 구조개혁 나서야
(서울=연합뉴스) 김지훈 선임기자 = 2000년 이후 한국의 연간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였던 건 코로나19의 타격을 받은 2020년(-0.7%) 한 해뿐이다. 플러스 성장을 했지만 잠재성장률 수준으로 추정되는 2.0%에 못 미쳤던 건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0.8%)과 지난해(1.4%)였다. 2002년(7.7%)과 2010년(7.0%)엔 7%대의 성장률을 기록했고 2004, 2006, 2007년에는 5%를 넘는 성장세가 유지됐다. 하지만 2011∼2019년엔 2∼3%대로 하락하더니 2020년대 들어선 1∼2%대로 내려앉으려는 추세가 엿보인다.
내년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1%대로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늘고 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년 2%대 초반은 유지할 것이란 전망이 주류였으나 연말로 갈수록 하향 조정이 대세가 됐다. 골드만삭스는 내년 한국의 수출이 둔화할 것이라며 내년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2.2%에서 1.8%로 낮췄다. 골드만삭스 외에도 바클레이즈, 씨티, JP모건, HSBC, 노무라 등 글로벌 투자은행(IB) 대부분이 내년 한국 성장률 전망치를 1.7∼1.9%로 내린 상태다. 국제통화기금(IMF) 한국미션단도 지난주 연례협의 결과발표에서 내년 한국 성장률 전망치를 2.2%에서 2.0%로 낮췄는데 하방 위험이 크다며 1%대로 떨어질 가능성도 시사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과 금융연구원은 내년 전망치를 2.0%, 산업연구원은 2.1%로 각각 제시했는데 내년 성장률을 2.1%로 내다봤던 한국은행이 28일 수정 전망치를 얼마로 제시할지가 관심이다.
이런 전망은 내수 부진에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으로 수출도 타격을 받아 성장 속도가 늦어질 것이란 분석 때문이다. 이미 트럼프 당선인은 내년 취임 직후부터 캐나다와 멕시코에서 들여오는 수입품에 25%의 관세를 물리고 중국에도 10%의 관세를 추가로 부과할 것이라고 공개 선언했다. 미국과의 교역에서 상당 규모의 흑자를 내는 한국도 미국 보호무역 조치의 표적이 되지 않을지 걱정이 앞서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금융시장에서도 트럼프 당선 이후 달러와 미국 주가, 가상화폐 가격이 급등하는 충격이 발생했다.
국내 소비자와 기업들의 심리는 이미 잔뜩 위축된 상태다. 한국은행이 조사한 11월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전월보다 1.0 포인트 떨어졌고 6개월 후의 경기 전망을 보여주는 지수는 2년 4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급락했다. 제조업에 종사하는 기업들의 심리를 보여주는 지수(CBSI)도 13개월 만에 최저 수준으로 내렸다. 한국경제인협회가 조사한 기업경기실사지수(BSI) 12월 전망치도 33개월째 기준치를 밑돌았다.
우려가 과도하다는 지적도 있지만, 세계화와 개방, 교역을 축으로 삼아 움직이던 세계 경제가 2개의 전쟁과 트럼프 당선 이후 정반대로 방향을 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미국의 보호무역·자국 우선주의를 필두로 각국이 빗장을 걸어 잠그며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각자도생의 생존 전략에 몰두하고 있다. 격변하는 세계질서 속에서 대외 변수에 대응할 전략을 선제적으로 마련하고 취약한 경제의 틀을 바꾸는 구조개혁에 나서지 않는다면 장기 저성장이 '뉴 노멀'(새 기준)로 자리잡을 수 밖에 없다.
hoonki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