꽉 채워온 '동의율'…선도지구 당락 가른 건 공공기여·주차·가구수
분당은 '승자의 저주' 걱정…부촌만 재건축 '지역 격차' 우려도
정부 2027년 '철거 착공' 목표…정비계획 '패스트트랙' 도입
(세종=연합뉴스) 박초롱 기자 = 재건축 선도지구 13개 구역 3만6천가구가 선정됨에 따라 1991년 최초 입주한 1기 신도시(분당·일산·평촌·중동·산본) 재건축이 33년 만에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선도지구로 지정되고자 하는 1기 신도시 주민들의 열망이 워낙 뜨거워 주민 동의율보다는 공공기여, 주차대수 확보, 참여 가구 수 등 다른 요인이 당락을 갈랐다.
정부는 선도지구의 2027년 착공, 2030년 입주를 목표로 하고 있지만, 이 계획대로 흘러가기엔 분담금 문제 등 걸림돌이 많다.
◇ 분당 동의율 만점 구역 10개 이상…다른 요소가 당락 갈라
국토교통부가 27일 결과를 발표한 선도지구 공모에 신청이 몰린 건 '속도전'에 대한 기대 때문이었다.
정부는 선도지구의 재건축 착공 목표를 윤석열 정부 임기 마지막 해인 2027년으로, 입주는 2030년으로 잡고 있다.
1기 신도시 재건축은 윤석열 정부의 주요 공약 중 하나이기에 선도지구로 선정돼야 추진 동력이 확보되며, 이후에는 상황 변화에 따라 동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분위기가 주민들 사이에 생기며 무려 15만3천가구가 선도지구에 신청했다.
이는 정부가 정한 기준 물량인 2만6천가구의 5.9배, 최대 물량인 3만9천가구의 3.9배에 이른다.
국토부와 1기 신도시 지자체들은 '정량평가'만으로 선도지구를 선정했다고 강조했다. 추후 분쟁 소지를 고려해 점수대로 1등부터 줄을 세워 정했다는 뜻이다.
선도지구 선정을 위한 표준 평가 기준에서 '주민 동의율' 점수가 60점으로 가장 높았지만, 이는 당락을 가르는 요소가 되지 못했다.
'만점' 단지가 속출해서다. 분당의 경우 주민동의율 95%를 넘긴 만점 구역이 10곳이 넘는다.
분당은 부지 면적의 5% 이상을 추가로 공공기여하면 점수를 6점 부여하기로 했는데, 주요 선도지구 신청 구역들은 공공기여는 물론 장수명 주택 인증(3점), 구역 정형화(2점) 둥 추가로 점수를 딸 수 있는 부분을 최대치로 반영했다.
분당에서 선도지구로 지정된 3개 구역 중 2∼3위는 점수가 같고, 4등은 간발의 차이로 떨어졌을 정도였다.
김인현 성남시 도시개발행정과장은 "동의율 외 공공기여 등 다른 평가 항목들이 종합적으로 반영됐다"며 "신청서에 첨부돼야 할 신분증, 자필 서명이 일부 누락된 곳도 있었는데, 이 부분도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산본과 중동 역시 선도지구 신청 구역들의 동의율이 비슷해 주차대수 확보 방안, 참여 가구 수에서 점수 차이가 났다.
다만 평촌에선 동의율이 당락을 결정지었다.
각 지자체는 선도지구에 선정된 지구의 평가 점수와 순위를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 분담금 어쩌나…'승자의 저주' 걱정하는 분당
선도지구 선정 이후에도 넘어야 할 산은 만만치 않다.
1기 신도시 단지들은 선도지구로 선정되기 위해 추가 공공기여를 약속하고 이주대책에 쓰일 임대주택 비율을 최대한 높게 써내는 등 공격적인 제안을 했다.
모두 사업성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인이다.
이로 인해 재건축 추진 과정에서 수억 원의 추가분담금이 나오면 주민 간 갈등이 불거지고, 사업 추진이 늦어질 수 있다.
이번에 선도지구로 지정되지 못한 분당의 한 아파트 단지 주민대표는 "우리 단지의 경우 평가점수를 높이려고 '장수명주택 인증'을 고려했지만 계산해보니 사업성이 나오지 않더라"며 "사업성을 떨어뜨리면서까지 선도지구로 재건축을 진행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분당 또 다른 아파트단지의 주민대표는 "선도지구 신청 때 공공기여 제공 등 추가 항목을 최대치로 써냈지만, 사업성이 나오기 어려워 내부적으로도 갈등이 많았다"고 했다.
용적률에 따른 사업성 차이로 '추가분담금 폭탄'이 나올 가능성도 있다.
현재 재정비 기준 용적률(아파트 기준)은 ▲ 분당 326% ▲ 일산 300% ▲ 평촌 330% ▲ 산본 330% ▲ 중동 350%다.
일산은 다른 지역보다 기준 용적률이 낮아 주민들이 상향을 요구하고 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지금은 개별 조합원들의 자금 여력, 즉 추가분담금을 얼마나 감당할 수 있는지가 재건축 추진의 관건"이라며 "부촌(富村)을 중심으로 사업이 빠르게 추진되면서 1기 신도시 내에서도 지역적 양극화가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 '2027년 착공' 강조하는 국토부…"분담금 지원방안 검토"
2개 단지 이상이 모인 통합재건축 추진 과정에서 각 단지 주민 간, 아파트와 상가 조합원 간 의견을 모으기 쉽지 않을 거라는 전망도 나온다.
권일 부동산인포 리서치팀장은 "단지마다 평수에 따라 지분 관계가 다르고, 도로 가까이 있는 동과 아닌 동의 감정평가액도 달라질 수 있어 통합재건축 참여 단지들이 분쟁을 겪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선도지구 지정 구역 대다수가 신탁 방식 재정비를 추진하는 가운데, 신탁사가 그간 정비사업을 성공적으로 완료한 경험이 많지 않아 갈등을 잘 풀어나갈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시각도 있다.
정부는 각종 행정지원을 통해 재건축 추진 속도를 높이겠다고 밝혔다.
선도지구에 대해선 바로 예비시행자를 지정하고 내년 상반기 중 정비계획안을 마련하는 '특별정비계획 수립 패스트트랙'을 도입한다.
추정 분담금 산정 결과에 대한 공신력 문제로 갈등이 발생하는 것을 줄이기 위해서는 부동산 가격조사 전문기관인 한국부동산원을 통해 분담금 산출 업무를 지원한다.
내년부터 12조원 규모로 조성하는 미래도시펀드로는 민간투자를 유치해 2026년부터 재건축 초기 사업비를 지원할 계획이다.
국토부는 2025년 선도지구의 특별정비계획을 수립, 2026년 사업시행인가를 목표로 하고 있다.
유지만 국토부 도시정비지원과장은 "사업시행인가에서 관리처분인가로 넘어갈 때 가장 중요한 것이 분담금이며, 특히 고령자들의 분담금 마련이 어려울 수 있어 관련 지원을 어떻게 할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당장 2026년 선도지구 단지들의 이주가 시작돼야 하기에 국토부는 다음 달 선도지구를 포함한 1기 신도시 재건축 이주대책을 별도로 발표할 예정이다.
'2027년 착공'이 무리한 계획 아니냐는 지적이 뒤따르는 가운데 국토부는 이날 '철거'도 착공으로 간주하겠다고 밝혔다.
국토부 관계자는 "착공은 '철거 착공'이 기준이며, 주택 유형이 다양해 2027년까지 실착공에 들어가는 곳도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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