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 너머 우주의 작은 존재 다뤄"…한강 책 독일어판 표지로도 채택
(서울=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동양의 전통 산수화와 서양화의 극사실 기법을 더해 붉은색으로 산수를 그린 '붉은 산수'로 유명한 화가 이세현의 개인전이 27일부터 서울 진관동 사비나미술관에서 시작했다.
로즈 레드로 표현한 붉은 색 그림들은 여전하지만 이번 전시에서는 분단 현실과 이념 갈등, 정치·사회적 이슈 등을 담았던 '비트윈 레드'(Between Red) 연작에서 벗어나 자연과 우주의 풍경에 초점을 맞춰 존재의 의미를 성찰한 '비욘드 레드'(Beyond Red) 연작을 주로 선보인다.
새 연작에는 군함이나 포탄, 핵무기 실험, 비무장지대 풍경 같은 이전 작품의 이미지들이 해체되고 지워진 대신 별이나 구름, 은하수 같은 자연과 고향 거제도의 밤바다를 밝혔던 등대, 촛불 같은 이미지들이 전면에 등장한다.
개막 전날인 26일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이번 작업의 포인트는 여전히 풍경 그림이긴 하지만 예전 풍경 그림은 사회적 함의를 담고 있는 작품 위주였다면 이번 전시에서는 풍경을 확장해 아름다움 너머에 존재하는 것을 다뤘다"고 설명했다.
작가는 "현존하는 우리 풍경의 아름다움도 있지만 그 풍경 너머 광활한 우주의 먼지에 불과한 존재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면서 "유토피아를 만들려고 노력하지만 크게 달라지는 게 없는 것 같다는 허무함 같은 작은 계기들이 차곡차곡 쌓여서 조금 순수한 마음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에서 일어난 변화"라고 덧붙였다.
3층 전시장에는 150점으로 구성된 '해안선'(The Sea Line) 연작이 걸렸다. 지인들의 눈 감은 얼굴과 붉은 산수가 조합된 소품들을 마치 해안선처럼 일렬로 배열해 걸었다.
내년 1월 18일까지 이어지는 전시에서는 붉은 산수 연작의 바탕이 된 연필 드로잉 30점과 파란색 산수 작품도 볼 수 있다.
한편, 작가의 붉은 산수 그림은 다음 달 출간 예정인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 독일어판 표지 그림으로 채택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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