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관화의 함정을 벗어나는 전략 소개…신간 '룩 어게인'
(서울=연합뉴스) 이세원 기자 = "저녁이 되면 의무감으로 전화를 하고 관심도 없는 서로의 일과를 묻곤하지. 가끔씩은 사랑한단 말로 서로에게 위로하겠지만 그런 것도 예전에 가졌던 두근거림은 아니야."
그룹 015B(공일오비)가 1992년 내놓은 '아주 오래된 연인들'은 장기 교제로 더 이상 설렘을 느끼지 못하는 연인들의 일상을 그렸다. 노래가 지적하듯 인간은 어떤 일에 익숙해지면서 새로움, 흥미,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전망 좋은 아파트에 오래 산 사람은 손님이 와서 '경치가 좋다'고 말할 때 '이 집을 사기로 한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베란다 풍경이었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사춘기 소녀는 짝사랑하던 소년이 손을 잡을 때 가슴이 콩닥거리는 것을 느끼지만 결혼 생활 20년째에 접어든 중년 부인은 잠결에 남편이 걸친 다리가 무겁기만 하다. 습관화가 인간의 인식을 변화시킨 셈이다.
부드러운 개입으로 바람직한 선택을 이끄는 비법을 소개한 베스트셀러 '넛지'의 공저자 중 한명인 캐스 선스타인은 인지신경과학자 탈리 샬롯과 함께 쓴 신간 '룩 어게인'(한국경제신문)에서 습관화의 함정을 분석한다.
책에 따르면 맛있는 음식이든, 멋진 섹스든, 비싼 자동차든 인간이 꿈꾸는 모든 것은 가끔 경험할 때만 폭발적인 기쁨을 준다. 이는 인간의 뇌가 예상을 벗어난 사건에 강하게 반응하고 습관화가 이뤄지면 반응을 줄이는 것과 관계가 있다. 생존에 유리하도록 예전의 것과 다른 새로운 것에 우선 초점을 맞추도록 뇌가 설계돼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물건보다 경험에서 더 만족감을 느끼는 경향이 있는데 이 역시 같은 맥락에서 설명할 수 있다. 자동차, 집, 태블릿, 의류, 가구 등 좋은 물건을 사면 처음에는 기쁘지만 곧 익숙해진다. 반면 휴가, 여행, 콘서트 등 짧은 시간의 경험은 두고두고 좋은 기억으로 남고 오래도록 행복감을 준다. 물건은 오래 소유하기 때문에 습관화되고 경험은 잠깐의 것이므로 습관화되지 않는다. 짧게 끝난 사랑이 수십 년 동안 그리움을 불러일으키지만, 수십 년 이어진 사랑에 그리움이 끼어들 여지가 적은 것도 마찬가지라고 책은 지적한다.
그래서 책은 좋은 것을 나누어서 음미하라고 조언한다.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의 전망 좋은 자리에서 식사할 때는 중간에 한 번씩 소란스럽고 복잡한 공간이나 화장실에 다녀오라고 권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원래 앉아 있던 자리가 좋다는 것을 더 확실하게 느낄 수 있다는 의미다. 마사지를 받는 사람들도 중간에 휴식 시간이 있는 경우 만족감이 더 컸다고 한다.
사람들은 나쁜 것도 습관화한다. 습관화를 통해 나쁜 경험이 주는 고통이나 상처에 무뎌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도 함정이 있다. 나쁜 것이 습관화되면 변화를 추구하지 않게 된다. 어리석음, 잔인함, 고통, 낭비, 부패, 차별, 잘못된 정보, 독재 등에 저항하려는 동기를 상실하게 된다고 책은 지적한다. 습관화는 위험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게 한다. 무단횡단을 하거나 운전 중 휴대전화를 사용해도 사고를 겪지 않으면 다음번에는 더 아무렇지 않게 위험을 감수할 가능성이 커진다.
책은 불쾌한 경험이나 위험에 관한 습관화·탈습관화 전략도 제안한다. 예를 들어 화장실 청소와 같이 달갑지 않은 일은 습관화를 통해 불쾌감을 줄이도록 중간에 휴식 없이 한 번에 해치우는 것이 좋다. 휴식을 취하면 탈습관화가 발생해 청소가 유쾌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더 강하게 느끼기 때문이다.
위험을 인식하도록 탈습관화를 시도할 필요도 있다. 예를 들면 공장의 컨베이어벨트 앞에서 작업하는 노동자들의 위치를 수시로 바꾸고, 건설 현장에 설치한 안전 경고판의 색깔을 주기적으로 바꿔 사람들이 위험을 새롭게 인식하도록 하는 게 좋다. 미국 식품의약청(FDA)은 흡연이 암이나 심장병을 유발할 수 있다고 경고하는 그래픽을 분기별로 바꿔서 보여주도록 했는데 이 역시 탈습관화 전략이다.
이경식 옮김. 3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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