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이재호 기자] “야구에 허구연 총재가 취임하셔서 좋은 성과를 얻었다. 그분이 기업총수인가. 저도 그분 못지 않게 해낼 자신이 있고 발로 뛰며 만들어내겠다.”
2013년 대한축구협회장 취임 당시에만 경쟁이 치열했지 이후 2선, 3선 때는 늘 ‘단독 후보’로 무난하게 당선됐던 정몽규(62) 대한축구협회장. 그런 그의 4선을 막기 위해 한국 축구 레전드가 나섰다.
그 주인공은 허정무(69) 전 국가대표팀 감독. 기업인이 아닌 축구인으로써 재원 마련 방안에 대해 한국야구 KBO리그의 허구연 총재의 예를 든 허정무는 한때 함께 일하기도 했던 정몽규 회장의 독선을 막는다는 명분을 들고 어느 때보다 관심이 높은 대한축구협회장 선거의 8년만에 첫 경쟁 후보로 나서게 됐다.
허정무는 25일 서울 잠실 올림픽파크텔에서 대한축구협회장 선거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허정무는 명실상부 한국 축구의 레전드다. 선수, 감독, 행정가로 모두 성공을 맛본 흔치 않은 인물이기도 하다. 선수로는 A매치만 무려 104경기 30골로 A매치 100경기 이상인 ‘센추리 클럽’에도 가입했고 기량이 뛰어나 해외진출이 어려웠던 1980년대에 네덜란드 PSV 아인트호벤에서 뛰었을 정도.
감독으로는 유례없는 두 번의 A대표팀 감독을 역임했고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한국 축구 역사상 첫 원정 월드컵 16강 진출의 쾌거를 만들어냈다.
행정가로는 프로축구연맹 부총재를 거쳐 대전 하나시티즌의 재창단 때부터 이사장으로 지난해까지 완전히 달라진 대전 축구를 만든 인물로 여겨진다.
오랜시간 축구계에 몸을 담다보니 물론 과오도 있고 논란도 있었다. 하지만 전국민적 질타를 받는 현재의 대한축구협회 정몽규 회장에 비하면 양반이고 새발의 피다.
정 회장은 2013년 처음으로 대한축구협회장에 취임했을 때 전례없는 2차투표까지 갈 정도로 치열한 경쟁 끝에 허승표 후보를 이기고 협회장이 됐다. 하지만 2016년과 2021년 2선, 3선을 할때는 어떤 경쟁자도 없이 단독후보로만 나와 당선됐다.
물론 정 회장이 아직 4선에 출마한다는 발표를 한적은 없다. 그러려면 스포츠공정위의 재가도 받아야하는데 문제가 없을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정 회장은 4선에 나올 것이라는 것이 축구계의 예상.
결국 정 회장이 4선에 나온다면 2,3선 때는 경험치 못한 ‘경쟁’을 하게 된다.
물론 정 회장은 기존 3선까지 하며 투표권자인 시도축구협회장들에게 더 어필했다는 점에서 유리하다. 게다가 재벌 총수이기에 당장 천안축구센터 완공이라는 대업을 해야하는 축구협회가 어느때보다 재원 마련이 필요하기에 더 필요한 인물로 볼 수 있다.
결국 핵심은 허정무 후보가 정 회장이 빠진다면 메워줘야할 재원을 어떻게 마련하느냐다. 이에 대한 질문도 당연히 기자회견에 나왔다.
ⓒ연합뉴스“지금까지 대기업 총수들이 축구협회장을 하며 어느정도 찬조와 기부를 했다. 그러나 대규모 큰 자금을 선뜻 내놓은 적은 없었다. 저는 축구인으로써 2001년도에 용인 축구센터가 지어지는데 기여했다. 국가의 보조없이 용인시 지차체가 310억원을 들여 만들게 했다. 당시 제가 국회도 찾아다니고 시에 브리핑도하고 시의원을 설득하며 용인축구센터를 만들었다. 파주도 그랬다. 발로 뛰겠다.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천안시, 문체부, 관련기업들을 찾아가며 도움을 받겠다. 이렇게 벌려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빚덩이에 앉게 된다. 최소화해야한다.”
구체적이지는 않다. 차라리 특정 스폰서가 있다는 것이 명확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자신이 이미 용인과 파주 축구센터 건립에 역할을 했다는 점을 강조하며 ‘발로 뛰어’ 해결하겠다는 답이다.
허구연 KBO 총재의 예를 들었다. 야구선수, 감독, 해설가 등을 역임했던 허구연은 2022년 3월, KBO 총재로 취임했다. 그동안 재벌회장 혹은 정치인들이 역임했던 KBO에 야구인 첫 총재가 됐다.
처음에는 우려가 컸지만 자동투구판정시스템(ABS), 베이스 크기 확대, 수비 시프트 제한, 피치 클락 등 과감한 제도들을 적극 채택했고 올해 KBO리그는 사상 첫 1000만관중이라는 역사적인 흥행을 기록했다.
허 후보자는 "야구를 예로 들겠다. 야구가 어렵다가 허구연 총재가 취임하셔서 좋은 성과를 얻었다. 그분이 기업총수가 아니다. 저도 야구의 허구연 총재 못지 않게 해낼 자신이 있고 발로 뛰면서 반드시 만들어낼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물론 ‘야구인이 잘했으니 축구인인 내가 잘하겠다’는 논리는 부실할 수 있다. 하지만 성공 모델이 있다는건 사실이다. 문제는 대한축구협회는 단일종목 최고인 1876억원이라는 예산을 쓸 정도로 거대 조직인데 정몽규 회장의 현대가가 분명 이에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 당장 프로축구만 해도 울산 HD, 전북 현대, 여자축구의 인천 현대제철 등 팀들이 있는데 현대가가 물러나게 되면 이후 어떤 행동을 취할지 예측할 수 없다.
ⓒ연합뉴스결국 재원 마련과 운영 능력이 대한축구협회장이 되는 가장 큰 요소가 될 수밖에 없다. 한국 축구의 레전드라 할지라도 이를 한달내에 증명해내지 못한다면 내년 1월8일 열릴 대한축구협회장 선거에서 웃을 수 없다.
초선 이후 처음으로 경쟁이라는걸 해보는 정몽규 현 회장과 이에 도전하는 허정무를 향한 표심은 누구를 향하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