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전봇대 뽑고 원시성 회복 '시초'…일본서 대거 이동
새들과 거리 150→80m 단축…쌍안경 사용 안 하고 육안 관찰 가능
순천시, 내년 4월까지 '고급 취미' 탐조 프로그램 운영
(순천=연합뉴스) 손상원 기자 = "두루루… 두루루…"
흑두루미 노랫소리가 창공을 메우고 가창오리들은 알 수 없는 글씨를 써 내려가는 '매스 게임'을 하듯 화려한 군무를 펼친다.
전남 순천만이 자연과 시간을 간직한 겨울 철새 탐조 성지로 주목받고 있다.
25일 순천시에 따르면 2000년대 초만 하더라도 90% 이상이 일본에 서식했던 흑두루미가 차츰 순천만으로 서식지를 옮기고 있다.
이를 두고 특정 지역의 질병으로 발생할 수 있는 종소멸 위험을 줄여 종보존의 길이 열린 셈이라고 순천시는 반겼다.
순천시는 현 노관규 시장이 첫 시장을 할 당시인 2006년 민선 3기 때부터 생태관광지 조성에 착수해 순천만 인근 식당, 오리농장, 주택 등을 철거해 자연성 회복에 힘썼다.
이듬해에는 시조(市鳥)도 비둘기에서 흑두루미로 바꿨다.
2009년 흑두루미들의 전선 충돌을 막으려고 대대뜰 59㏊에 있는 전봇대 282개를 뽑아냈다.
지속적인 손님맞이 노력에 순천만을 찾는 흑두루미 개체수는 2009년 400여마리에서 2021년에는 3천400여마리로 늘어났다.
2022년에는 일본 이즈미에서 발생한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를 피해 6천여마리가 순천만에 둥지를 틀었다.
이 가운데 절반은 지난해에도 순천만을 다시 찾아 아예 월동지를 변경하면서 개체수는 7천200여마리까지 증가했다.
올해 들어 이날 현재 관찰된 흑두루미는 역대 가장 많은 7천600여마리로 전 세계 개체수의 절반가량을 차지한다고 순천시는 전했다.
순천만에서는 재두루미, 검은목두루미, 캐나다두루미를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두루미들의 이사는 인간에게도 축복이다. 맨발로 걷는 순천만 람사르길은 탐조 명소로 떠올랐다.
천연기념물 228호 흑두루미는 경계심이 워낙 커 람사르길에서 허용된 접근 거리는 150m였다.
그러나 올해는 람사르길 탐조대 인근 농경지 80m까지 흑두루미가 다가왔다.
쌍안경 없이도 맨눈으로 탐조할 수 있는 거리다.
람사르길은 2009년 차로였던 400m를 흙길로 복원한 데 이어 지난해 순천만 국제정원박람회를 계기로 총 5.8㎞ 길이 맨발 걷기 길로 연장됐다.
순천시는 다음 달 2일부터 내년 4월까지 순천만 겨울 철새 탐조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천문대와 탐조대에 설치된 고배율 쌍안경으로 관찰하는 '셀프 탐조'는 누구나 체험할 수 있다.
'사운드 탐조'는 매일 오전 10시, 오후 2시와 4시 총 3회 사전 예약을 받아 1시간 동안 운영된다.
탐조 전문가와 함께 새와 갈대 등 자연의 소리를 들으며 람사르길, 갈대숲 탐방로, 용산 소공원에 걸쳐 탐조 활동을 할 수 있다.
'워킹 탐조'는 순천만 공원 개장 전인 오전 7시부터 오전 10시, 오후 1시와 4시 등 총 4회 사전 예약을 받아 2시간 코스로 운영된다.
사전 예약은 7세 이상 회당 15명 선착순으로 순천만습지 누리집에서 할 수 있다.
순천시 관계자는 "탐조는 미국, 유럽 등지에서 골프와 맞먹는 고급 취미로 인식된다"며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새멍'을 하다 보면 불멍, 물멍과는 또 다른 재미와 추억을 쌓을 수 있을 것"이라고 추천했다.
sangwon700@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