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 수필 공간] 서미숙 수필가 '나 좀 내보내 주소'

데일리한국 2024-11-24 23:04:38
서미숙 수필가 연재 섬네일. 사진=데일리한국 DB 서미숙 수필가 연재 섬네일. 사진=데일리한국 DB

"아이고, 아이고 건지러버, 와 나를 여따(여기) 가돠 놔? 와 아래께 남자 둘이 와갖고 나를 붙잡아 갖고 이리 델꼬 왔노. 어서 나 좀 내보내 주세요. 나 좀 내보내 줘요. 나 좀 내보내 주소! 건지러버 죽겠어!! 아이고 미치겠다. 나 좀 안 건지럽게 해조. 날 안 건지럽게 해조. 어서, 어서, 아이고 나 좀 내보내 주소! 아이~, 아이고 나 좀 내보내 주소..."

창살 없는 감옥이다. 종합병원 5인실 병동에 두 달 이상 갇혔다. 환자 운반용 침대가 겨우 지나갈 만한 통로를 사이에 두고 침상 다섯 개와 보호자용 장의자가 짝을 지어 나란하다. 보호자와 간병인까지 십여 명이 화장실을 공유하며 좁디좁은 공간에서 그저 견딘다. 

침상을 분리하는 건 겨우 얇은 커튼 한 장이다. 그마저 상부는 정방형 그물로 숭숭 뚫려 소리가 그대로 넘나든다. 높고 낮게 코 고는 소리, 가쁜 숨소리, 주고받는 통화소리, 조선족 간병인들이 모여 왁자하게 떠드는 소리, 안 먹는다고 떼쓰고 밥투정 반찬 투정하는 소리, 사이비 종교 신자가 기도하는 소리, 오줌 누고 똥 싸는 소리까지 여과 없이 오고 간다. 환자가 몸을 움직일 때마다 커튼 자락이 옆 보호자 얼굴 앞에서 들썩인다. 

좋은 이웃을 만나는 건 신의 영역인가. 눈만 뜨면 잠들 때까지 소음 공해에 시달린다. 병동을 쩌렁쩌렁 울려대는 치매 환자(84세)가 신경 안정제를 맞고 잠들어야 병실이 고요해진다. 이국 만리 낯선 곳에서 다쳐 아픈 것만도 서러운데 생지옥이 따로 없다. 의료대란으로 그마저 병실 구하기가 쉽지 않아 하루를 기다려서 입원했다. 응급실 뺑뺑이가 내 일이 될 줄이야. 나야말로 목청 높여 소리 지르고 싶다. ‘나 좀 내보내 주소.

밥상 앞에 앉으면 바로 옆 치매 환자는 똥 누릅다고 소리친다. 건너 모퉁이 오십 대 환자는 하루가 멀다고 콧줄을 빼서 간호사들을 골탕 먹인다. 쓰레기통엔 성인용 기저귀가 쌓여간다. 그녀는 몸을 못 가누면서도 남편에게 미안해한다. 남편은 '내가 치워줄게, 괜찮아'하는데도 본인은 안 괜찮으니 얼마나 기막힌가. 맞은편 침대에선 팔십 대 할머니가 꽥꽥거리며 구역질을 해 댄다. 그 와중에도 살기 위해 꾸역꾸역 밥을 넘겨야 하는지. 먹는 게 고문이다. 강화도 어느 사찰의 지옥도가 절로 떠오른다. 내 죄목은 무엇인지 찬찬히 돌아보게 된다.

"나 좀 일키(일으켜) 주소 예. 나 좀 일키 주소 아이. 아이고, 나 좀 안 일키 줄라요. 주인 양반, 나 좀 일키 주소. 아이고 어짜꼬. 똥 싸요. 똥. 나 좀 일키 주소. 아이고 엄마, 나 죽어요. 아이고... 건지러버라. 엄마, 나 죽겠다. 엄마 보고 싶다. 엄마 날 델로 오소. 건지러버 죽겠어. 아이고 어무이, 죽겠다! 어서 나 좀 끌러줘. 어서 나 좀 끌러줘요. 어서 나 좀 끌러줘... 아이고 나 좀 내보내 주소! 아이~, 아이고 나 좀 내보내 주소..."

시도 때도 없이 내지르던 치매 환자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린다. 그 할머니는 뇌가 길을 잃었다. 엉뚱한 길에서 헤매다 보니 마음이 흐려졌다. 고장 난 회로처럼 기억이 마구 뒤엉켜 버린 모양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제사 지냈냐고 묻고, 아이들 방에 불 때라고 걱정한다. 한 가지에서 자란 언니가 데리러 올 거라고 헛된 희망을 품고, 팔십 중반 나이에도 엄마를 찾는다. 

오랜 투병으로 스스로 일어나지도, 걷지도 못한다. 마지막으로 걸은 지 5개월이 넘었다. 꽂아 놓은 소변줄을 자꾸 뽑는 바람에 손까지 묶어놓았다. 조선족 간병인은 응대하다가 지치면 실실 약을 올리거나 부아를 지른다. 갈 수 있으면 혼자서 가보라고, 딸과 아들이 퇴근하고 전북죽 써서 데리러 올 거라고 척척 둘러댄다. 

남의 일 같지 않다. 치매 환자 최근 통계가 일반적으로 65세 이상에서는 5~10%, 85세 이상에서는 47%라고 한다. '호모 헌드레드(Homo Hundred)'라는 백세시대가 반갑지만은 않다. 건강하게 오래 사는 거야 누구나 바라지만, 우리의 발목을 잡는 치매가 무엇보다 두렵다. 아직은 치료제가 없으니, 예방이 우선이다. 무엇보다 뇌를 알아야 예방의 길이 보인다니 뇌를 건강하게 지키는 방법을 숙지할 수밖에. 디지털 환경에 익숙해져 뇌를 쓰지 않다 보니 치매가 노년에 찾아온다는 것도 편견이란다.

저자 김숙희 씨는 '두뇌는 많이 쓰면 쓸수록 더 잘 움직이고 우리의 기분 역시 좋아진다. 두뇌는 다른 기관과 대조적으로 반복해서 사용해도 닳지 않는다. 자극을 주면 줄수록 더 좋아지는 게 바로 뇌다. 뇌를 꾸준히 사용하라! 그렇지 않으면 잃을 것이다'라고 경고한다. 

긍정적인 마음가짐과 감사하는 마음으로 스트레스를 줄여야 하리. 한동안 중단했던 맨발 걷기를 다시 시작하면 좋으련만, 겨울에는 매일 30분 걷기라도 실천해야지. 밤낮이 바뀐 내게 아킬레스건은 수면 부족이다. 충분한 수면으로 아들의 걱정을 덜어줘야겠다. 냄비를 수도 없이 태우고, 한꺼번에 두 가지 일을 동시에 처리하기가 힘들어지는 요즘이다. 더는 치매 때문에 불안해하지 않았으면. 

고령화 사회에서 치매는 누구에게나 느닷없이 찾아올 수 있다. 이제는 치매 환자를 대하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치매 친화 사회'가 된다면 설령 치매가 온다고 할지라도 자신의 인생이 끝난 것이 아님을 알기에, 그런대로 삶에 의미를 부여하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치매 때문에 불안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강현숙) 

치매 환자도 존중받고 사랑받길 원한다. 치매여도 감정과 스킨십에 반응한단다. 진즉에 알았더라면 그렇게 애원하는 치매 할머니 어깨라도 토닥여 드릴걸. 얼마나 갑갑하고 절박한지 지그시 눈을 맞추고 조금이라도 헤아려 드렸더라면... 배워서 남 줘야 뇌가 웃는다니 시도해 봄 직하지 아니한가.

◆ 서미숙 주요 약력

△경북 안동 출생 △계간 '문장'(2015) 등단 △수필집 '남의 눈에 꽃이 되게' 기행수필집 '종점 기행' △제20회 원종린수필문학상(작품상) △한국문인협회, 한국수필가협회, 한국여행작가협회 회원 △프리랜서로 활동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