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 '번개사업'으로 소총·박격포 등 기본병기 40일 만에 개발
'K-방산' 효자 수출품목 개발 주도…최근엔 연구인력 유출로 몸살
(서울=연합뉴스) 김호준 기자 = 대한민국 방위산업의 역사는 53년 전인 1971년 11월 19일에 내리친 '번개'에서 시작됐다.
그날 박정희 대통령은 1970년 8월 6일 출범해 45명만 근무하던 작은 국책 연구기관인 국방과학연구소(ADD)에 총기와 박격포 등 기본 병기를 미국 제품과 유사하게 만들어내라는 '번개사업'을 지시했다.
ADD는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빠른 속도로 40여일 만에 보병용 Ml총, M2카빈, 60mm 및 81mm 박격포, 3.5인치 로켓포 Mk2 수류탄, M15 대전차지뢰 등의 시제품을 만들어냈다.
엄밀히 말하면 개발은 아니고 기존 제품을 모방하는 수준이었지만, 급하게 제작된 시제품들은 사격시험을 무사히 통과했다. 당시 우리나라의 열악한 기술력을 고려할 때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고 훗날 평가됐다.
번개사업은 1972년 6월 말까지 세 차례에 걸쳐 진행됐고, 모두 성공을 거둬 무기 국산화의 길이 열리게 됐다.
ADD는 기본병기 국산화에 이어 미사일 개발에도 착수해 1978년 9월 첫 국산 미사일인 '백곰' 개발에 성공했다. 백곰은 미국산 나이키미사일과 형상이 비슷했지만, 추진기관을 재설계하고 구조시험과 풍동시험 등을 거쳐 안정성을 입증한 명실상부한 국산 미사일이었다.
백곰은 훗날 '현무' 미사일 개발의 밑거름이 됐다. ADD는 탄두 중량이 8t으로 세계에서 가장 무거워 괴물 미사일로 불리는 '현무-5'도 개발할 정도로 미사일 기술력을 축적했다.
ADD는 지금까지 370여개의 무기체계를 개발했다.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과 고체연료 우주발사체, 군사정찰위성, 중거리지대공유도무기(M-SAM), 장거리지대공유도무기(L-SAM) 등과 같은 첨단 무기체계 개발도 ADD가 주도했다.
ADD가 개발한 무기체계는 최근 훈풍을 타고 있는 'K-방산'의 효자 품목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의 방산수출 실적은 2020년 이전에는 연평균 30억 달러 수준이었지만, 지난 2년간 연평균 150억 달러 수준으로 크게 늘었다. 중동과 아시아에 집중됐던 방산 협력 대상국도 유럽, 미주 등으로 확대했고, 수출 무기체계의 종류도 다양해졌다.
이건완 ADD 소장은 25일 연합뉴스와 서면인터뷰에서 "아이러니하지만, K-방산이 주목받는 것은 북한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냉전 종식 이후 미국과 이스라엘 정도를 제외한 해외 선진국의 관심이 국방과 안보에서 경제와 기술로 이동했고, 이는 유럽 대다수 국가의 방위산업에 정체를 가져왔다"고 말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북한의 존재로 인해 한정된 자원을 군사력 건설과 방위산업에 집중했고, 지속적인 투자의 결과 방위산업의 기반과 환경이 구축됐고, 무기체계의 성능과 가성비가 확보되면서 오늘날의 K-방산이 탄생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현재 ADD의 직원 수는 3천213명으로 54년 전 출범 당시보다 71배 늘었다. 전체 직원 중 연구인력이 2천418명(박사 50%·석사 50%)으로 75%를 차지하고 있다.
다만, ADD는 최근 인력 유출로 몸살을 앓고 있고, 우수 인력 채용에도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전해졌다.
유사 민간 연구소에 비해 국책 연구기관인 ADD는 급여가 낮은 편이고, 무기체계 연구개발 과정에서 발생한 사고로 다치거나 심지어 사망할 위험도 있기 때문이다.
이 소장은 "삼성·SK 등 유수의 대기업들과 비교해 공공기관인 ADD는 금전적 보상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면서 2022년 정책용역 결과 유사 민간 연구소 대비 ADD의 연봉이 약 800만원 적은 것으로 분석됐고, 이후에도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인력 유출을 막고 우수 인력을 유치하기 위해서는 보상체계를 개선하는 한편, 어렵고 위험한 환경에서도 연구개발을 수행하는 연구원들에게 자주국방에 기여하고 있다는 사명감을 심어줄 필요가 있다는 게 이 소장의 생각이다.
그는 "ADD 정원은 3천200명이 넘는데 연도별로 훈장을 받는 인원은 2∼3명에 불과하다"며 "방산수출의 화려한 성과를 묵묵히 뒷받침해온 공로를 인정해 (ADD 연구원에 대한) 국가적 예우를 증진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소장은 "인재 채용에 있어 연구소는 과학기술특성화대학과 협업해 채용조건형 인재 양성 프로그램 운영을 적극적으로 검토하는 등 여러 방면으로 노력하고 있다"며 "무엇보다 '나라 지키는 연구소'라는 우리 연구소의 특색을 적극적으로 홍보해서 유능한 인재들이 K-방산이라는 국가적 성과에 동참한다는 자부심을 느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hoju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