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협 비대위 "3천명 교육 환경에서 6천∼7천500명 교육 불가능"
당국 "의료계 주장 수용 불가"…입시업계 "입시 무력화하자는 것"
의료계 내에서도 '갸우뚱'…내년 1월 의협 새지도부 선거에 관심
(서울=연합뉴스) 고미혜 김잔디 기자 = 의정 갈등의 실타래가 좀처럼 풀리지 않는 가운데 최근 출범한 대한의사협회(의협) 비상대책위원회의 '의대 모집 중지' 주장 공식화로 갈등의 골이 더욱 깊어지는 모양새다.
의협 비대위는 정부 정책대로라면 의대 교육이 불가능하다며 모집 중지가 최선이라고 주장하지만, 당국과 입시업계에선 올해 입시 자체를 무력화하자는 것이라며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보고 있다.
◇ 의협 비대위 "모집 중지…안 그러면 교육 못 받은 의사 배출"
의협 비대위는 지난 22일 브리핑에서 의대 모집 중지가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법"이라며 "3천 명을 교육할 수 있는 환경에서 갑자기 6천, 7천500명을 교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잘라 말했다.
올해 휴학한 의대 1학년 3천 명이 내년 3월 복학할 경우 내년에 원래 입학할 신입생 수인 3천명은 물론 정부가 최종적으로 늘린 4천500명이 들어오면 이들이 한꺼번에 수업받을 수 있는 사정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얘기다.
즉 증원하지 않는다 해도 내년 교육이 불가능한 만큼 아예 신입생을 뽑지 말고 내년에 복학할 3천 명만 교육하는 게 최선이라는 주장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브리핑 당시 세종대와 일본 도쿄대의 과거 사례를 제시하며 모집 중지가 단순히 '수사'(修辭)만이 아님을 강조했다.
세종대에선 1990년 학내 분규로 초유의 대규모 유급 사태가 벌어지자 정부가 이듬해 7개 학과만 신입생을 뽑으면서 24개 학과는 모집을 중지했다. 도쿄대 역시 1968년 학내 소요로 1969년 신입생을 선발하지 않은 적이 있다.
단국대 의대 교수인 박 위원장은 "우리 사회는 입시만 중요하지 교육엔 진정한 관심이 없지 않나 생각한다"며 "의대에서 학생을 제대로 교육해 내보내지 못하면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의사들이 배출돼 평생 환자를 진료하게 된다"고 말했다.
◇ 당국 "입시는 예측가능·공정해야"…업계도 "입시 무력화 주장"
2025학년도 의대 증원과 관련해 정부는 되돌리기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한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지난 20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입시는 우리 사회에서 워낙 중요하고, 법적 규정에 따라 예측 가능해야 하고 공정해야 한다"며 "그런 원칙에 비춰보면 의료계 주장은 정부로선 정말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입시업계 입장에서도 증원 취소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간 모집 중지는 현실성이 없다고 본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24일 "일단 입시적 관점에서는 전혀 현실성이 없는 주장"이라며 "의대뿐 아니라 전반적인 2025학년도 대학 입시 자체를 무력화시키는 것"이라고 했다.
의대 수험생들이 의대뿐 아니라 다른 자연계열에도 지원하고, 올해엔 무전공 선발과도 연계돼 있어 결국 모든 대학과 학과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임 대표는 "연세대 논술전형 사태 하나만도 '수시 6회 지원'과 맞물려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친다"며 "의대 모집 중지는 올해 모든 대학에서 신입생을 뽑지 말라는 것과 다름없어 수험생들이 받아들이긴 어려운 얘기"라고 주장했다.
◇ 의료계 내에서도 의견 엇갈려…의협 차기 선거 주목
모집 중지 요구를 놓고 의료계에서는 정부의 '결자해지'를 강조한 것이라는 의견이 있지만 현실성이 없다는 비판적인 견해도 나온다.
서울 지역 의대의 A 교수는 "입시가 계속 진행되면 점점 더 되돌리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얘기지만 정부의 전향적인 태도 변화를 촉구하는 차원으로 이해했다"고 말했다.
수도권 대학병원의 B 교수는 "모집 중지를 요구하는 건 실상은 아무 대책이 없고 쓸 카드가 없다는 것"이라며 "2025학년도 의대 입시가 정말 마무리되면 그다음엔 어떻게 되겠느냐"고 물었다.
당장 의정 간 견해차를 좁히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되면서 내년 이후 의정 갈등 해소를 지휘할 의협 차기 집행부 선거에도 관심이 쏠린다.
임현택 전 회장의 탄핵으로 내년 1월 2∼4일 치러질 회장 보궐선거에는 김택우 전국광역시도의사협의회장, 이동욱 경기도의사회장, 주수호 전 의협 회장 등이 출마할 것으로 예상되며, 강희경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 비대위원장도 출마를 고심 중이다.
B 교수는 "보궐선거는 2025학년도 입시가 사실상 끝난 시점이라 차기 집행부는 오히려 2025학년도 정원 문제에서 자유로워진 채 사태 수습에 나서게 될 것"으로 내다봤다.
mihy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