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슈비츠의 기록 '우리 중 그 누구도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연합뉴스 2024-11-24 10:00:09

프랑스 극작가 샤를로트 델보의 회고록, 국내 번역 출간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수용소

(서울=연합뉴스) 황재하 기자 = "눈 속에 누워 있는 마네킹들은 어제의 동기들이다. 어제, 점호할 때만 해도 그녀들은 있었다. (중략) 이제 그녀들은 여기 눈 속에 벌거벗은 시체로 있다"

최근 출간된 '우리 중 그 누구도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아우슈비츠와 그 이후'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반나치 활동을 하다가 붙잡혀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이하 아우슈비츠)와 라벤스브뤼크 강제 수용소에 총 27개월 동안 수감된 프랑스 극작가 샤를로트 델보(1913∼1985)의 회고록이다.

프랑스 청년공산당 당원이었던 델보는 2차대전이 발발하고 나치 독일이 프랑스를 점령하자 나치를 비판하는 인쇄물을 만들어 배포하다가 붙잡혀 1943년 1월 아우슈비츠에 끌려간다.

이야기는 아우슈비츠를 향하는 열차에서 시작한다. 이 열차에는 반란 혐의로 체포된 프랑스 여성 총 230명이 타고 있었다. 수용소에 도착해 살펴보니 어린아이와 함께 끌려온 엄마도 있다.

델보는 당시를 떠올리며 "(아우슈비츠에) 도착해 보니 지옥에 도착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포로들)은 최악을 예상한다- 그러나 인간의 이해력을 초월하는 것을 예상한 건 아니다"라고 말한다.

이후 포로들이 경험하는 일들은 델보의 표현대로 지옥이며 최악의 것들이고 인간의 이해력을 초월한다.

아침 점호에서 졸도하거나 창백한 얼굴을 하고 있거나 건강이 좋지 못한 이들은 수용소 내 죽음의 공간인 '블록 25'에 끌려가 최후를 맞이한다.

수용소를 관리하는 검은 장옷 차림의 나치 친위대(SS·Schutzstaffel)는 때때로 점호가 끝난 뒤 "점호를 견딜 수 없는 사람" 또는 "나이 들거나 아픈 사람"을 찾는다. '블록 25'에 갈 인원을 추려내기 위해서다.

하루는 1만5천명의 포로가 나치의 지시에 따라 눈이 덮인 벌판에 모여 오와 열을 가지런히 맞춰 늘어선다. 집합 시간이 길어지자 발이 얼어버릴 것만 같은 통증에 하나둘씩 자리에 주저앉기 시작한다.

그때 추위와 기다림에 지친 포로들 곁으로 트럭이 연달아 짐칸에 여자 포로들을 가득 싣고 지나간다. 짐칸의 포로들은 대부분 죽고 일부는 살아 있었다. 가스실에서 대량 학살이 벌어진 직후였고, 시체를 트럭에 싣는 일을 한 포로들은 자신도 시체와 함께 트럭 짐칸에 올라타 화장터로 향했다.

이 모습을 지켜본 델보는 궁금해한다. "트럭에 죽은 여자들과 섞여 있던 산 여자들은 가스실을 거쳤을까? 아니면 트럭에서 불꽃 속으로 바로 (산 채로) 던져졌을까?"

'우리 중 그 누구도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아우슈비츠와 그 이후'

델보는 종전과 함께 수용소에서 구출돼 집으로 돌아온다. 그를 포함해 아우슈비츠 호송 열차를 탔던 230명 가운데 살아 돌아온 것은 49명에 불과했다.

국내 번역본은 당초 1965년부터 1971년까지 총 세 권으로 나뉘어 출판된 초판본을 한 권으로 묶었다. 1부 '우리 중 그 누구도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와 2부 '쓸모없는 지식'은 아우슈비츠와 라벤스브뤼크에서 경험한 것들을, 3부 '우리 나날들의 척도'는 그 이후의 삶을 기록했다.

수용소에서 풀려나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2부는 앞으로 펼쳐질 나날들을 향한 희망을 암시하지만, 돌아온 뒤의 삶도 만만치 않다. 작가는 3부에서 "전쟁에서 돌아오건 다른 곳에서 돌아오건 그 다른 곳이 다른 사람은 상상할 수 없는 곳이라면 돌아오는 것은 정말 어렵다"며 "다른 곳에 있는 동안 집 안의 모든 것이 낯설어지기 때문"이라고 털어놓는다.

1부와 2부의 원고는 델보가 풀려난 직후 집필됐으나 20년 동안 서랍 속에서 잠자고 있다가 1965년에야 빛을 보게 된다. 델보는 자신과 함께 호송 열차에 올랐던 여성들이 누군지 조사해 '1월 24일의 호송'을 펴내면서 묻어뒀던 이 회고록의 1·2부 원고도 함께 출간한다. 이후 1971년 3부를 펴내며 3부작을 완성했다.

'우리 중 그 누구도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는 긴 호흡의 글과 짧은 호흡의 글, 운문과 산문이 교차해 실려 있고, 몇몇 글은 비유나 작가의 감정만을 담고 있다. 이처럼 혼란스러운 구성은 마치 숨이 끊어질 듯 간신히 이어지는 작가의 고통을 표현하기 위한 장치로 풀이된다.

델보는 한국에선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서구권에선 홀로코스트를 다룬 대표적인 작가 중 한 명으로 꼽힌다. 프랑스 파리에는 그의 이름을 딴 도서관이 있다.

가망서사. 류재화 옮김. 532쪽.

jae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