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이정철 기자] 류중일 감독이 이끄는 한국 야구대표팀이 지난 13일부터 18일까지 펼쳐진 2024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 프리미어12 B조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이 대회 초대 우승팀이었던 한국 야구대표팀의 자존심은 완벽히 무너졌다.
예견된 실패였다. 선발투수가 없었다. 류중일 한국 야구대표팀 감독은 선발투수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사령탑이다. 하지만 선발진이 부진했을 때 이에 대한 대처법을 전혀 제시하지 못했다. 다만 한국 대표팀 타선은 큰 희망을 보여줬다.
류중일 감독. ⓒ연합뉴스선발진 붕괴, 류중일 감독의 늑장대응
2021 도쿄올림픽 노메달,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조별리그 탈락 수모를 겪은 한국 야구대표팀은 류중일 감독과 함께 지난해 항저우 아시안게임부터 세대교체를 진행했다. 만 25세 이하 선수들을 대거 기용했음에도 항저우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따냈다. 이어 지난해 11월 열린 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APBC)에서도 준우승을 거뒀다.
세대교체에 청신호를 켠 류중일호는 이번엔 2024 프리미어12에 도전했다. 세계에서 상위 12개국이 참여해 세계 최고의 국가를 가리는 대회다.
류중일호로서는 출범 이후 가장 강한 상대들을 만나게 됐다. 비록 메이저리거들은 출전하지 않았지만 KBO리그보다 상위리그인 일본프로야구 선수들을 비롯해 마이너리그 트리플A 선수들도 대거 대회에 나섰다. 대만 선수들은 ‘황금 세대’인데다 B조 조별리그 개최국이기도 했다. 홈 이점을 안고 조별리그를 치를 수 있었다.
그런데 류중일호는 선발진에서 심각한 약점을 드러냈다. 당초 우완 에이스로 원태인, 좌완 신성 손주영을 낙점했으나 두 선수 모두 가을야구에서 부상을 당해 대표팀 최종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류중일 감독은 급하게 임찬규를 내세웠지만 한국 선발진의 무게감은 떨어졌다. 2024시즌 KBO리그 규정이닝을 채운 선발투수가 곽빈 뿐이었다.
고영표. ⓒ연합뉴스▶류중일호 선발투수들의 2024시즌 주요 성적 / 2024 프리미어12 평균자책점
고영표 100이닝 6승8패 평균자책점 4.95 / 평균자책점 9.53(5.2이닝 6자책) 임찬규 134이닝 10승6패 평균자책점 3.83 / 평균자책점 9(3이닝 3자책) 곽빈 167.2이닝 15승9패 평균자책점 4.24 / 평균자책점 0(4이닝 무자책) 최승용 27이닝 2승 1홀드 평균자책점 6.00 / 평균자책점 10.8(1.2이닝 2자책)
결국 한국 선발진은 지난 13일 대만과의 첫 경기부터 무너졌다. ‘1선발’ 역할을 맡은 고영표가 2이닝 6실점으로 패전의 멍에를 안았다. 2회말 그랜드슬램과 투런홈런을 맞으며 순식간에 6실점을 내줬다. 고영표의 구위가 대만 타자들을 전혀 압도하지 못한 결과다.
일본전엔 최승용이 선발 등판해 1.2이닝 2실점을 기록했다. 임찬규는 도미니카 공화국전에서 3이닝 3실점으로 부진했다. 쿠바전에 나선 곽빈이 유일하게 4이닝 무실점으로 활약했으나 투구 시 물집이 잡히면서 5이닝도 버티지 못했다. 그야말로 총제적 난국이었다.
류중일 감독은 늑장대응으로 상황을 더 악화시켰다. 선발투수가 흔들리고 있으면 빠르게 투수교체를 단행해 위기를 모면해야 하는데 ‘믿음의 야구’를 펼치다가 대량실점으로 이어지는 결과를 만들었다. 이로 인해 대만전을 3-6으로 내준 한국은 대만에게 조 2위 자리를 뺏겨 슈퍼라운드에 오르지 못했다.
김도영의 파괴력, 불펜투수들의 경쟁력 확인
한국은 조별리그에서 합계 24실점을 허용했다. 경기당 4.8실점이었다. 결코 적지 않은 실점을 기록했지만 3승이나 거뒀다. 이는 타선의 활약 덕분이었다. 특히 3번타자 김도영의 타격이 돋보였다.
김도영은 첫 경기 대만전부터 3타수 1안타를 기록하며 타격감을 조율했다. 이어 쿠바와의 B조 2차전에선 상대 좌완 에이스 리반 모이넬로를 무너뜨리는 만루홈런, 마지막 타석에 솔로포를 작렬하며 스타 탄생을 알렸다.
기세를 탄 김도영은 호주와의 마지막 경기에서도 투런 홈런 포함 4타점을 쓸어 담으며 맹활약을 펼쳤다. 김도영의 방망이가 만들어낸 쿠바, 호주전 승리였다.
한국은 김도영 외에도 박성한, 홍창기, 박동원의 활약을 더해 지난 16일 도미니카 공화국에게 0-6으로 뒤지던 경기를 역전승으로 장식했다. 타선의 막판 집중력도 돋보였지만 불펜투수들의 추가실점 억제도 역전승의 발판을 놓았다.
특히 6회초 2아웃부터 8회초 1아웃까지 무실점 투구를 기록한 김서현, 8회 1사부터 경기 마무리까지 실점하지 않은 박영현의 활약이 돋보였다.
시속 150km 중,후반대 패스트볼을 뿌리는 김서현은 좌,우 타자를 가리지 않고 타자 앞에서 날카롭게 떨어지는 슬라이더까지 더하며 상대 타자들을 압도했다. 패스트볼의 수평 움직임도 요동치며 타자들의 배트를 헛돌게 만들었다.
김서현. ⓒ연합뉴스박영현은 반대로 엄청난 패스트볼 회전수와 수직 무브먼트로 한국의 뒷문을 단속했다. 이 외에도 우완 파이어볼러 유영찬, 좌완투수 최지민 등이 본인들의 구위를 뽐내며 한국 불펜진의 저력을 보여줬다.
선발진 붕괴와 함께 탈락의 아픔을 맞이한 류중일호. 2026 WBC까지 선발진 재건이라는 과제를 안았다. 반면 타선에서 김도영이라는 새로운 스타를 얻으며 희망을 밝혔다. 불펜진 또한 견고한 모습을 보여줬다. 프리미어12를 통해 과제와 희망을 동시에 발견한 류중일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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