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으로 연기하고 들을 줄 알아야…무대 위에 그냥 서 있는 연습 해야"
"연극은 한가지 아이디어로 단순하게"…23일에는 공개 연기 워크숍도
(서울=연합뉴스) 임순현 기자 = 강연이 시작됐지만 83세의 노(老) 연출가는 입을 꾹 닫은 채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500석 규모의 공연장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지만, 그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정면만 바라봤다. 10여분이 지난 뒤 짧은 인사말이 나오자 그제야 청중들 사이에서 안도의 웃음이 흘러나왔다.
미국의 세계적인 연극·오페라 연출가 로버트 윌슨이 지난 22일 서울 중구 남산드라마센터에서 열린 서울예술대학교 특별 강연에서 '침묵도 소리다'라는 자신의 연극 철학을 학생들에게 몸소 선보였다.
1970년 연극 '귀머거리의 곁눈질'(Deafman Glance)과 1976년 오페라 '해변의 아인슈타인'(Einstein on the Beach) 등 실험적인 작품들로 세계적인 명성을 쌓은 로버트 윌슨다운 강연의 시작이었다.
뉴욕 아방가르드(전위예술) 연극을 이끌며 1970∼80년대 당대 최고의 연출가로 불렸던 로버트 윌슨은 이야기 중심 구조 등 기존의 모든 연극적 전통에 반기를 들고 상징적인 이미지들로 작품을 구성하며 20세기 공연예술의 관념을 뒤집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로버트 윌슨은 연기 전공 학생들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무대 위에 서는 것을 서슴지 말라고 조언했다. 그는 "연기 수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대 위에 그냥 서 있을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라며 "요즘 학생들은 이 부분에 시간을 쏟지 않는데 일찍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침묵만으로도 무대를 장악할 수 있는 배우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로버트 윌슨은 "배우들이라면 무대에서 침묵으로 연기하고, 침묵을 들을 줄 알아야 한다"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가운데서도 움직임을 찾아내야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연출 전공 학생들에게는 작품에 너무 많은 것들을 담아내려 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는 "연극은 한 가지 아이디어로 단순하게 만들어야 한다"며 "너무 많은 것을 담으려고 할 때 모든 것이 불분명해진다"고 말했다.
하나의 의미로만 해석되거나 억지로 메시지를 담으려는 연출도 경계하라고 조언했다. 로버트 윌슨은 "하나의 의미로 만드는 순간 다른 것을 의미할 수 있는 가능성을 모두 부정하게 된다"며 "관객의 마음속에 무엇인가를 불러일으키고, 작품에 대해서 계속해서 생각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예술대학교 초청으로 이번 특별강연에 나선 로버트 윌슨은 23일에도 같은 장소에서 서울예대 학생들과 국립극단 청년단원들을 대상으로 공개 연기 워크숍을 진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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