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샷!] 시위 상징 된 '근조화환'…"정의·공정 죽었다"

연합뉴스 2024-11-23 06:00:29

최소 18년 전 등장…"'죽음' 상징, 공감과 이목 끌기에 효과적인 도구"

동덕여대·아이돌 팬클럽·'정인이 사건' 등 다양한 시위 중심에

남녀공학 전환 추진 항의 거센 동덕여대

(서울=연합뉴스) 이승연 기자 = 동덕여대 남녀공학 전환 반대 시위, 보이그룹 '라이즈' 멤버 승한의 복귀 반대 시위, 네이버 웹툰 이용자들의 혐오표현 규탄 시위, 자녀가 학교폭력의 가해자로 지목된 경기 성남시 의원의 제명을 촉구하는 시위….

최근 한달간 벌어진 이들 시위의 주제는 제각각이지만,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 '근조화환'이 어김없이 주요 시위 도구로 등장한 점이다.

결혼식, 장례식과 각종 기념식에 등장해온 화환이 언젠가부터 시위의 상징으로도 자리잡았다.

23일 포털 사이트 네이버 검색 결과, 국내 언론의 시위 기사에서 '근조화환'이 등장한 것은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충북 청원 오창산단 내 호수공원 개발에 반대하는 주민들이 청원군청 현관에 근조화환을 설치하는 등의 시위를 벌였다는 내용이다. 장례식장에서만 볼 수 있던 근조화환이 최소 18년 전부터 시위의 도구로 '역할'을 확대했음을 알 수 있다.

지난 20일 한 화환 업체는 '근조화환', '축하화환'과 함께 '시위화환'이라는 키워드를 내걸어 상품을 판매하고 있었다.

이 업체의 상담원은 연합뉴스에 "시위용이면 개수에 따라 저희가 화환을 회수하는 서비스도 해드린다"고 소개했다. '시위화환'은 꽃의 개수와 종류 등 일반적인 근조화환과 상품 차이는 없지만, 통상 시위에는 많은 양의 화환이 한 번에 동원되는 만큼 이를 무료로 회수해주는 서비스를 해준다는 설명이다.

또 다른 화환 업체 관계자는 최근 시위용 화환을 찾는 이들이 늘어 검색어 노출을 높이기 위해 상품명에 '시위'를 추가했다고 밝혔다. 매출을 늘리기 위한 일종의 전략인 셈이다.

이 관계자는 시위용 화환을 판매하면서 배송지에 도착해 설치가 거부될 수 있고, 이 경우 환불이 어렵다는 당부를 반드시 남긴다고도 설명했다.

시위 현장에 설치된 근조화환은 민주주의, 공정성, 정의 등 사회의 중요한 가치가 죽었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특정 주체의 결정 및 행위를 규탄하거나 경고·조롱하는 의미로도 활용된다.

비교적 적은 인적·물적 자원으로도 이목을 끌기 쉽고, 화환에 걸린 띠 문구를 통해 구체적인 메시지를 전할 수 있다는 점에서 효과적인 시위 도구로 꼽힌다.

2021년 양부모의 학대로 사망한 '정인이 사건'의 재판이 열린 서울남부지법 앞, 지난해 극단적 선택을 한 교사가 근무한 서초구 서이초 앞 등에는 고인에 대한 추모 및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메시지를 담은 근조화환이 설치되기도 했다.

'정인아 미안하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뉴스 빅데이터 시스템 '빅카인즈'에 따르면 '근조화환 시위' 키워드가 포함된 기사는 올해 총 95건으로, 지난해(2건)보다 50배 가까이 늘었다.

해당 키워드가 들어간 기사는 2020년까지 없었으나, 2021년 14건으로 급격히 늘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사회적 거리 두기 방역 지침이 강화됨에 따라 대규모 인원이 밀집하는 시위를 벌이기 어려워지면서 근조화환 시위가 본격 확산한 것으로 보인다는 분석이 나온다.

빅카인즈에 따르면 최근 1년간 '근조화환'과 '시위' 키워드의 상관계수는 0.37이다. 상관계수가 0.3 이상이면 뚜렷한 양적 선형관계가 있다는 의미다.

이는 '근조화환' 키워드가 들어간 기사 건수와 '시위' 키워드가 들어간 기사 건수가 동시에 증가하거나 감소하는 비례관계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근조화환이 '죽음'을 상징하는 만큼 사람들의 공감과 이목을 끌기에 효과적인 도구"라며 "시위에 지속적으로 활용되면서 이제는 근조화환이 하나의 시위 상징물로 자리 잡은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일각에서는 근조화환이 시위에 등장하는 것에 대한 '피로감'을 토로하기도 한다.

직장인 이모 씨는 "근조화환을 요즘 각종 시위에서 많이 보는데, 정의나 공정과는 관계가 없는 경우에도 등장한다는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근조화환 시위' 키워드가 들어간 기사 건수

winkit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