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조성진 기자] 피아니스트 김광민 교수(동덕여대)에게 2025년은 새로운 원년이다. 30여 년 가까이 몸담았던 교정을 떠나 음악인 본연의 길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학교에 집중하느라 그간 하지 못했던 다양한 음악을 본격적으로 시도할 예정이다.
김광민 하면 흔히들 재즈, 뉴에이지 피아니스트라고 하지만 그의 음악적 뿌리는 록이다. ‘동서남북’, ‘조용필 위대한탄생’ 활동에서 잘 알 수 있다.
그는 웬만한 음악매니아들보다 록 음악에 대한 식견이 높다. 사전식으로 줄줄 외워대는 잡학이 아니라 일일이 모든 음반을 접해봐야 알 수 있는 내용들이다. 문화예술적 금기가 많던 70~80년대 상황에서 치열하게 음악감상(해적판)을 한 흔적이 대화 중 여러 차례 느낄 수 있었다.
초기 블루스와 재즈부터 키스 자렛, 허비 행콕, 존 콜트레인, 웨더 리포트, 존 루이스, 그리고 클라투, 소프트머신, UK, 예스, 킹 크림슨, EL&P, 슈가로프에서 그렉 올맨, 밥 제임스, 레드 제플린, 배드 컴퍼니, 그랜드 펑크 레일로드, 제임스 갱 등등 거의 모든 록/재즈의 거장 밴드 이름과 곡까지 구체적으로 기억하고 있을 정도다. 심지언 특정 밴드의 여러 라이브앨범을 언급하며 완성도 면에서 구체적으로 A와 B 앨범이 어떻게 다른지 비교할 만큼 해박하다.
김광민 교수는 지난 10월 말 ‘에이치앤에스(H&S)’ 엔터테인먼트와 매니지먼트 계약을 체결했다. ‘전속’이 아닌 일부 영역에 대한 ‘매니지먼트’에 한정한 계약이므로 추후 얼마든지 변화 가능성은 열려 있다.
스포츠한국 ‘조성진의 가창신공’에서 동덕여대 실용음악과 김광민 교수를 만났다.
대학로(혜화동)에 있는 동덕여대 공연예술센터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김광민 교수는 추가 설명이 필요한 부분에선 직접 피아노를 연주하며 예를 들었다. EL&P의 곡을 연주하다가 갑자기 블루노트 패턴으로 바뀌고 존 콜트레인의 ‘쓰리 토닉’ 시스템을 연주하다가 트로트까지 다채로운 스타일이 그의 손에서 연출됐다. 이런 방식으로 대중을 상대로 특강을 진행해도 매우 유익하고 흥미로울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그는 오늘날의 동덕여대 실용음악과를 일군 장본인이다. 1998년부터 동덕여대와 인연을 맺고 국내 최초로 4년제 대학에 실용음악과 개설을 주도했다. 이 과정에서 모교인 버클리음대의 수업내용 장점을 국내에 이식해 오늘날 국내 실용음악 분야 커리큘럼의 초석을 다졌다.
“학교에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특히 이사장님은 한국에서 최초로 4년제 실용음악과를 만든 분이죠. 이사장님이 이 분야 애정을 갖고 학과 발전을 위한 제반 노력을 아끼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날의 실용음악과로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2025년 정년퇴직을 앞둔 김광민 교수는 그간 학교에서 많은 제자를 배출했다. 제자들은 교수, 뮤지션 등으로 활발히 활동 중이며 현재 K팝씬의 주역도 적지 않다.
퇴임 후 그간 미루던 곡 발표도 활발하게 할 예정이다. 이젠 정규앨범의 시대가 아니다 보니 김광민 교수 또한 유튜브에 새로운 곡을 하나씩 올리는 방식으로 창작 활동을 하고 싶다고 했다. 특히 스토리가 있는 음악을 선보이고 싶다고.
김광민은 자신의 곡 발표 외에 임재범, 김건모, 나윤선, 유현상, 정동하, 권진원, 차은주, 이미키, 해리앤, 다빈크 등 많은 음악인의 곡을 쓰거나 편곡 작업을 했다. 아이유 ‘나만 몰랐던 이야기’의 피아노 버전 편곡 및 연주, 그리고 요즘 가장 핫한 가수 중 하나인 손태진의 ‘이 세상 끝까지’ 작곡가이기도 하다.
손태진은 2020년 8월 15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김광민 단독 콘서트에 게스트로 출연했을 뿐 아니라 2020년 11월 1일 방송된 MBC ‘TV예술무대’의 김광민 콘서트에서 듀오 무대를 꾸미기도 하는 등 남다른 친분을 보여준 바 있다.
김광민 교수는 손태진의 보컬에 대해 “소리가 곱고 음역 레인지가 넓은 게 매력이며, 무게감이 있고 남성적”이라고 평했다. 또한 “남북통일을 염원하는 마음으로 작곡한 곡이 있는데 후일 통일 한국의 애국가로 사용되면 좋겠다”며 “이 애국가 가창자로 손태진이 적임자일 것 같다”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피아노 연주로 이 곡을 내게 들려줬다. 엄숙한 듯하지만, 친근 따뜻하고 정감 있는 멜로디에 일견 단호한 기상이 함께하는 곡이었다. 사비(후렴) 부분에선 합창을 가세시켜 더욱 큰 울림으로 만들면 좋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이 곡을 테마로 해 국내외 유명 기타리스트들이 통일 한국을 염원하는 잼 세션을 벌이고 여기에 유명 가수들 피처링까지 함께 하는 버전을 만들어도 좋을 것 같았다. 마치 ‘We Are the World’나 세계적인 록 기타리스트들이 함께한 ‘Hear 'n Aid’의 ‘Stars’처럼.
아이돌 팀 이야기로 주제가 바뀌자 김광민 교수는 잔나비와 블랙핑크를 좋아한다고 했다. 특히 블랙핑크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휘파람’은 잘 만든 곡이라고 칭찬했다.
수많은 건반으로 구성된 피아노를 연주하는 건 어찌 보면 음을 하나하나 조립해가는 행위와도 비슷해 보인다. 그러고 보니 유명 피아니스트 중 난도 높은 키트 조립 애호가들이 있다. 줄리아드(줄리어드) 음대 석사 및 맨해튼음대 박사인 ‘스타인웨이’ 아티스트 조재혁도 그중 하나다. 조재혁의 연주 세계와 각종 키트 조립 매니아 관련 내용은 2021년 7월 5일 자 스포츠한국 ‘인물플’에서 자세히 다룬 바 있다.
피아니스트 김광민 또한 밀리터리 프라모델 덕후다. 중학교 때부터 ‘타미야’ 프라모델에 심취한 매니아로, 일본 타미야 본사까지 찾을 만큼 열정이 대단하다. 현재까지 많은 프라모델을 소장하고 있다. 그는 정교한 스케일의 프라모델 조립에만 그치지 않고 직접 칠까지 할 정도다.
프라모델 외에 R/C 헬리콥터와 비행기 등을 컬렉션하고 있다. 지금도 거실에서 R/C헬기를 띄우곤 한다. 좁은 공간에서 띄우는 만큼 정교한 조종 테크닉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7월 15일 자 스포츠한국 ‘조성진의 기타신공’에서 세션 베이스계의 거장 신현권을 다룬 바 있는데, 그 역시 R/C비행기 매니아라고 했던 게 기억났다.
영화는 ‘매트릭스’ 등 SF 장르를 선호한다. 최근 ‘사운드 오브 프리덤’, ‘리미트리스’, ‘미스터 라잇’, ‘와이프 라이크’ 등을 재미있게 봤다고.
김광민 교수는 여전히 미혼이다. 그래서일까? 대화하다 보면 세파에 찌들지 않은, 그 나이에서 쉽게 보기 힘든 순수함이 묻어 나온다.
“퇴임 후 몇 개월 동안 휴식을 취하고 싶어요. 그 후에 그간 하지 못했던 음악에 전념할 예정입니다. 오랫동안 좋아한 프로그레시브록도 하고 싶고, 대중적이지 않더라도 나만의 음악도 해보고 싶습니다. 예전부터 연구한 스타일도 포함해 다양하게 녹여내고 싶어요. 물론 대중적인 것과 비대중적인 것 모두를 병행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