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한국 박준영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5박8일 간의 중남미 순방 일정을 마치고 오는 21일 귀국한다. 윤 대통령은 북한의 러시아 파병과 미국 트럼프 신(新) 행정부 출범 이후 열린 처음 열린 다자외교 무대에서 존재감을 키웠다. 특히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와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는 러시아와 북한의 군사협력을 '불법'으로 규정하면서 국제사회의 압박 수위를 높였다. 또 한미일, 한일, 한중 정상회담 등 양자 회담을 통해 협력 강화를 다짐하는 등 외교의 지평을 확대했다.
윤 대통령은 19일(현지시각) 오후 대통령 전용기인 공군 1호기 편으로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갈레앙 공군기지를 통해 출국했다. 이 자리에는 파비우 실바 대령(공군기지 단장)과 최영한 주브라질 대사가 나와 배웅했다.
윤석열 대통령(가운데)이 18일(현지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현대미술관에서 열린 19차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참석해 '글로벌 기아·빈곤 퇴치 연합 출범'에 참여한 G20 각국 정상, 국제기구 수장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제공순방 기간 윤 대통령은 APEC과 G20 정상회의 일정을 소화하면서도 미국, 일본, 중국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베트남, 브루나이, 영국, 남아프리카공화국 등과 양자 회담을 통한 성과도 챙겼다. 특히 2년 만에 열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는 방한과 방중을 제안하며 각종 악재로 얼어붙어 있었던 한·중 관계 복원에 시동을 걸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시 주석이 윤 대통령을 먼저 초청했고 양 정상 모두 ‘초청에 감사한다’고 했다"며 "내년 우리가 경제 APEC을 주최하기 때문에 윤 대통령이 시 주석께 자연스럽게 방한해 달라고 했다"고 전했다.
시 주석은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4년 7월 이후 한국을 방문하지 않았다. 내년에 방한하게 되면 11년 만에 한국을 찾는 게 된다.
윤 대통령은 중국이 희망하는 2026년 APEC 의장국 수임에 관한 지지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또한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이 내년 10주년을 맞이하는 만큼, 서비스 투자 협상이라는 남겨진 과제를 조속히 논의하기로 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양국 정상 간 표정이나 행동이 우호적이었다"며 "웬만하면 윈윈 협력의 방향을 같이 찾자는 뜻은 같았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의 만남은 중국 측의 의중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5월 서울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담(리창 총리 방한)을 계기로 한·중간 고위급 대화 채널이 본격적으로 활성화된 데 따른 결과로 보인다. 최근 중국은 한국인에 대한 단기 비자 면제를 깜짝 발표한 데다 양국 정상이 협력을 다짐한 만큼, 미·중 패권 경쟁 이후 다소 소원해진 한·중 관계에도 '훈풍'이 불 것으로 예상된다.
윤석열 대통령이 18일(현지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현대미술관에서 열린 19차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제1세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제공윤 대통령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한미일 정상회담에서 3국 협력의 중요성을 재확인하기도 했다. 또 북·러 군사협력이 강화되는 상황 속 한미일 간 공조 실무를 담당할 '협력 사무국'도 설치하기로 했다. 또한 한·일 정상회담에서는 이시바 총리와 내년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앞둔 만큼, 양국 관계를 한 단계 발전시켜 나가기로 뜻을 모았다. 이 밖에도 윤 대통령은 페루와의 정상회담을 비롯해 베트남, 브루나이, 남아프리카공화국, 영국과도 양자회담을 갖고 양국 관계의 발전과 협력을 논의했다.
윤 대통령은 APEC과 G20 정상회의에서 군사협력을 이어가는 러시아와 북한을 정조준하며 국제사회의 압박 수위를 높이기도 했다. 지난 18일 G20 1세션에서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대신해 참석한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 앞에서 러·북 군사 협력에 대한 즉각 중단을 촉구하기도 했다. 10번째 발언자였던 윤 대통령 직전에 마이크를 잡은 라브로프 외무장관이 전쟁 이야기를 빼놓자 이를 짚으며 국제사회의 연대를 촉구한 것이었다.
윤 대통령의 발언이 끝난 뒤 이시바 일본 총리,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 등도 가세하며 러·북 군사협력 비판 대열에 합류했다.
윤 대통령은 APEC과 G20 회의를 통해 글로벌 중추 국가로서 입지를 다지기도 했다. 개발도상국의 경제성장을 지원하고, 선진국과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자처했다. 또 기후 위기와 식량안보에 대응하기 위한 '녹색 사다리'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아프리카 식량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연내 1000만 달러를 지원하기로 하는 등 각 협의체와 펀드에 대한 재정 지원을 약속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대한민국이 글로벌 중추국으로서 책임 외교를 구현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라고 설명했다.
윤 대통령은 내년 경주에서 개최될 APEC을 홍보하며, 국제사회의 관심을 촉구하기도 했다. 지난 15일 리마 국립대극장에서 열린 ‘APEC CEO 서밋’ 기조연설에서는 "내년 APEC 정상회의는 대한민국의 역사와 문화를 간직한 ‘천년고도’ 경주에서 개최된다"면서 "APEC 경제인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적극적인 동참을 바란다.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지붕 없는 박물관’ 경주로 여러분을 초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