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능력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사업 벌여…본인에 주된 책임"
(서울=연합뉴스) 황윤기 기자 = 부산에서 180억원대 전세 사기를 저지른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50대에게 징역 15년이 확정됐다.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단체에 따르면 이는 2022년부터 사회적 문제로 부상한 대규모 전세사기범에 관한 대법원의 첫 유죄 확정 판결이다.
대법원 1부(주심 신숙희 대법관)는 사기 등 혐의로 기소된 최모 씨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20일 확정했다.
최씨는 2020년∼2022년 '무자본 갭투자' 방식으로 부산 수영구 오피스텔을 포함해 9개 건물에서 임대사업을 하면서 229명에게 전세보증금 180억원을 받은 뒤 돌려주지 않은 혐의로 기소됐다.
당초 피해자 대책위원회 주도로 진행된 이 소송은 피해자 210명, 전세보증금 160억원 규모로 알려졌으나 대책위와 별개로 소송을 진행하던 피해자들까지 합쳐지면서 피해자 수와 피해 규모가 늘어났다.
법정에서 최씨는 부동산 정책 변화로 인한 각종 규제·금리 인상 등으로 보증금을 반환하지 못했을 뿐이라고 항변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심 법원은 "부동산 경기나 이자율 등 경제 사정은 정확한 예측이 불가능하고 변동할 수 있어 임대인은 최악의 상황을 고려하고 대비해야 한다"면서 "이 사건의 주된 책임은 자기 능력으로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임대사업을 벌인 피고인에게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검찰이 구형한 징역 13년을 상회하는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이는 징역 10년까지 선고할 수 있는 형법상 사기죄에 법원이 여러 죄가 있을 경우 합쳐서 고려하는 경합범 가중까지 활용해 선고할 수 있는 법정 최고형이다.
피해자별 피해액이 5억 원을 초과하면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에 따라 무겁게 처벌할 수 있지만 소액 피해자가 많은 전세 사기에는 적용하기 어렵다. 개정 법안이 발의되기도 했지만 21대 국회에서 처리가 무산됐다.
최씨는 형이 너무 무거워서 부당하다며 1심 판결에 불복했다.
그러나 2심은 "원심의 양형이 재량의 합리적 범위를 벗어났다고 볼 수 없다"며 항소를 기각했다. 이날 대법원의 판단도 마찬가지였다.
부산 전세사기 피해자 대책위원회는 전날 기자회견에서 "사회적 재난인 전세사기 범죄와 관련된 첫 번째 대법원판결이기 때문에 중요한 의미를 지니며 향후 전국의 다른 전세사기 형사재판에도 주요 판례로 활용될 예정"이라고 했다.
이 사건은 1심을 맡았던 박주영 부장판사가 20∼30대 사기 피해자들의 탄원서를 법정에서 하나하나 읽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박 부장판사는 여러 사회적 의제와 법정 안팎의 모습을 담담하게 풀어낸 책들을 펴내기도 했다.
당시 박 부장판사는 피해자들에게 "여러분은 자신을 원망하거나 자책하지 말라. 탐욕을 적절히 제어하지 못하는 부조리한 사회 시스템이 여러분과 같은 선량한 피해자를 만든 것이지 여러분이 결코 무언가 부족해서 이런 피해를 본 것은 아니라는 점을 기억해 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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