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김종우 선임기자 = 국회 보좌관 출신으로 대기업 대관담당 임원인 A씨는 "명태균씨의 수법은 선거 때마다 늘 있었던 풍속도다. 정치 컨설턴트라는 모호한 직함을 내세운 자들이 정치인들을 찾아와 입에 발린 소리를 늘어놓곤 했다"고 했다. 타깃으로 정한 정치인들을 상대로 자체 여론조사 결과를 들고 찾아와 당선 비법을 설파하고, 단물만 쏙 빼먹고 '먹튀' 했다는 것이다.
이 같은 행태는 이른바 '명태균 게이트'에서도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명씨는 자신이 실질적으로 운영한 것으로 알려진 미래한국연구소라는 여론조사기관을 정치개입의 수단으로 십분 활용했고, 공천 과정에서 정치인들에게 자신의 '뒷배경'을 앞세워 이들을 농락했다. 실제로 그는 2022년 6월 재·보궐선거 이후 공천 대가를 명목으로 김영선 전 의원으로부터 세비 등 7천620여만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명씨는 또 2022년 6월 지방선거에 출마하려던 예비후보 2명에게 모두 2억4천만원을 수수한 혐의도 받는다. 검찰은 명씨의 구속영장에서 그가 당시 국민의힘 당대표였던 이준석 의원, 윤석열 대통령 부부와 친밀한 관계라고 주변에 과시하며 돈을 받았다고 언급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명씨와 관련해 "연루된 여권 인사들 대부분이 선거 브로커 (명씨)에게 당한 사람들"이라고 했다.
사기와 기만은 종이 한 장 차이다. 정치 브로커들의 또 다른 탈·불법 행태는 타깃이 된 정치인들의 홍보물을 직접 제작하면서 이익을 거두는 방법이다. 홍보물 제작에 집안 식구들을 동원한 정치 브로커도 있다고 한다. 가족 일가가 여론조사·홍보물 제작·회계 등 역할을 분담해 선거 때마다 '한탕벌이'를 했다는 것이다. 이 정치 브로커는 이름이 꽤 알려져 있다. 문제는 정치 브로커들이 정치인들에게 접근할 때 여론조사 조작도 서슴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치인들이 이들에게 두 눈 뜨고 당하는 이유는 이들이 '마사지'한 여론조사를 검증할 능력이 없다는 데 있다. 여기에 유력 정치인과의 친분과 명씨처럼 신기(神氣)까지 갖췄다면 두뇌 회로가 마비된다는 것이다. 특히 후보를 여론조사로 결정하는 시스템이 안착하면서 정당이 여론조사에 휘둘리고 있는 상황도 정치 브로커들이 활개 치는 토양이 되고 있다. 향후 각종 선거에서는 명씨 사건이 '반면교사'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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