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액티브] "겨울나기 힘들어"…이주노동자 불법숙소 여전

연합뉴스 2024-11-20 06:00:05

경기 지역 농장 7곳 취재…"당국이 방치" vs. "노동자가 가깝고 싼 숙소 요구"

경기도 '이주노동자 숙소 지원사업' 진행…"단속보단 지원·점검 통해 개선해야"

지난달 23일 경기도 포천의 이주노동자 불법 숙소의 모습

(포천=연합뉴스) 장종우 인턴기자 = 지난달 강원도 평창의 한 비닐하우스에서 태국 출신 불법 체류 외국인 노동자 부부가 난방기기에서 발생한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사망했다.

그에 앞서 2020년 12월에는 경기도 포천에서 캄보디아 출신 이주노동자가 영하 20도를 넘나드는 한파 속 난방도 안 되는 비닐하우스에서 숨지는 일이 벌어졌다.

이러한 사고들에도 겨울철 농촌의 이주노동자 불법 숙소 문제는 현재 진행형이다.

연합뉴스는 지난달 23일과 이달 14일 포천 등 경기 북부 두 지역의 농장 7곳을 방문해 이주노동자 불법 숙소 실태를 확인했다.

포천에서는 일반 채소 비닐하우스 사이로 군데군데 검은 차단막을 씌운 비닐하우스를 볼 수 있었다.

기자와 동행한 김달성 포천 이주노동자센터 대표는 "모두 이주노동자 숙소"라며 "농지법과 건축법을 위반한 불법 시설물이다"라고 지적했다.

농지법에 따르면 농지는 거주 목적으로 사용할 수 없다.

지난해 철거된 이주노동자 불법숙소 화장실의 간이 변기

지난해 철거된 한 숙소 자리에는 쇠 파이프와 나무판자로 틀을 만들고 검은 천을 두른 조악한 화장실이 남아있었다. 변기는 고무대야와 나무판자로 만들어졌다.

김 대표는 "지난해까지 3명의 이주노동자가 사용한 화장실이다"라며 "많은 이주노동자가 여전히 열악한 주거환경에 놓여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23일 네팔 이주노동자들이 사는 숙소 문에 붙어있는 계약서

네팔에서 온 노동자 2명이 사는 숙소에 들어가 보니 통풍이 전혀 되지 않았고 벽에는 곰팡이가 슬어 있었다. 문에는 '외국인 근로자 개인의 자유로운 의지로 추후 숙소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계약서가 붙어 있었다.

샌드위치 패널로 만든 숙소에 사는 3명의 캄보디아 출신 노동자는 벽이 얇아 겨울을 나기 힘들다고 말했다. 이 숙소의 벽은 손가락 두 마디 정도로 얇았다.

경기도 이민사회국 관계자는 "샌드위치 패널은 최소 20㎝ 두께로 지어야 추위에 버틸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올해 5월 기준 불법 가설건축물에 사는 이주노동자는 약 180만명으로 추정된다고 덧붙였다.

지난달 23일 샌드위치 패널로 만든 이주노동자 숙소의 얇은 벽

김 대표는 "이주노동자들의 열악한 주거환경이 주목받으면서 고용노동부가 불법 숙소를 제공하는 사업장에는 이주노동자 고용을 허가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내놨지만, E-9 비자(농업 등 비전문 직종에 취업하는 외국인에게 발급되는 비자)를 가진 노동자에게 고용주가 숙소를 제공할 의무는 없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에 일부 농장주들이 노동부에는 '숙소 미제공'으로 신고하고 실제로는 불법 숙소를 제공하는 행태가 만연하다"며 "당국은 이런 현실을 알고도 단속 의지가 없다"고 지적했다.

농장주들은 법에서 정한 기준에 맞추는 게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항변했다. 무엇보다 노동자들이 먼저 가깝고 싼 숙소를 요구한다는 주장이다.

지난달 23일 농장주 A씨가 공개한 숙소 내 노동자들이 창고로 사용하는 방의 모습.

이주노동자 4명을 고용한 A(40)씨는 "시내에 정식 숙소를 얻어줘도 출퇴근에 30분이 걸려 노동자들이 먼저 가까운 숙소를 원한다"며 자신이 제공하는 숙소를 공개했다.

이 숙소 역시 불법 시설물이긴 하지만 깨끗한 방과 세탁기, 에어컨, 난방 시설 등을 갖추고 있었다.

A씨는 "이주노동자들은 돈을 더 모으길 원한다. 월세방은 매달 50만원씩 내야 하지만, 나는 숙식비 25만원만 받는다. 이 정도면 괜찮지 않나"고 항변했다.

이주노동자들도 비슷한 입장을 밝혔다.

캄보디아 출신 B(30)씨는 "캄보디아에서는 공장에 다니며 한 달에 250달러(약 35만원)를 벌었는데 한국에서는 200만원 넘게 번다"며 "이 돈으로 본국의 가족을 부양한다"고 말했다.

라오스에서 온 C(35)씨도 "라오스에서 장사하며 한 달에 30만원 정도를 벌었는데 한국 농장에선 6~7배를 더 번다. 내년에 다시 오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 14일 농장주 정택진(50)씨가 계획한 새로운 이주노동자 숙소 부지

그렇다면 열악한 숙소에 대한 해법은 없을까.

8명의 이주노동자를 고용한 정택진(50) 씨는 경기도에서 진행 중인 '이주노동자 숙소 지원사업'을 신청했다.

정씨는 "이번에 지원받아 약 2억원을 들여 30평 규모의 숙소를 지으려 한다"며 "정부가 지원해주지 않는다면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사업에 선정되면 도와 시가 합쳐 비용의 50%를 부담한다.

김원규 경기도 이민사회국장은 이주노동자 주거 문제는 단속보다는 지원과 점검을 통해 점진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봤다.

김 국장은 "돈이 있으면 건물을 지을 수 있는 자영농과 달리 임차농은 남의 땅이라 숙소를 지을 수도 없다"며 "불법 숙소에 대해 농장주의 책임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들을 악마화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공공기숙사 등 여러 지원 사업을 추진 중이니 농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주노동자 문제는 분야에 따라 고용노동부, 법무부, 도청, 시·군 등의 여러 부처가 협의해야 할 만큼 복잡해 '컨트롤 타워'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화연 이민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이주민 정책이 노동·가족·교육 등 분야별로 쪼개져 업무 연계가 힘들다"며 "중심을 잡을 수 있는 전담 조직을 만들고 부처 간 연계를 돕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whddn3871@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