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2024년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팬은 약 2억2천5백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연합뉴스 동포다문화부 K컬처팀은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시선의 한국 문화와 K컬처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매주 게재하며 영문 한류 뉴스 사이트 K바이브에서도 영문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남도 기행은 늘 좋은 추억으로 가득하다. 서해안고속도로를 따라 남쪽으로 달렸다.
◇ 채석강과 적벽강
부안 채석강·적벽강 일원은 전북 특별자치도 부안군 변산면 격포리에 있는 자연 명승지다. 2004년 11월 17일 대한민국의 명승 제13호로 지정됐다. 적벽강과 채석강은 강이 아니다. 송나라 소동파의 적벽강과 비슷한 풍광이란 뜻이다. 채석강은 더욱 장엄하다. 소위 수만 권의 책을 쌓아 놓은 듯한 경치다. 줄포 IC에서 서해고속도로를 벗어나면 격포, 곰소, 모항이 모두 변산반도의 아름다운 포구였으나 지금 이곳은 모텔과 횟집으로 가득 차 있다.
◇ 내소사
순천 선운사의 말사로 633년 (백제 무왕 34년) 승려 혜구두타(惠丘頭陀)가 창건했다. 1663년(인조 11년) 청민(淸旻) 선사가 지은 대웅전은 정교하고 아름답다고 해 보물 291호로 지정돼있다.
이후 내소사는 1865년(고종 2년) 관해(觀海) 선사가 중수하고 만허(萬虛) 선사가 보수, 혜산(慧山) 선사가 마무리했다. 원래 소래사라 하였는데 언제부터 내소사라고 불리게 되었는지는 불명이다. 고려 동종과 영산회 괘불탱화 등 보물과 3층 석탑, 설선당(說禪堂)과 요사채 등 지방문화재가 볼만하다.
◇ 함평
함평 나비대축제를 다녀갔다. 대단히 성공적으로 보였다.
공식 명칭은 '함평 세계 나비 곤충 엑스포'다. 올해는 지난 5월에 개장해 18만여명이 다녀갔다니 자체 인구 3만여명의 6배나 되는 외지인을 끌어들인 셈이다. 입장료 등 총수입이 15억원이라고 한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나비가 모두 집합했고, '나비 생태관'에는 39종 33만 마리의 나비가 날아다니고 있으니 장관이고 어린이들에겐 환상이다. 손녀딸이 좋아할까 아닐까를 미심쩍어하며 '배추흰나비 애벌레' 두 마리를 샀다.
열심히 들여다보면 일주일 후에 나비로 변한다니 아이들이 좋아할 듯도 하다. 관람객에게 배추벌레 한 마리씩 사게 할 수 있다니. 이것이야말로 '함평 나비대축제'가 성공할 수 있었던 기본 컨셉이다.
국제곤충관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크다는 헤라클레스 장수풍뎅이를 비롯해 아름다운 곤충들을 많이 보고 이 늙은이도 마음이 어려지는 듯했다.
아이디어가 좋았고 주제가 시의적절했기에 이 새로운 시도가 성공할 수 있었겠다. 물론 이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의 인식변화도 중요했다.
내가 방문할 당시에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Birdhouse Project'라는 설계 작품 전시회였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가, 자동차, 요트, 우주, 공항 등의 산업디자이너, 박물관 디자이너, 대학생들에게 '새집'을 설계하도록 요청했다. 지구 환경보존에 동참하라는 요구다.
1993년부터 계속해 왔으니 이제는 유명세를 치르게 됐다. 렌조 피아노, 피터 아이젠만, 노만 포스터, 니컬러스 그림쇼, 닐 데나리, 알렉산드로 멘디니, 악셀 슐테즈, 구로카와 키쇼, 안도 다다오, 다니엘 리베스킨트 등 여러 건축가가 작품을 냈다.
◇ 강진
강진군과 6개 정육업체가 15억원을 공동 투자해 지난 2008년 5월 14일 문을 연 강진들 황금 한우 암소 먹거리촌이 눈길을 끌었다. 아래층 정육점에서 고기를 구입한 뒤, 2층으로 올라가 지정식당에서 고기를 굽는다. 축산농가로 구성된 '강진 한우 사업단'이 자신들의 한우를 이곳에 직송해 유통과정을 줄인다. 결과는 놀랍다. 고깃값이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40%에도 못 미친다.
◇ 진도
대체로 섬사람들은 거칠다고 한다. 거친 기후풍토 때문이겠다. 그런데 우리 남쪽 다도해의 몇 개 섬에는 그런 원리가 안 통한다. 진도가 그중의 하나인데 그 이유는 고기도 잘 잡히고 농사도 잘돼 어느 육지 마을보다도 사람들이 넉넉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였는지 오래전부터 진도에는 서울에서 귀양을 오는 사람이 많았다.
오죽했으면 전라감사가 "진도에 유배자가 많아 주민들이 그들을 먹여 살리느라고 굶어 죽을 판이니, 유배지를 다른 곳으로 옮겨 달라"고 조정에 건의할 정도였다고.
그런데 그 유배자들은 그냥 곡식만 축내지는 않았다. 그들이 모두 격조 높은 식자층이었으니 글, 그림, 서예가 어쩔 수 없이 전파됐다. 그래서 진도는 예향이다.
고려시대에는 몽고군에 항거하여 싸우다 진압된 삼별초 군의 근거지였다. 고려 원종이 몽고와 강화하여 국가가 망하는 것을 참지 못한 배중손이 왕의 육촌인 왕온을 왕으로 추대해 1000여 척의 배에 1만 2천 명의 휘하군대를 이끌고 진도로 와서 벽파진 근처의 용장산에 행궁을 짓고 토성을 쌓아 대몽항쟁을 벌였다.
삼별초 군은 한동안 전라도 일대와 제주도를 함락시킬 정도로 세를 떨쳤지만, 고려장수 김방경과 몽고장수 홍다구의 여몽 연합군에 패퇴하고 배중손과 왕온이 전사하자 사기가 꺾였고, 제주도로 건너가 2년여를 버텼으나 다시 연합군에 완전히 토벌됐다. 용장산성은 사적으로 지정돼있다.
또 다른 사적인 남도석성도 삼별초 군이 쌓았다는 주장이 있으나 삼국시대부터 성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고 본토와 제주도를 잇는 교통로로 왜구의 침범이 잦아서 고려 때에도 방어거점으로 쓰였다.
조선조에는 수군의 중요기지가 됐다. 약 500미터 길이의 석성이 남아있는데 임진왜란 때 무너진 것을 다시 쌓은 것이다.
지금은 본토의 땅끝인 남해와 다리가 놓여 자동차로 건너다니지만, 그 사이 바다는 우리나라 남해안에서 물살이 가장 거세다는 울돌목이다.
진도 출신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사람은 소치(小痴) 허련(許鍊,1808~1893)이다. 나라의 가장 변두리 섬사람이 남종화(南宗畵)의 대가로 성장하고 일가를 이룬 것은 연유가 있다. 그는 자기 인생과 그림 작업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 위대한 두 사람의 스승을 뒀다.
한 사람은 추사 김정희였고 또 한 사람은 초의선사였다. 허련은 28세 때 해남의 녹우당에 가전 되어온 공재 윤두서 집안의 그림들을 섭렵하여 익혔고, 초의선사의 소개로 김정희를 만나 가르침을 받았다.
훗날 김정희는 허련을 두고 "압록강 동쪽에 소치만 한 화가가 없다"는 극찬했다. 소치는 임금 헌종(憲宗)으로부터도 후원받았고 신관호, 조명호, 조희룡, 이한철, 전기, 유재소, 박인석 등과 같은 시대를 살며 교류했다.
허련은 '의경'(意境)을 중시하는 원대 남종화 양식을 소화하여 독자적으로 한국적 남종화를 만들었다. 그의 이러한 예술세계는 호남의 전통 화단을 중심으로 후대에 수많은 화가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해남
공룡박물관과 그 주변 풍경은 환상이다. 정말로 공룡들의 시기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 있다.
강물이 바다로 흘러드는 작은 만 입구는 갈대로 뒤덮여 시야에는 다른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정말로 갑자기 멀리서 공룡들이 소리 내며 지나갈 듯한 분위기다.
2008년 10월에 한국의 백악기 공룡 해안을 실사하러 한국에 온 세계자연보전연맹(유네스코 자문기관)의 패트릭 맥키버 북아일랜드 지질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우리 남해안 일대 즉 해남, 화순, 보성, 여수, 고성 등의 공룡 발자국과 화석 지형을 둘러봤다.
그는 "백악기 역사를 종합적으로 보여주는 유산으로 가치가 있으며 관리가 잘 돼 있다. 실사 도중 바위에서 새가 모이를 쪼아 먹은 흔적을 발견했는데 이는 8천500만년 전에 새와 익룡이 공존했음을 보여준다. 하늘을 나는 익룡이 땅에서 어떻게 걸었는지에 대한 논란은 이곳의 발자국으로 두발 아닌 네발로 걸었다는 결론에 확실히 도달한다"라고 긍정적인 평가를 하는 말을 했단다.
현재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돼있다. 2021년 7월 26일, '해남 황산면 우항리 공룡·익룡·새 발자국 화석 산지'에서 '해남 우항리 공룡·익룡·새 발자국 화석 산지'로 명칭이 변경됐다.
김원 건축환경연구소 광장 대표.
▲독립기념관·코엑스·태백산맥기념관·국립국악당·통일연수원·남양주종합촬영소 등 설계. ▲ 문화재청 문화재위원, 삼성문화재단 이사, 서울환경영화제 조직위원장 등 역임. ▲ 한국인권재단 후원회장 역임. ▲ 서울생태문화포럼 공동대표
* 자세한 내용은 김원 건축가의 저서 '행복을 그리는 건축가', '꿈을 그리는 건축가', '못다 그린 건축가'를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
<정리 : 이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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