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조성진 기자] 한 세대를 풍미한 미국의 여러 거장 보컬을 연상케 하는 정통 소울 보컬 음색이다. 많은 에너지를 요하는 파워풀하고 높은 옥탄가의 창법이랄까.
물론 보컬 트렌드와는 결이 다를 수 있다. 조금만 더 일찍 태어났더라면, 그래서 90년대 가요계에 등장해 굵고 파워풀한 폭풍 체스트 창법을 들려줬다면?
‘찐하고’ 깊은 게 장점일 수도 아닐 수도 있어 보인다. 물론 이것은 그만큼 아래쪽의 소리를 베이스로 하는 가운데 바리에이션을 취하는 방식을 견지하고 있다는 것이기도 하다. 그만큼 기본기가 확실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싱어송라이터 이동하(38) 서울예대 실용음악 보컬교수의 노래를 들으며 이러한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도 트렌드에 민감하다. 정통 소울에서 이젠 소위 얼터너티브 R&B 스타일을 즐겨 듣고 또 그러한 톤을 염두에 두려고 한다.
스포츠한국 ‘조성진의 가창신공’에서 서울예대 실용음악과 이동하 교수를 만났다.
이동하 교수는 1986년 경기도 안양에서 2남 중 막내로 태어났다. 안양 동안고교 재학 중 밴드 ‘프레디’ 리드보컬로 활동했다. 이동하는 당시 안양 인근 과천에서 활동하던 서근영(현 경희대 실용음악 교수)이란 보컬을 보며 부러워했다. “당시 서근영 교수님은 노래 실력에 얼굴까지 예뻐 학생들 사이에서 엄청 유명했어요. 에너지가 굉장한 보컬리스트였습니다.”
학업 성적이 좋았기 때문에 부모는 이동하가 음악이 아닌 다른 분야로 가길 원했다. 그래서 몇 군데를 알아보다가 웅지세무대에 지원‧합격했다. 등록금까지 내고 입학을 앞둔 2월의 어느 날 친구들과 한잔하던 이동하는 “음악이 아닌 분야는 내 길이 아니다”라고 깨닫고 취한 채 새벽에 집으로 가 부모에게 음악을 해야겠다고 선포했다. 부모는 아들의 갑작스러운 변화에 놀랐지만, 평소 신중하던 자식이 많은 고민 끝에 얻은 결론이라 여겨 그 뜻을 존중해주기로 했다.
이동하 교수는 서울예대를 필두로 동아방송예술대, 경희대, 단국대 등 여러 학교에 지원했지만 계속 고배를 마셨다. 입시를 목표로 치밀하게 준비해온 동급생들과 경쟁이 쉽지 않았던 것이다. 재수, 삼수 등 계속 고배를 마셨고 결국 입대했다. 육군 이기자부대 기관총사수로 복무 후 2010년 네 번째 수능에 도전해 서울예대 실용음악과에 합격했다. 그의 나이 24살이었다. 그가 선택한 입시 곡은 마빈 게이의 ‘I Heard It Through The Grapevine’이었다.
대학 2학년 때인 2011년 데뷔앨범을 발매했다. 이후 2015년 자신의 음악을 해야겠다고 결심하고 싱어송라이터의 길을 가기 시작했다. TV조선 ‘프로포즈 대작전’, MBC ‘나쁜 형사’ 등 여러 드라마 OST 가창자로도 참여했고, 2019년 밴드 ‘하이브로’에서 활동하며 M넷 ‘엠카운트다운’, KBS ‘뮤직뱅크’, MBC ‘쇼! 음악중심’ 등 여러 무대에 섰다. 그러나 자신만의 음악에 전념하기 위해 2021년 팀을 탈퇴했다.
이동하는 고교 땐 LA메틀, 레드 제플린, 딥 퍼플 등에 심취한 록 매니아였다. 그러다가 모타운 소울과 블루스에 빠졌다. 지금은 프랭크 오션 등을 비롯한 얼터너티브 R&B를 즐겨 듣고 자이언티도 좋아한다.
“예전엔 루더 밴더로스를 보며 저렇게 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최근엔 최백호 선생님을 보며 많은 걸 깨닫게 돼요. 최백호 님이야말로 꾸준히 성장해가는 진정한 아티스트라고 봅니다. 최백호 님이 리허설하시는 걸 본 적이 있어요. 정말 완벽했습니다.”
“최백호 선생님과 함께 연주한 사람들에게 직접 들은 얘기입니다. 최백호 님은 녹음할 때 리버브도 전혀 넣지 않고 생목소리만으로 녹음한다고 해요. 보컬을 하는 사람은 알죠. 연습이 정말 많이 된 사람이 아니면 그렇게 할 수 없다는걸. 여전히 왕성한 현역 컨디션이랄 밖에요. 최백호 선생님이 40대에 ‘낭만에 대하여’를 히트시킨 것처럼 저도 내 인생의 걸작이라 할만한 곡을 쓰고 싶습니다. 그 나이 그 감성에서 나올 수 있는 노래 같은.”
이동하 교수는 정화예대 4학기 강의에 이어 2022년 2학기부터 현재까지 서울예대 실용음악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2010년부터 서울예대에서 공부한 그로선 10년이 지나 다시 학교로 와 감회가 남다르다고 했다. “한마디로 학교가 너무 변해서 놀랐습니다. 장비도 엄청나게 좋아졌고 방음시설도 너무 멋지게 업그레이드됐어요.”
서울예대에서 그는 전공 실기 2과목, 그리고 3학년 학생을 위한 ‘어드밴스드 스터디’ 수업하고 있다. ‘어드밴스드 스터디’의 경우 릭 루빈을 예로 들며 실전에 투입됐을 때 즉시 대처할 수 있는 부분을 강의한다.
온화하지만 적절하게 사실을 직시하며 각자의 강점을 부각하는 게 그의 교습법이다.
“기술적 탁월함보다 개성을 중시합니다. 노래를 들었을 때 이 사람이란 걸 알 수 있게 하는 부분을 발견해 그런 쪽으로 업그레이드할 수 있게 해주려 합니다. 계속 가능성을 확인시켜주고 이해시키려고 합니다. 누구나 하나씩은 장점이 있으므로 그걸 끄집어내 발전시켜주려고 하는 것이죠. 잘 따라오지 못하거나 열심히 하지 않던 학생도 결국 변하게 됩니다.”
“프랭크 오션의 ‘Blonde’ 앨범에서 많은 영감을 받고 있습니다. 저는 예전엔 그 누구보다 발성 연습을 치열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개성과 표현에 더 집중하고 있어요. 프랭크 오션은 기술적으로 완벽한 보컬이라곤 생각하지 않지만 자기 음악에 있어서만큼은 최상의 표현을 들려주는 아티스트라고 봅니다. 이외에 브루노 마스, 위켄드, 테일러 스위프트 등도 좋아합니다.”
“국내 여자 솔로 아티스트론 보컬 가창이 아닌 음악 전체의 관점에서 이진아가 TOP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개인적 감성을 완벽하게 사로잡는 취향 저격 아티스트랄까요. 학교 다닐 때 같이 노래도 자주 불렀어요. 이진아는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맑고 순수한데 이런 걸 음악에 그대로 담아내지 않고 묘하게 자기만의 스타일로 연출합니다. 예를 들어 헤비한 사운드로 돌변하는 등 전혀 예상치 못한 방식을 보여주죠. 음악적으로 새로운 걸 시도하는 데에 있어 두려움이 없고 또한 너무 잘합니다. 이진아 같은 소리는 라이브를 잘할 수 있는 소리가 아닌데도 라이브를 너무 잘합니다. 그만큼 연습량도 대단하다는 걸 의미하기도 합니다.”
“국내 남자 솔로 아티스트론 자이언티를 꼽고 싶어요. 일단 가창 스타일도 너무 훌륭하고 대단히 리드미컬하고 편하게 노래합니다. 제 경우엔 많은 에너지를 발산하며 노래하는 스타일인 반면 자이언티는 저와는 전혀 다른 스타일이죠. 내가 갖지 못한 면을 갖고 있어서 더욱 그에 끌리는지도 모르겠어요. 자이언티는 보컬의 개성, 표현력, 퀄리티 등 모든 면에서 대단하다랄 밖에. 자이언티 음악을 들으면 그가 얼마나 섬세하게 헌신적으로 하는지 느껴집니다.”
“아이돌팀은 너무 많아서 특정 몇몇을 꼽기가 너무 어렵습니다만 그럼에도 데이식스가 먼저 떠오릅니다. 곡도 잘 쓰고 거기에 잘생기기까지 했어요. (웃음) 남자로서 샘이 날 정도죠. 그렇게 잘 생기면 노래는 좀 덜 해도 되는데… (웃음)”
“(여자)아이들, 스테이시, 키스 오브 라이프, 베이비몬스터, 르세라핌 등도 좋아합니다. 가창 부분에서 르세라핌만 표적이 되는 게 좀 안타까워요. 가창이 아쉬운 다른 걸그룹도 많기 때문이죠. 비슷한 시기에 나온 여타 걸그룹보다 르세라핌이 음악적으로 더 좋은 것 같습니다. 메시지가 부담 없이 자연스럽게 스며들거든요. 음악이 좋은 건 말할 것도 없지만. 작품성도 좋습니다. (여자)아이들은 일단 프로듀싱 능력이 탁월합니다. 음악에 대한 이해도도 매우 높고 트렌디하죠. 단지 트렌디하다는 게 아니라 앞서나가는 트렌디함이 있다는 게 돋보입니다.”
“나얼, 이분 목소리 안에 정말 많은 위대한 보컬리스트들이 들어있습니다. 제 개인적으론 나얼을 국내 최고의 보컬로 꼽고 싶어요.”
“해외의 경우 마이클 잭슨, 엘비스 프레슬리, 브라이언 맥나이트 등 몇몇을 꼽고 싶습니다. 그중 마이클 잭슨은 독보적인 원탑 보컬이죠. 최근 몇몇 행사에서 엘비스 프레슬리 노래를 부르게 됐는데 이걸 준비하며 엘비스 프레슬리란 가수가 너무 완벽한 보컬리스트란 걸 새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섬세한 비브라토. 독보적 리듬감 등등.”
이동하 교수는 아무리 바빠도 하루 평균 2시간 이상 연습을 하고 있다. 학생들에게 양보다 질을 중시하는 연습을 권하며 특히 최대한 많은 보컬리스트의 곡을 불러보라고 권한다.
“마이클 잭슨, 루더 밴드로스, 비비킹, 머라이어 캐리, 휘트니 휴스턴 등 성별 가리지 않고 다양하게 불러보며 자기화시켜야 합니다. 그래미어워드 ‘앨범 오브 더 이어’ 수상작들을 꼭 들으세요. 강의 때 일주일에 한 번씩 관련 앨범을 피드백하기도 합니다. 귀를 좋게 하기 위해선 음악 많이 듣는 게 제일 중요합니다. 대충 부르지 말고 그 곡에 흠뻑 빠져서 불러야 합니다.”
이동하 교수는 경희대에서 보컬 클래스 교육 관련 주제로 박사 논문을 준비 중이다. 내년 2월까지 여기에 집중할 예정이다. 이어 3~5월경 개인 앨범과 CCM 등 두 장의 앨범을 준비 중이다. R&B 스타일의 발라드를 지향할 것 같다고 했다.
아직 미혼인 이동하 교수의 취미는 운동(축구)과 독서다. 특히 축구를 잘하며 7부 리그에서도 뛴 바 있다. 유산소 운동을 좋아하며 하루 평균 10~15km를 뛴다고.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해 그의 작품을 빼놓지 않고 읽고 있다. 이외에 최근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바스타드’를 인상적으로 봤다. 인생영화는 ‘이터널 선샤인’이다.
자신의 음악에 디테일을 더하고자 스트링 편곡을 공부 중이기도 하다. 음악에 스트링 편곡을 추가하면 음악이 좀 더 특별해질 것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유명 작곡가 헨(Hen)에게 작곡 레슨을 받기도 했다.
“가르치는 일이 재미있고 행복하며 적성에도 잘 맞는 것 같아요. 음악 할 때와 또 다른 행복을 줍니다. 제가 이렇게도 학생들을 사랑할 수 있는지 스스로 놀랄 정도죠. 친절하고 착한 인성도 좋지만, 재능도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자신을 속여서까지 일부러 착한 척하진 말라고 하는 편입니다. 학생들에겐 자상한 삼촌 같은 선생님. 이해 잘해주고 상담 잘해주고, 단순히 기술적인 향상보다 그 이상을 보여주는 존재가 되고 싶습니다.”
“안을 살피는 가사, 즉 내면을 성찰하는 싱어송라이터, 느린 템포에서 내 감성을 녹여내는 발라드 스타일의 곡을 많이 쓰고 싶습니다. 좋은 사람이 되는 게 모토입니다. 선한 영향력 끼치며 살고 싶어요. 그게 음악이면 더욱 좋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