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백성이 함께 만든 '왕의 수라상'…궁중 음식문화를 엿보다(종합)

연합뉴스 2024-11-19 16:00:20

'궁중음식' 특별전 20일 개막…수라간 현판 등 200여 점 한자리에

132년 전 고종 잔칫상 재현 눈길…"K-푸드의 원천이자 최고 경지"

'궁중음식, 공경과 나눔의 밥상' 특별전 개최한 국립고궁박물관

(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1892년 9월 24일 경복궁 근정전에서 고종(재위 1863∼1907)을 위한 성대한 잔치가 열렸다.

즉위 30주년과 41세 탄생일을 축하하는 자리였다.

세자와 대신들은 왕에게 술을 올리면서 7개의 찬으로 구성된 안주상도 올렸다. 첫 잔에는 전복 조림과 돼지고기 전 등이, 두 번째 잔에는 낙지 전과 완자탕 등이 곁들여졌다.

9잔의 술과 함께 올린 음식을 합치면 총 63가지. 성대하고 화려한 잔치 음식이었다.

국립고궁박물관 '궁중음식, 공경과 나눔의 밥상' 특별전 개최

여러 종류의 떡과 전, 찜, 구이, 과일 등 다양한 음식이 접시 높이 쌓여 있었고 왕은 잔치가 끝난 뒤에 수고한 이들에게 음식을 나눠주며 기쁨을 나눴다.

조선 왕실의 음식 문화를 조명한 전시가 열린다. 궁중음식에 관한 기록과 그림, 궁궐 부엌에서 사용한 각종 조리 도구 등 200여 점을 한자리에 모았다.

국립고궁박물관은 궁중음식문화재단과 함께 이달 20일부터 박물관 2층 기획전시실에서 '궁중음식, 공경과 나눔의 밥상' 특별전을 선보인다고 19일 밝혔다.

정용재 국립고궁박물관장은 이날 간담회에서 "궁중음식은 음식을 뛰어넘어 공경과 나눔의 마음이 담겨 있는 유산"이라며 "K-푸드의 원천이자 최고 경지"라고 소개했다.

궁중음식 전시 시작한 국립고궁박물관

전시는 전국 각지에서 제철 식재료를 왕실에 진상하는 과정을 설명하며 시작된다.

조선 후기에는 사신을 접대하는 부담을 지고 있던 평안도를 제외한 경기, 충청, 전라, 제주, 경상, 강원 등에서 진상품을 올렸는데 제주에서는 감귤을 준비하기도 했다.

강원 고성군에서는 대구나 연어알 젓, 은어 등을 올렸다.

전시에서는 궁궐 부엌의 모습과 이곳을 지킨 사람들의 이야기도 만날 수 있다.

궁궐 부엌의 간판인 '수라간' 현판, 궁중 요리사인 '숙수'가 분주하게 움직이며 요리하는 모습을 포착한 그림, 나무 도마와 식칼, 국자 등이 소개된다.

'궁중음식 체험형 전시 참여 중'

이와 함께 18∼19세기에 상궁이 기록한 것으로 추정되는 음식 조리법, 왕의 건강을 책임지던 어의 이시필(1657∼1724)이 음식에 관해 쓴 책 등도 보여준다.

안보라 학예연구사는 "조선시대 왕은 하루 평균 5번의 식사를 했다. 임금의 기호와 건강 상태에 따라 구성이 달랐고 식사 횟수, 반찬 가짓수도 유동적이었다"고 설명했다.

흔히 알려진 12첩 반상은 고종, 순종(재위 1907∼1910) 대의 마지막 상궁에 의해 전해진 수라상 모습으로, 이전에는 대개 7가지 정도의 반찬이 올랐던 것으로 추정된다.

인사말하는 정용재 국립고궁박물관장

가장 눈길을 끄는 부분은 1892년에 열린 궁중 잔치의 음식이다.

왕실에서는 혼례, 왕과 왕비의 생일, 세자 책봉 등 경사스러운 날에 큰 잔치를 열었는데 다양한 종류의 음식을 접시 높이 쌓은 고임상을 올렸다.

전시장에는 궁중음식문화재단이 재현한 안주상을 함께 볼 수 있다.

붉은빛의 상 위에 7가지 찬을 각각 올려 총 9번 내놓은 사례는 궁중에서 열린 잔치 중에서도 매우 드문 경우로, 화려했던 당시 모습을 유추할 수 있다.

인사말하는 한복려 이사장

한복려 이사장은 "각 음식의 재료와 분량 정도만 나와 있는 데다 현재는 사용하지 않는 용어도 많아 쉽지 않았다"며 "전승자들과 함께 연구하며 완성했다"고 말했다.

국가무형유산 조선왕조궁중음식 보유자인 한 이사장은 이번 전시에 대해 "50년 넘게 궁중음식을 만들며 늘 바랐던 일"이라며 "궁중문화의 정수를 보여줄 수 있어 뜻깊다"고 했다.

궁중음식을 다채롭게 체험할 수 있는 부분은 눈여겨볼 만하다.

궁궐 부엌을 연출한 공간에서는 솥에 물을 끓이고 국자를 휘젓는 모습을 영상으로 보여주고 소리를 더했다. 역대 왕들과 관람객의 식성을 비교하는 체험 공간도 마련됐다.

재개관한 국립고궁박물관 상설전시실

안 연구사는 "궁중 음식에 담긴 통치 철학과 나눔의 정신을 기억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박물관은 이날 2층 상설전시실도 새롭게 꾸며 함께 선보였다.

올해 4월부터 약 8개월간 단장한 전시실은 국왕의 공간을 주제로 한 '조선국왕'과 왕비의 공간을 다루는 '왕실생활'로 나눠 450여 점의 왕실 유물을 소개한다.

조선국왕실에서는 조선 왕조의 역사와 정통성을 상징하는 유물이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인 '조선왕실 어보와 어책', 경복궁에서 출토된 청기와 등을 만날 수 있다.

국립고궁박물관에 전시된 청동용

위계가 높은 건물에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청기와는 이번에 처음 공개하는 것이다.

왕비의 공간, 내전(內殿)을 다루는 왕실생활 부분에서는 왕비 책봉부터 출산, 이후 대비로서의 삶 등 왕실 가족의 일상을 다양한 유물과 실감형 영상으로 보여준다.

박물관 측은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궁중음식의 새로운 면모가 널리 알려지고 왕실 유산에 한층 더 흥미롭게 다가가길 바란다"고 전했다.

특별전은 내년 2월 2일까지 열린다.

국립고궁박물관에 전시된 어좌

ye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