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는 압축 성장 과정에서 ‘재벌’이라는 독특한 집단을 낳았다. 거친 풍파에도 좀처럼 흔들리지 않는 재벌이지만 ‘부의 대물림’ 시기만큼은 이들도 예외다. 그들이 갈라서고 쪼개질 때 나라 경제가 휘청이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재벌가 금융 계열사들의 역할과 영향력은 갈수록 커져 왔다. 기업의 흥망성쇠에 결정타가 된 적도 여러 번이다. 자본과 금융시장 역할이 갈수록 긴요해지는 요즘, 재벌가의 숨은 조력자 혹은 아픈 손가락이기도 했던 금융 계열사의 현 주소를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삼성그룹의 삼성생명 활용법은 다양했다.
우선 삼성생명이 끌어모은 고객들의 보험금은 반도체 사업의 훌륭한 마중물이었다. 천문학적 자금이 필요한 자동차 사업에 진출할 때에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상쇄시켜 줄 만큼 든든한 뒷배였다. 기아자동차에 대한 적대적 인수합병(M&A)을 꾀할 때는 해결사 역할을 했고, 5조원 손실이라는 타격을 입고 자동차 사업에서 철수할 때는 총수에게 든든한 동아줄이 되어주기도 했다.
이 외에 삼성생명은 그룹의 3세대 경영 세습에도 핵심 역할을 담당한다. 꼼꼼한 성격의 소유자였던 고 이건희 회장(이하 직함 생략)은 아들 이재용으로의 경영권 세습을 1990년대 초반부터 준비했다. 시작은 증여였다.
■ 61억원 증여에서 시작된 삼성그룹의 3세 세습
이건희는 이재용에게 1994~1996년 61억4000만원을 증여했다. 이재용은 이 돈을 활용해 그룹의 비상장회사였던 에스원, 삼성엔지니어링, 제일기획 등의 주식을 매입, 단기간에 800억원으로 불렸다. 이 돈은 다시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인수에 쓰여 31.37% 지분확보로 이어진다.(삼성에버랜드는 훗날 제일모직, 삼성물산과 합병되며 이재용 세습을 위한 종자기업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수행한다.) 아울러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 저가(7150원) 발행 등을 통해 막대한 부가 3세대로 넘어갔다.
1997년까지 이건희는 삼성생명을 통해 삼성그룹 전체를 지배하고 있었다. 삼성생명 지분을 아들에 넘기면 세습은 간단히 완료됐지만 문제는 아들의 자금이 턱없이 부족했다는 것. 이에 이건희는 1998년 삼성생명 345만 주를 아들이 아닌, 삼성에버랜드로 넘긴다. 삼성에버랜드는 삼성생명의 최대주주가 됐고, 이재용은 삼성에버랜드를 지배하며 그룹 전체를 장악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사실은 고무줄처럼 늘어난 삼성생명의 지분 가치다. 삼성에버랜드는 이건희로부터 주당 9000원에 삼성생명 지분을 넘겨받았다. 반면, 이듬해 삼성정밀화학, 삼성전기, 삼성SDS 등은 주당 2만원에 삼성생명 주식을 샀다. 같은해 삼성자동차 법정관리 신청 당시 매겨진 삼성생명 지분 가치는 무려 주당 70만원이었다. 불과 1~2년 사이 삼성생명의 주당 가치는 9000원에서 70만원까지 극단적 평가를 오간 것. 이건희의 삼성생명 지분이 얼마나 싸게 아들에게 간접 증여됐는지 유추할 수 있는 대목이다.
■ 삼성생명, 총수 지배력 위해 은행까지 움직이다
돌이켜 보면 1999년은 삼성생명이 속칭 ‘열일한’ 해였다. 3세대 세습이 진행되는 와중에 삼성자동차가 법정관리를 신청한 해였다. 게다가 1997년 외환위기의 충격도 현재진행형인 상황이었다.
삼성생명은 우선 자본잠식이 진행 중인 삼성자동차에 담보도 없이 신용대출로만 무려 4200억원을 지원한다. 삼성그룹 계열사가 아닌 다른 기업이었다면 언감생심일 지원이다. 삼성생명이 재벌 총수의 사금고 역할에 충실한 회사를 자임했기에 가능한 대출이었던 셈이다. 거래소 상장 전 진행된 일이라 하더라도 삼성생명을 믿고 보험금을 납입한 계약자들을 기만한 행위라는 해석도 그래서 나왔다. 상식 밖 부실 대출로 삼성생명의 건전성이 악화되면 피해는 고스란히 보험계약자에게 돌아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삼성생명은 그룹의 주거래은행인 한빛은행(현 우리은행)에 투신사 주식 맞교환을 제안한다. 삼성생명이 보유 중이던 한일투신 및 한빛투신 주식 60만주와 한빛은행이 보유 중이던 삼성투신 주식 60만주를 교환하자고 제안한 것. 그런데 삼성투신 주식 60만주는 삼성생명이 아닌 이재용, 이부진, 이서현 등에게 시세(약 2만원)보다 낮은 액면가에 넘어갔다. 한빛은행 외에 한미은행과 대구은행도 헐값으로 삼성투신 주식 약 90만주를 이재용 등에게 넘겼다.
공교롭게도 이들 은행은 모두 삼성그룹과 특수관계다. 한빛은행은 이병철 회장이 한 때 소유했던 은행이었고, 한미 합작은행인 한미은행은 삼성그룹이 BOA, 대우그룹에 이어 3대 주주였다. 당시 지방은행인 대구은행의 최대주주 역시 삼성그룹이었다. 시민단체인 경제개혁연대는 “삼성생명의 배임 행위로 이재용 등 3세대 총수 일가가 최소 300억원 이상의 차익을 실현했다”며 삼성생명 전·현직 임원인 이수빈·배정충·황영기와 거래에 가담한 은행들을 검찰에 고발했다. 특히 황영기는 당시 삼성생명과 한미은행의 이사를 겸직 중이었다.
해당 거래는 금융감독원도 조사를 벌였는데 “실적이 급속히 호전된 투신운용사를 이건희 일가가 액면가 수준으로 인수해 막대한 자본차익을 획득한 것”으로 파악했다. 은행들에는 그 대가로 삼성생명 또는 삼성그룹 계열사의 반대급부가 제공됐을 가능성을 의심했다. 당시 한빛은행, 한미은행, 대구은행은 외환위기의 여파로 자본 확충이 시급한 상태였는데 모두 삼성그룹으로부터 대규모 자본을 공급받고 있었다. 비록 검찰은 증거불충분, 공소시효 만료 등을 들어 불기소 처분했지만 삼성생명이 총수 일가의 지배력 확장을 위해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 삼성화재의 비자금 조성과 증거인멸...계속되는 사회적 물의
1990년대 진행된 3세대 세습 작업은 2007년 삼성그룹 사내 변호사였던 김용철의 비자금 폭로를 계기로 다시 한 번 주목받는다. 조준웅 삼성 특검은 4개월의 수사를 거쳐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편법 증여, 삼성SDS BW 저가 발행 등을 모두 유죄로 보고 이건희 등 관련자 5인을 기소했다. 특검은 “그룹 비서실 재무팀 소속의 이사 김인주와 재무팀장 유석렬 등이 주도해 차장 이학수, 비서실장 현명관에게 보고하고, 그 내용이 회장 이건희에게 전달됐다”며 회장 비서실의 조직적 개입이 있었음을 분명히 했다.
삼성 특검은 당시 삼성화재의 비자금 조성 사실도 밝혀냈다. 1999년부터 2002년 사이 삼성화재 재무책임자가 직원들을 시켜 미지급보험금을 지점에 내려준 것처럼 회계장부를 조작하고, 실제로는 차명계좌를 이용해 9억8000만원의 비자금을 조성한 사실을 적발한 것. 삼성화재는 수사 과정에서 압수 대상물인 회계자료를 전산에서 삭제하다 특검으로부터 기소당하기도 했다. 재벌 총수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사안의 경우 이성적이고 냉정해야 할 금융 계열사조차 물불을 가리지 않고 몰상식적으로 행동할 수 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례였다.
삼성그룹은 3세 경영권 세습 과정에서 끊임없이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 그쯤에서 마무리됐으면 다행이련만 2010년대 들어 제2막이 펼쳐진다. 비금융회사인 삼성물산(삼성에버랜드)과 금융회사인 삼성생명을 동시 지배하기 위해 무리수를 두다 자충수에 빠진 것.
이건희는 생전 “정부는 대기업이 땅 사고 은행을 갖게 되면 나라가 망하는 줄 안다”며 금산분리 규제를 강하게 성토했지만 삼성의 바람과 달리 우리나라의 금산분리 규제는 계속 강화되는 흐름을 보여왔다. 이 같은 흐름에는 사실 삼성이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문제의 핵심은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의 지분이다. 보통의 대기업들은 규제를 해소하는 방향으로 접근했지만 삼성은 달랐다. 오히려 법을 바꾸는 쪽으로 발상의 전환을 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