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미당시'·'서정주라는 문학적 사건' 출간
(서울=연합뉴스) 황재하 기자 = 미당 서정주(1915∼2000)는 굴곡이 많은 한국 근현대사의 여러 예술인 중에서도 유난히 명과 암이 짙은 인물이다.
그는 일제강점기 가미카제 특공대에 투입된 조선인 청년을 미화한 '마쓰이 오장 송가'를 짓고 '다쓰시로 시즈오'로 창씨개명했다.
해방 후 군부 독재 시절인 1987년에는 전두환 당시 대통령의 생일을 기념하는 축시를 짓는 등 정권에 친화적인 행보를 보였다.
그는 이같은 행보로 대통령 직속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가 2009년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자에 포함됐다.
시인 고은은 서정주가 세상을 떠난 뒤 '창작과비평'에 발표한 '미당 담론'에서 서정주를 강하게 비판했다. 고은은 서정주와 조지훈의 추천으로 문단에 등단했음에도 서정주를 철저히 부정한 것이다.
그러나 그를 둘러싼 비판과 별개로 서정주가 열다섯 권의 시집에 남긴 문학적인 가치를 부정하기는 어렵다.
서정주는 1천여 편의 시에서 서정성과 관능미를 두루 갖춘 탁월한 표현력으로 수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줬고, 공로를 인정받아 사후 금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이에 후대의 학자와 시인들은 서정주의 정치적 잘못과 문학적 업적을 구분해서 평가하자고 제안하며 그의 시를 거듭 연구하고 음미하고 있다.
최근 발간된 '나만의 미당시'(은행나무)와 '서정주라는 문학적 사건'(도서출판 b)은 이런 노력의 일환이다.
'나만의 미당시'는 한국 시인들이 각자 한 편씩 미당의 시를 소개하면서 해당 시와 관련한 감상을 수록했다. 80대인 이제하(87)·마종기(85)·정현종(85)부터 20대 여세실(27)·권승섭(22)까지 서른 명의 시인이 글을 실었다.
정현종은 '푸르른 날'을 소개했다. "내가 죽고서 네가 산다면? / 네가 죽고서 내가 산다면! //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는 구절이 유명한 시다.
'푸르른 날'을 두고 정현종은 "그리움의 밀도를 그 이상 더 잘 쓸 수 없게 노래해서 사람을 까무러치게 한다"고 극찬했다.
이병률은 '나그네의 꽃다발'을 소개하면서 "미당의 시를 읽을 때는 머릿속에 불이 들어온다. 불이 켜진다. 혈색이 돈다"고 고백했다.
이남호 평론가(고려대 국어교육과 교수)는 서문 격인 '들어가는 글'에서 "우리 주변에는 정치적 이유로 내팽개침을 당하고 있는 미당 시를 끝까지 지키고자 하는 열정과 헌신이 여전히 있다"며 "미당을 둘러싼 정치적 현실은 어둡기만 하지만, 그래도 나는 미당 시가 있어서 행복하다"고 썼다.
'서정주라는 문학적 사건'은 서정주의 시를 연구해온 최현식 인하대 국어교육과 교수가 그간 저술한 논문과 강연록 등 13편의 글을 다듬어 묶은 책이다.
최 교수의 1996년 석사 학위 논문을 요약한 '서정주 초기 시의 미적 특성에 대하여'부터 2023년 '시와시학' 봄·여름호에 실었던 글을 고쳐 쓴 '떠돌이·시의 이슬·천심'까지 27년에 걸친 연구의 결과가 담겼다.
다만 글의 순서는 최 교수가 집필하고 발표한 순서가 아닌 서정주의 연대기를 중심으로 나열됐다.
가장 최근 글이자 1장에 실린 '떠돌이·시의 이슬·천심'은 서정주 초기 시에 나타나는 다양한 공간의 성격과 의미를 살펴본 비평문이다.
최 교수는 시 '자화상'에 등장하는 시어 "시의 이슬"을 두고 "시인된 자의 언어와 삶이 서로 길항하고 갈등하는 장"이라고 해석하며 "그것은 시인의 내면과 서정, 그가 처한 시공간, 시적 지향점에 따라 매우 다양하고 복합적인 모습으로 자신을 펼쳐 보인다"고 해석했다.
최 교수는 책머리에서 "나는 미당 시를 공부하며 한국 근현대 시의 근대성과 반근대성의 세목을 속속들이 파악하고 분석하는 고통스러운 행운(?)을 누려왔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책의 제목은 미당의 한국 시에 대한 숱한 긍정적 기여와 몇몇 부정적 국면을 함께 기리고 기억하기 위해, 또 미당 연구자이자 비평가인 나에 대한 선한 영향과 준엄한 계고를 잊지 않기 위해 붙여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 나만의 미당시 = 마종기·정현종 외 지음. 244쪽.
▲ 서정주라는 문학적 사건 = 최현식 지음. 387쪽.
jae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