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변 산책을 나섰다. 며칠 기온이 내려가더니 시냇물 가장자리에 서릿발이 거세다. 향기 진동하던 노란 산국도 마른 풀로 냇둑에 누웠다. 풍경화 한 점이 나타난다. 새하얀 명주솜들이 푸른 하늘을 간질이는 그림. 마른 풀숲 위로 삐죽이 솟아난 억새꽃 무리다. 바람 가는대로 나부끼는 꽃. 그 날카롭던 억새풀에서 어떻게 저런 꽃이 피어났을까.
한여름의 억새는 검객 같았다. 위로만 뻗어 오르던 청록이파리. 그것은 예리한 검이었다. 그에게 있어 성장한다는 것은 제 몸에 장착한 검의 수를 늘려간다는 것, 존재한다는 것은 그 검을 더 날카롭게 벼린다는 것. 천변의 억새군락지는 성처럼 견고하여 여리고 둥근 풀잎들은 넘겨다 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 청동검을 빗겨 들고 선채로 밤을 맞는 싸울아비, 태풍에 휘돌릴지언정 쓰러지지 않던 결기가 피운 꽃. 저 보드라운 솜털을 피워내려고 그들은 그렇게 서슬 퍼런 나날을 보내었던가. 턱없는 가벼움에 허무감마저 인다. 얼마나 비워야 저렇게 될까. 물기 털어낸 그 꽃이 애잔하기까지 하다.
천변의 다리 주변엔 남자들이 모여 있다. 산책길 좌우 벤치와 주변 스탠드에서 장기나 바둑을 두는 사람들이다. 장기판을 사이에 둔 맞수의 팽팽한 신경전, 뚫어져라 남의 바둑판을 들여다보는 훈수꾼과 구경꾼, 그 곁에 세워놓은 자전거까지. 등장인물만 보면 장리석 화백의 〈소한(小閑)〉을 재현한 것 같다.
"마(馬)로 밀어, 마!" "거 입 좀 다무시랑께!" 참지 못한 훈수에 성을 내는 선수, 멋쩍게 입맛을 다시며 뒤로 물러서는 훈수꾼. 어쩌면 그것은 익살스런 연극의 한 장면 같기도 하다. 판 위의 지휘자는 숙고를 거듭하다 재빨리 손을 내어 장기 알을 옮기곤 얼른 주머니에 손을 찌른다. 때론 그 손으로 흘러내린 콧물을 쓱 닦아내기도 한다. 불기하나 없는 천변에서 방한복에 털모자를 쓴 채 장기마당을 지키는 사람들, 이 남자들의 정체는 뭘까.
50세 후반에서 70 중반 사이의 이들은 평일이든 주말이든 이곳에 모여든다. 겨울엔 해를 찾아, 여름엔 빛을 피해 종일을 보내고 저녁이 되어야 판을 거두는 사람들. 아무리 장기바둑이 좋기로 오늘 같은 날씨에 이 한데를 찾았을까. 초겨울 벌판에 펼쳐진 색다른 풍속화에는 숨겨진 무언가가 있는 것 같다.
"끝났네!" 패배를 인정하는 한마디다. 32 전사들이 벌이는 판 위의 전쟁. 신분도 역할도 각기 다른 이들의 소망은 살아남는 것, 그래서 이기는 것이다. 포석을 깔고 공격을 하고 나름대로 방어막까지 철저히 쳤건만 어디부터 잘못된 걸까, 의문의 복병에 급소를 찔렸다. 되돌릴 수 없는 길, 이미 기운 판세. 파란만장, 변화무쌍. 죽을 줄 알면서도 나아가고, 막힌 걸 깨달아도 부딪혀야하는 전장, 한 판 한 판이 삶이고 인생이다.
승자 역시 별 말이 없다. 훈수꾼을 꾸짖던 까칠함은 간데없이 판 끝난 장기 알을 쓸어 모은다. 보온병에 믹스 커피 두어 개를 털어 넣는 남자, 담배를 빼 물고 라이터를 그어대는 또 한 남자. 보온병에서 꼬물거리는 수증기와 길게 내뿜는 담배연기가 천변을 데우는 온기의 전부다. 그들은 천천히 그것을 음미한다. 전장을 함께 누빈 맞수의 우정 어린 뒤풀이다.
한때는 판 위의 장기알처럼 세상을 누볐던 사람들이다. 꿈을 좇아, 가족의 생계를 위해, 불타는 욕망을 향하여…. 얼마나 이루었을까, 그들은. 마(馬)처럼 달리고, 포(包)처럼 자신을 던지며 차(車)와 상(象)이 되어 험로를 뚫었던 날들. 누군가의 병(兵)으로 졸(卒)로 목숨을 내걸어 전선을 지켜낸 적도 있었으리라. 그 시절이 그리운 걸까. 그래서 그들은 영하의 기온을 개의치 않고 이 허허벌판에서 지난 시간을 재연하고 있는 것일까.
무엇이든 해야 했고, 어떤 거든 이뤄야 한다는 절박감으로 처절하게 불살랐을 그들의 젊은 날. 소중한 무엇인가를 지키기 위해서는 어떤 험로도 마다하지 않았을 패기 넘쳤던 남자들이 지금 여기에 있다. 앞선 한 점에 웃고 삐끗한 한 수에 낙심도 하며 잃어버린 추억을 되살리지만, 장기판 위 시간은 이미 그들 것이 아니다. 억새꽃 같은 머리칼을 방한모 속에 감춘 채, 인스턴트커피로 냉기를 쫓는 그들. 중무장한 남자들의 잉여시간이 억새꽃처럼 겨울 허공에 흩날린다. 이 가벼움, 삶은 이토록 헛헛한 것인가.
호모 헌드레드(Homo hundred)*1니, 핫 에이지(HOT Age)*2니, 오팔(OPAL)*3 세대니…. 언어는 갈수록 현란한데 현실은 지금 여기에 묶여있다. 그 희망적인 조어들이 여기 이 사람들과 어떤 관련이 있을까. 단지 old age라는 사실만 빼면. 상념은 자꾸만 암울하게 흐르고, 멈춘 걸음에 식어가는 땀은 한기가 되어 등을 조인다.
돌아오는 길, 바람결에 날리는 하얀 억새꽃은 아까와 다름없이 하늘거린다. 그런데 그들이 말을 거는 것 같다. 깃발처럼 펄럭이는 그들의 언어, 머리에 가슴에, 손끝에 부딪히는 웅얼거림. 바람결에 흩어지는 소리 없는 그 말들….그 서늘한 언어를 해석하기에 아직 나는 역부족이다.
*1호모 헌드레드란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평균수명이 100세가 넘는 희망적인 신인류. 사람을 뜻하는 호모(homo)와 숫자 100(hundred)이 합쳐진 조어다.
*2핫 에이지- 하버드대학 윌리엄 새들러 박사가 '핫 에이지, 마흔 이후 30년'이라는 저서에서 생애주기를 네 단계로 나눈 것. 노년을 인생의 2차 성장을 통해 자아실현을 추구해가는 의미 있는 시기로 보고 있다.
*3오팔(OPAL)-(Old People with Active Lives)의 줄임말. 노년을 역동적이며 희망적인 삶으로 일컫는 조어
◆ 이용옥 프로필
△계간수필 등단(2013), 한국수필 평론 등단(2022) △수필집 '석모도 바람길' △수필미학 문학상, 율목문학상, 공무원문예대전 희곡, 동화 부문 수상 △계수회, 수필문우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