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의 수필가 11인] 박원명화 '풍뎅이'

데일리한국 2024-11-17 08:32:17
풍뎅이 놀이. 사진=작가 제공 풍뎅이 놀이. 사진=작가 제공

나는 단 한 번도 그 싸움판에서 이긴 적이 없다. 하지만 승부와 상관없이 나는 매번 그곳에 뛰어들곤 했다. 싸움의 절정은 흥분되고 긴장되는 가장 멋진 놀이였다. 이상(李箱)은 시골 농촌 아이들이 권태의 극한 상황에서 숨이 막혀 죽을 지경인 듯 묘사했지만 내 어린 시절은 풍뎅이와의 싸움판으로 날마다 즐거운 꿈으로 가득했다.

승자도 못되면서 경마장의 도박판처럼 나는 풍뎅이 놀이에 빠져 있었다. 나의 장난감으로는 딱정벌레목 곤충인 풍뎅이의 다리 한 마디씩을 떼어낸 후 목을 두서너 바퀴 돌린 다음, 동그란 원형 경기장에 눕히는 일이었다. 친구들 손에 끌려 나온 풍뎅이들이 한 무리가 되어 일제히 날개를 파닥이며 요동치기 시작했다.

날개가 세차게 돌아갈수록 아이들의 목소리는 한여름의 더위만큼이나 뜨겁게 불타올랐다. 다리가 잘리고 고개가 비틀어진 육신의 고통은 아랑곳없이 누가 더 오래 견디느냐에 따라 그날의 승부가 결정되었고 그것은 철부지 악동들이 즐기는 하루의 희로애락이었다. 우리는 다음 날 또 다음 날도 마당에 원형 경기장을 그려놓고 새로 잡아 온 풍뎅이를 땅 위에 눕혀 놓고 일제히 소리높여 합창을 부르곤 했다.

"앞마당 쓸어라, 뒷마당 쓸어라" 한낮의 햇살이 머리 위로 뜨겁게 쏟아져 내려도 상관없이 아이들은 오직 승패에만 몰두했다. 다릿마디가 잘리고 목이 한 바퀴 돌아가 버린 아픔에서도 풍뎅이는 훨훨 날아갈 희망을 버리지 못한 것인지 짙은 청록색 날개를 활짝 펴고 제자리를 빙빙 돌며 버둥댔다. '붕 붕' 날갯소리를 낼 때마다 마당의 작은 흙먼지들이 얼굴 위로 풀풀 날렸지만, 아이들은 풍뎅이가 맴도는 궤도를 따라 장단을 맞추듯 신명 나게 손뼉을 쳤다.

풍뎅이의 저항은 고통으로 몸부림쳤고, 아이들의 목소리는 안타까운 흥분으로 들떠 승패를 재촉하느라 손바닥이 아픈 줄도 모르고 땅바닥을 두들겼다. 아이들의 재미와는 상관없이 풍뎅이의 날갯짓은 결국 허망한 죽음의 끝을 향해 퍼덕이다가 끝내 지쳐 죽어갔다.

로마 제국의 콜로세움이 그랬다. 원형 경기장에 나온 검투사들은 아무리 잘 싸워도 결국은 그곳에서 모두 죽게 되어 있었다. 로마 시민들을 흥분시키는 노리개가 되어 구경꾼들의 환성 속에 노예와 죄수들은 싸움질하다가 모두 처절하게 죽어갔다. 풍뎅이들의 운명도 어쩌면 그들과 같았는지도 모른다. 잘 싸워 이긴 놈도 결국엔 그곳에서 죽음을 맞았다.

풍뎅이가 하나둘 움직임이 멈추고 나면 우리는 아무 일 없다는 듯 제각기 집으로 돌아갔고 마을은 이내 고요한 어둠에 휩싸였다. 아이들 세계에서도 승자는 군림했고 패자는 승복했다. 비록 미물을 놓고 벌인 경쟁일지라도 패한다는 건 속상하고 억울한 일이었다. 그런 날이면 영문도 모르는 엄마에게 공연한 심통을 부리거나 꼬리를 흔들며 반가워하는 메리(강아지)에게 발길질 해대는 것으로, 나는 패배의 분을 삭이곤 했다.

주말이거나 방학이면 애써 깨우지 않아도 나는 일찍 일어나 뒷산 활엽수가 우거진 숲으로 풍뎅이 사냥을 나갔다. 동트는 아침이면 풍뎅이란 놈들이 참나무 허리에 새까맣게 매달려 있었고 그중 힘센 풍뎅이를 나의 전사로 골라잡느라 나무를 타고 올라가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다리가 굵고 금빛 광택이 짙은 풍뎅이를 잡았을 때의 희열은 이길 수도 있다는 자신감의 증표였다.

가끔 풍뎅이가 가엽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그때는 풍뎅이가 워낙 흔했던 시절이라 생명이 귀한 줄을 몰랐다. 나의 놀이 사슬이 된 풍뎅이의 운명은 생명이기 이전에 놀잇거리로 마냥 즐거운 존재였다. 놀이에만 치중했던 철없음의 잔학행위일지라도 그것이 과연 면책 사유가 될 수 있을까.

철든 어른들은 어린 시절의 나처럼 유치한 장난은 하지 않는다. 오늘날 어른들의 놀이도 그 시절 아이들이 장난삼아 노는 것과는 별반 다르지 않다. 승마, 투우, 투견, 닭싸움 등에 동원되는 동물들 역시 장난감과 무엇이 다르랴. 애들은 심심풀이로 여치와 개구리와 잠자리를 죽였다지만 어른들은 사람까지 죽이는 전쟁놀이를 즐기고 있다. 

사상, 이념, 애국심 등의 이유라 해도 사람이 사람을 헤치는 것은 참으로 끔찍한 일이다. 그것은 대체로 승자에 의해 아름답게 포장되기 마련이지만 풍뎅이를 죽인 것이 놀이였듯 어른들도 전쟁을 핑계 삼아 유희본능을 충족하기 위한 즐거움이 아니었을까.

30만 명 난징 대학살 때 백 명을 걸고 목 자르기 경쟁을 벌인 두 일본군 장교의 학살은 너무도 유명한 학살 게임이다. 살고 싶어 몸부림치는 약자들에 대한 잔학행위를 애국 충성 정의감이라는 용어로 포장한 놀이라고 하기엔 섬뜩하다. 인류 역사에서 그런 잔학행위의 핏자국을 남기지 않은 민족이 과연 얼마나 될까?

사자나 호랑이가 약자를 잔인하게 물어뜯고 잡아먹는 것은 어디까지나 생존을 위한 먹이사슬의 원칙으로 설명된다. 그렇지만 인간이 인간을 죽이는 것으로 쾌감을 맛본다면 그것은 먹이사슬 문제가 아니라 유희본능의 잠재의식에서 나오는 잔악한 작용일는지도 모른다. 지금도 자행되고 있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만 보더라도 군인들의 저지른 학살은 죄 없는 민간인들의 처절한 슬픔과 분노가 되고 있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문득 이상의 가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작품 속 아이들은 심심해서 나란히 앉아 똥을 눈다. 차라리 똥 누기 놀이를 할망정 심심풀이 삼아 목을 비틀거나 다리를 꺾고 놀지 않았으니, 이런 휴머니즘이 문학이 추구하는 이상적인 평화의 전원 풍경이다.

반세기의 세월이 흐른 지금, 그토록 흔하던 풍뎅이들은 다 어디로 사라진 것인지 나무숲이 우거진 산엘 가도 볼 수가 없다. 그들의 멸종 위기가 어쩌면 나의 유년기에도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닌지. 옛날을 되새김질할 때마다 회한(悔恨)처럼 가슴이 아려 오는 것도 되돌아갈 수 없는 과거의 부끄러운 잘못인 듯하다.

박원명화 수필가. 사진=주간한국 제공 박원명화 수필가. 사진=주간한국 제공

◆박원명화 주요 약력

△충북 청주 출생 △2002년 한국수필 등단 △(사)한국수필가협회 사무총장 △수필집 '남자의 색깔' '길 없는 길 위에 서다' '풍경' '달빛 사랑' '디카, 삶을 그리다' 외 다수 △제39회 일붕 문학상, 제15회 한국문협 백년 상, 제42회 한국수필문학상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