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타이베이=스포츠한국 이정철 기자] 선발투수가 나오면 일단 참고 기다렸다. 돌아온 것은 실점이었다. 결국 점수를 많이 준 후에 교체를 단행했다. 이런 패턴이 3경기나 나왔다. 이제는 바뀌어야할 때이다.
류중일 감독이 이끄는 한국 야구대표팀은 16일(이하 한국시각) 오후 7시30분 대만 타이베이 티엔무야구장에서 열린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 프리미어12 2024 B조 조별리그 3경기 도미니카 공화국전에서 9–6으로 이겼다.
임찬규. ⓒ연합뉴스이로써 한국은 B조 전적 2승2패를 기록하며 실낱같은 슈퍼라운드 진출 희망을 이어갔다.
이날 한국의 승전보는 기적같은 결과였다. 한국이 6회초까지 도미니카 공화국에게 0-6으로 뒤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리드를 내준 이유는 간단했다. 투수진이 무너졌다. 그 중에서도 선발투수 임찬규의 난조가 아쉬웠다.
임찬규는 2024시즌 정규리그 평균자책점 3.83, 포스트시즌 평균자책점 1.08을 기록했다. 패스트볼은 시속 140km 초반대를 형성하지만 주무기인 체인지업이 패스트볼과의 피치터널이 좋고 커브도 낙차 큰 모습을 보여준다. 슬라이더도 우타자 바깥쪽으로 절묘하게 휜다. 이 구종들을 적절하게 활용할 제구력도 갖추고 있다.
하지만 도미니카전에서 임찬규는 평소와 다르게 커맨드부터 흔들렸다. 1회초부터 무사 1,2루를 내주더니 2회초엔 무사 만루를 허용했다. 병살타를 잡아내며 1실점으로 묶었지만 임찬규의 공이 도미니카 타자들을 압도하지 못하고 있었다.
류중일 감독으로서는 이 때부터 불펜진 가동을 염두에 뒀어야 했다. 이날 경기에서 패배하면 사실상 한국의 슈퍼라운드 진출은 좌절되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5팀이 2승3패로 맞물리는 희박한 경우의 수만 남아있을 뿐이었다. 그렇다면 도미니카 타자들에게 뭇매를 바꾸고 있는 임찬규를 조기에 교체했어야 했다.
그러나 류중일 감독은 요지부동이었다. 마침 임찬규가 3회초 삼자범퇴 이닝을 만들었다. 이에 류중일 감독은 임찬규를 4회초에도 마운드에 올렸다. 하지만 임찬규는 누네즈에게 우중간 2루타, 알칸타라에게 우월 투런홈런을 맞았다. 결국 점수를 다 내준 뒤 마운드에서 내려왔다.
고영표. ⓒ연합뉴스류중일호는 이번 대회에서 이런 장면을 많이 보여주고 있다. 대만전엔 흔들리는 고영표를 교체하지 않다가 그랜드슬램, 투런홈런을 허용하며 순식간에 6실점을 허용해 3-6으로 패배했다. 일본전에서도 2회말 뭇매를 맞던 최승용을 그대로 마운드에서 방치하다가 1-2 역전을 당했다. 최종스코어도 3-6으로 졌다.
선발투수의 이닝 소화에 대해 강박관념을 느끼고 있는 것 같은 행보다. 불펜데이를 하더라도 ‘선발투수가 적어도 이 정도 이닝은 소화해야지’라는 고정관념을 밀어붙이는 모양새다.
불펜데이면 모든 투수들이 총출동해야 한다. 선발투수가 꼭 많은 이닝을 소화할 필요는 없다. 최소한의 이닝이라도 던지길 원하지만 애초에 불펜데이에서 선발투수의 역할은 오프너로 한정되는 것이다. 1회부터 바뀌어도 상관없다.
오히려 흔들리고 불안한 선발투수를 실점할 때까지 활용하며 한 타자라도 더 승부하게 하려는 것은 패배로 가는 지름길이다. 실제 2번의 패배, 도미니카전 6점차 리드를 내준 것 등이 이를 증명한다.
물론 선발투수가 이닝을 오래 소화하는 게 필요할 때도 많다. 그렇지 않으면 불펜투수들이 과부하에 걸리기 때문이다. 류중일 감독 또한 16일 경기 전 인터뷰에서 “불펜투수들이 과부하에 걸려 있다. 선발투수의 중요성을 확인하는 대회”라고 했다.
하지만 이는 장기레이스에서 더 어울리는 말이다. 단기전에선 불펜진이 어느정도 과부하에 걸리더라도 쏟아부어야할 때 모든 걸 걸어야 한다. 아껴줄 때가 아니다. 1패가 곧 탈락과 연결될 수 있다. 그럼에도 한국 대표팀은 실점하는 선발투수들을 더 실점할 때까지 지켜봤다.
이닝 소화는 코치진의 의지보다 투수의 능력과 컨디션에 달려있는 영역이다. 감독이 원한다 하더라도 선수가 실력으로 받쳐줘야 한다. 그런데 류중일호엔 냉정히 이닝을 많이 소화할 선발투수가 없다. 그렇다면 억지로 선발투수들을 길게 가져갈 필요가 없다. 2이닝, 3이닝도 많다. 호주전에선 선발투수가 흔들릴 경우, 1회에도 교체할 수 있는 대표팀으로 변신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