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참한 곳에서 권력 중심으로…토머스 크롬웰 연대기 '울프홀'

연합뉴스 2024-11-15 10:00:43

'부커상 2회 수상' 힐러리 맨틀 연작 장편 국내 번역 출간

'울프홀' 1·2권

(서울=연합뉴스) 황재하 기자 = 대장장이의 아들로 태어나 영국 왕의 심복으로 권력의 중심에 서게 된 입지전적인 인물. 냉혈한 기회주의자이자 뛰어난 행정가. 권모술수로 흥했다가 권력의 암투에 밀려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인물.

토머스 크롬웰은 영국의 왕권이 역사상 가장 강력했던 시기인 튜더 왕조 2대 국왕 헨리 8세 재위 기간(1509∼1547년) 사실상 국가 2인자 자리에 올랐다가 몰락한 인물이다.

크롬웰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을 오간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뛰어난 지략과 굳은 의지로 갖은 고초를 이겨내고 자수성가한 이야기에는 감탄이 절로 나오고, 냉정하게 수많은 정적을 제거한 이력에는 자연스레 눈살이 찌푸려진다.

'울프홀 3부작'으로 불리는 영국 소설가 힐러리 맨틀(1952∼2022)의 연작 장편 '울프홀', '시체들을 끌어내라', '거울과 빛'은 토머스 크롬웰의 생애를 다룬 역사 소설이다. 이 가운데 '울프홀'과 '시체들을 끌어내라'가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으로 출간됐다.

헨리 8세는 여섯 차례 결혼해 여성 편력으로 유명한 인물이다. 1509년 왕위에 오른 그는 왕자일 때 요절한 형의 아내 캐서린과 결혼하는데, 캐서린이 20년 넘게 아들을 낳지 못하자 혼인을 일방적으로 무효화 한다. 이후 앤 불린과 결혼하지만, 역시 오랜 기간 아들을 낳지 못하자 누명을 씌워 처형한다.

크롬웰은 이 과정에서 뛰어난 수완과 권모술수로 왕이 원하는 바를 이뤄준다.

헨리 8세의 첫 결혼을 무효로 해 달라는 요청을 교황청이 불허하자 크롬웰은 왕에게 잉글랜드 교회를 가톨릭에서 독립시키는 '수장령'을 선포하도록 조언한다. 수장령 덕분에 헨리 8세는 잉글랜드 국교회(성공회)의 수장이 되고, 자기 뜻대로 결혼을 무효로 한다.

세월이 흘러 헨리 8세가 두 번째 아내인 앤 불린에게 진절머리를 내자 마침 불린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크롬웰은 '조사' 끝에 그녀가 여섯 명의 남성과 불륜을 저질렀으며 심지어 남동생과 근친상간했다는 죄명을 씌운다.

문제를 해결해줄 때마다 크롬웰은 왕의 더 큰 신임을 얻게 되고, 그는 그렇게 승승장구한다.

'시체들을 끌어내라'

작가는 화자의 입을 빌려 "모든 역사의 이면에는 또다른 역사가 있다"('울프홀' 1권)고 말한다.

소설은 열다섯살의 크롬웰이 대장장이인 아버지의 구타에 시달리다 못해 고향인 런던 퍼트니를 떠나는 모습으로 시작한다. 이처럼 '울프홀 3부작'은 크롬웰의 잔혹하고 냉정한 정치가로서의 모습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인물의 다양한 면을 있는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입체감을 더했다.

'울프홀'은 헨리 8세의 세 번째 아내인 제인 시모어 친정의 자택을 부르는 말이다. 아울러 '늑대굴'이라는 뜻도 담고 있어 작품이 묘사하는 야만적인 권력 암투를 빗대는 것으로도 읽힌다.

돋보이는 것은 인물들이 주고받는 재치 있는 '촌철살인'의 대화와 크롬웰의 냉철한 통찰력을 담은 문장들이다. 이 문장들 덕에 16세기 초반을 다룬 역사 소설임에도 세련된 인상을 준다.

"이 나이쯤 되면 마땅히 알아야 한다. 남달라서 성공하는 게 아니다. 영특해서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강해서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교활한 사기꾼으로 거듭남으로써 성공하는 것이다."('울프홀' 1권)

"백성을 시험하거나 절박한 궁지로 몰아넣지 않는 편이 좋다. 그들이 번성하게 하라. 남아도는 것이 많아지면 사람들은 관대해진다. 넉넉히 부른 배가 신사의 매너를 낳는다. 쓰라린 굶주림은 괴물을 만든다."('시체들을 끌어내라')

'울프홀'과 '시체들을 끌어내라'로 작가 힐러리 맨틀은 2009년과 2012년 각각 영국 부커상(당시 맨부커상)의 영예를 안았다. 한 작가가 부커상을 두 번 받은 역대 세 번째 사례다.

▲ 울프홀 = 강아름 옮김. 1권 432쪽, 2권 560쪽.

▲ 시체들을 끌어내라 = 김선형 옮김. 648쪽.

jae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