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지구상에서 가장 개체수가 많은 건 새끼 동물이다. 유충이나 새끼 시절이 생애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종(種)도 있다. 이들은 성체가 되기까지 험난한 길을 걸어야 한다.
가령, 갯지렁이는 태어나자마자 형제들과 생존경쟁을 벌인다. 큰 놈이 작은놈을 잡아먹는 동족 포식이 빈번하다. 새끼 상어는 난류를 만나면 포식자의 눈에 더 잘 띄어 먹잇감이 될 수 있다.
때론 엄마나 아빠도 믿을 수 없다. 어떤 성체는 서슴지 않고 새끼를 마음대로 다루거나 상황이 여의찮으면 곧바로 잡아먹는다.
설상가상으로 새끼들은 성체에 견줘 몸도 부실하다. 유충은 DDT 살충제를 맞으면 껍질이 바로 손상되고, 조류 배아(胚芽)는 유출된 기름에 빠지면 죽는다.
이처럼 자란다는 건 도전의 연속이다. 그 과정에서 주검이 되기도 하지만 성체로 자라기도 한다. 약간의 운(運), 그리고 나름의 생존 전략 덕택이다.
천인조는 긴꼬리단풍조의 둥지에서 기생해 자란다. 다른 새의 둥지 안에 알을 몰래 넣고 부화시켜 새끼를 키우는 이른바 '탁란'(托卵)을 하는 종이다. 성체 모습은 전혀 다르지만, 새끼 때 천인조의 입은 긴꼬리단풍조의 입과 매우 닮았다. 천인조가 긴꼬리단풍조 부모를 속여 먹이를 받아먹기 위해 어릴 때만 입이 같은 무늬로 진화한 것이다.
숙주의 어린 새 울음소리를 똑같이 흉내 내 숙주 부모를 부르는 종도 있다. 청개구리알은 포식자인 뱀이 접근하기 시작하면 평소보다 이틀 정도 일찍 부화해 도망친다. 얼룩상어 배아는 굶주린 포식자를 감지하면 정지한 채 숨을 참는다.
최근 출간된 '어린것들의 거대한 세계'(위즈덤하우스)는 미국 해양 생물학자인 대나 스타프가 지구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동물의 어린 시절에 관해 쓴 책이다. 저자는 새끼들의 다양한 생존전략과 험난한 세상을 헤쳐가는 고군분투, 진화와 환경 문제 등 다양한 이야기를 전한다. 책의 부제는 '지구를 완성하는 어린 동물의 놀라운 생존에 관하여'다.
주민아 옮김. 3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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