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디업체 대표 "그라운드 잔디, 크게 악화하지 않아…오히려 추춘제가 잔디엔 유리"
연맹 의무위원 "혹서기보다 혹한기가 선수 건강 관리에 유리"
8주 윈터 브레이크 활용법도…"후반기 앞서 몸상태 회복…부상 선수도 복귀 가능"
(서울=연합뉴스) 설하은 기자 = K리그 추춘제 전환에 따라 예상되는 각종 문제점 중 지자체의 회계 연도가 가장 골치 아픈 장애물로 지목됐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은 13일 서울 종로구 아산정책연구원 대강당에서 K리그 추춘제 전환 검토를 위한 공청회를 열고 축구계 각 인사 및 전문가의 의견을 청취했다.
프로축구 구단에서는 울산 HD의 최정호 사무국장과 충북청주FC의 윤지현 사무국장이 참석했고, 잔디관리 전문업체 왕산그린의 이강군 대표와 정태석 K리그 의무위원도 자리했다.
윤지현 충북청주 사무국장은 지자체의 예산 처리 과정을 언급하며 추춘제 전환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의견을 개진했다.
우리나라의 행정 제도상 회계 연도는 1월에 시작해 12월에 끝난다.
지자체의 보조금을 받는 대다수 구단은 적게는 20억∼30억, 많게는 150억원을 지원받고 있다.
즉 8월에 시작해 이듬해 5월에 끝나는 추춘제 도입은 지자체의 회계 처리 시스템과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윤지현 국장은 "1부 리그에서는 12개 팀 중 6개 팀이, 2부 리그에서는 13개 팀 중 9개 팀이 지자체의 보조금을 받는다"며 "연도를 넘겨 시즌을 치르는 추춘제는 지자체 보조금을 받아 구단을 운영하는 팀에는 쉽지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
"이건 단순히 '불편하다'의 문제가 아니다. 회기를 쪼갤 수 있느냐의 문제"라고 강조한 윤 국장은 "지자체마다 한 해 예산은 수조원에 달하는데, 각 구단이 받는 수십 억원 때문에 전국적으로 회계 연도를 바꿀 수 있겠냐"고 반문하며 "가능한지, 가능하지 않은지 문제부터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본에서는 가을 학기를 도입하는 대학도 등장하는 등 회기가 넘어가는 걸 조금씩 허용하고 있다며 일본 J리그가 추춘제를 도입할 수 있게 된 행정적 배경을 언급한 윤 국장은 "한국은 아직도 회계연도에 강하게 묶여있다"고 말했다.
윤 국장은 "이런 상황에서 춘추제를 도입한다면 12월에서 비용을 한 차례 끊어 처리한 뒤 1월부터 회계 처리를 다시 하는 방법밖에 없을 것 같다"며 "만약 시즌 도중인 1월에 지자체의 예산이 줄어든다면 구단은 선수에게 약속한 연봉을 제대로 지급하지 못할 수도 있다. 구단 직원을 거짓말쟁이로 만들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이날 공청회에 모인 각계 전문가는 윤 국장의 지적에 대해 뚜렷한 대안이나 해법을 제안하지 못했다.
날씨로 인한 잔디 생육 문제와 부상 위험 증가 가능성, 8주 '윈터 브레이크' 활용법 등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오간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K리그가 추춘제로 전환할 시 매서운 추위 때문에 그라운드 잔디 유지가 힘들 거라는 우려가 제기됐다.
이에 대해 잔디관리 전문 업체 왕산그린의 이강군 대표는 추춘제로 전환해도 잔디 생육과 품질은 크게 악화하지 않을 거라며 오히려 "종합적으로는 추춘제가 잔디에는 유리하다"고 주장했다.
이 대표는 "추춘제가 근본적인 잔디 개선으로 이어지긴 쉽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혹서기인 6∼8월에 경기를 치르지 않는 건 분명 잔디 생육에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겨울에 잔디가 어는 건 사실 상관없다. 잔디는 얼면서 보호된다"는 이 대표는 "다만 윈터 브레이크가 끝나는 2월은 새순을 보호해야 하는 시점이긴 하다. 월 3∼4회 정도 경기를 치른다면 훼손에 따른 영향이 크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추운 날씨에 경기를 치를 경우 선수들의 부상 위험이 증가할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서도 의견이 오갔다.
선수 대표로 공청회에 참석한 포항 스틸러스의 신광훈은 "혹서기엔 훈련 자체가 힘들고, 팀의 전략전술 자체가 바뀔 정도"라며 추춘제 전환을 환영하면서도 "따뜻한 나라로 동계 전지훈련을 가는 이유는 부상을 방지하기 위해서인데, (겨울에 경기를 치른다면) 부상이 많이 생길 것 같다. 특히 수술 이력이 있거나 나이가 든 노장 선수는 더욱 그렇다"고 걱정했다.
그러면서 추춘제 예상 시나리오의 리그 일정에 대해 "12월에 한 주가 늘어나거나 2월에 경기를 재개하지 말고, 주중 경기 비중을 늘리는 방식 등으로 일정을 잘 짜서 지금처럼 경기 일정이 유지된다면 더 좋을 것 같다"고 제안했다.
정태석 연맹 의무위원은 "그라운드가 딱딱하면 관절에 부하가 커지면서 충격 완화 능력이 떨어지므로 무릎과 발목 등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미끄러운 잔디에서는 인대 염좌 및 파열 등이 예상된다"고 걱정했다.
다만 정 위원은 "우리나라엔 월별, 계절별 부상 통계가 없고 개인적으로 축적한 데이터를 봐도 유럽 추춘제 데이터와 큰 차이는 없다. 오히려 시즌 말미로 갈수록 부상 위험이 증가한다"고 주장했다.
또 "경기 중 체중 감소의 99%는 수분 손실이다. 수분 손실이 체중의 2%에 해당하면 고강도 능력이 30%가 감소하고 체중의 3%가 수분으로 줄면 고강도 능력은 45%, 유산소 기능은 5% 감소한다"고 설명한 정 위원은 "행정 편의를 위해 혹서기에 경기를 몰아넣고 한 달에 6경기를 치르는 건 합리적이지 못하다"며 선수 건강 관리나 경기력 측면에서 추춘제가 장점이 있다고 봤다.
정 위원은 "혹서기보다 혹한기를 견디기 위한 개인별 대처방안이 훨씬 다양하다"고 덧붙이며 혹서기의 관중 온열질환을 피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여름철 '땡볕 직관'보다는 겨울에 경기하는 게 차라리 낫다는 입장을 밝혔다.
8주간의 윈터 브레이크를 충분히 활용할 방안도 언급됐다.
이날 한국프로축구연맹이 공개한 K리그 추춘제 전환 시나리오에서는 8월에 리그를 시작해 12월 중순까지 전반기를 치르고 약 8주 동안 휴식기를 거쳐 2월 중순부터 5월 중순까지 후반기를 이어가는 일정이 가상으로 설정됐다.
현재 K리그는 12월 초중순까지 승강 플레이오프(PO)를 치르고, 새 시즌은 3월에 개막한다.
이와 비교했을 때 추춘제로 전환할 시 12월엔 1주가량 경기를 더 치르고, 봄엔 2주 정도 빨리 리그 일정을 재개하는 셈이다.
윤지현 국장과 최정호 울산 HD 사무국장은 휴식기를 이용해 겨울 전지훈련을 가는 게 비용적으로 크게 부담되지 않는다고 했다.
기존에도 두 차례로 나누어 동계훈련을 가거나 동·하계 전지훈련을 모두 진행하는 구단이 있고, 전지훈련으로 비용이 증가한다고 하더라도 구단이 휘청할 정도의 큰 문제는 아니라고 봤다.
정태석 의무위원은 "8∼12월 전반기를 치른 뒤 맞는 8주 휴식기를 잘 활용한다면 후반기 경기력 향상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시각을 내놨다.
그는 "체력을 다시 끌어올리는 개념으로 활용할 수 있다. 전반기에 부상을 당해도 8주 안에 어느 정도 회복할 수 있고, 선수단 전체 가용성을 높일 좋은 시간이 될 것"이라며 "봄에 중요한 토너먼트와 플레이오프 등을 앞두고 경기력을 제고할 수 있다"고 긍정적으로 봤다.
다만 포항 신광훈은 올 시즌 초 뜨거운 발끝을 뽐내다가 김천 상무에 입대해 공격포인트 생산이 주춤해진 이동경의 사례를 들며 "중간에 쉬게 되면 한창 좋았던 선수는 휴식을 취한 뒤 다시 몸을 만들어야 한다는 점에서 연속성에는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짚었다.
미디어 대표로 공청회에 나선 안홍석 연합뉴스 기자는 국내외 다른 스포츠와의 관계성을 언급하며 언론계의 입장을 전했다.
지상파 방송사의 경우 추춘제 시행에 따라 여름철 밤 경기가 줄고 낮 경기가 늘어난다면 중계방송 편성이 늘 가능성이 있다며 긍정적으로 반응했다고 한다.
미디어 노출과 화제성 측면에 대해 안 기자는 "K리그 파이널 라운드를 4∼5월에 진행한다면 '가을 야구'를 피할 수 있다. 다만 냉정하게 얘기해서 겨울∼봄에 열리는 여자배구의 인기를 넘어설 수 있겠냐는 질문에 긍정적으로 답한 동료 기자는 한 명도 없었다"며 언론계에서는 추춘제 찬성 입장이 대세는 아니라고 전했다.
K리그가 추춘제를 도입한다면 K리그 파이널 라운드와 유럽 주요 리그의 우승 레이스와 겹치게 된다.
이에 대해 안 기자는 "K리그 기사는 아직 돈이 되지 않기 때문에 인터넷 매체 기자들은 재택을 하며 '훨씬 돈이 되는' 외신을 전하라는 압력을 받는다"고 실정을 짚으며 "그렇게 되면 회사가 K리그 현장 취재를 계속 용인해줄 것인가에 대해 따져 봤을 때 긍정적인 답변이 나오지 않더라"라고 언론이 직면할 변화도 설명했다.
soruh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