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생활 라이프스타일샵 '피우다' 강혜영 대표…현실판 '정숙한 세일즈' 주인공
"유해업소로 신고되기도"…"성생활용품, 사용자 따라 역할·의미 달라져"
(서울=연합뉴스) 이승연 기자 = "드라마에서는 모자이크 처리됐지만 단번에 어떤 모델인지 알아봤죠."
2017년부터 성생활 라이프스타일샵 '피우다'를 운영하고 있는 강혜영(43) 대표를 지난 12일 용산구 이태원동에서 만났다.
강 대표는 유튜브 및 방송을 통해 성생활 용품을 소개하고 성 담론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는 21세기 대한민국 현실판 '정숙한 세일즈' 주인공이다.
강 대표는 "나도 모르게 드라마를 보며 제품을 구별하고 있었다"며 "'딜도팔이' 7년차의 눈은 속일 수 없나보다 싶었다"고 웃었다.
드라마 속 주인공 '정숙'(김소연 분)이 시골 주민들에게 성인용품의 쓰임새를 알려줬듯 강 대표의 가게는 종종 손님들을 위한 성교육 현장이 된다.
강 대표는 "개업 초기 한 손님한테 제품을 설명해주고 있었는데 당시 가게에 있었던 70대 할머니, 젊은 커플이 조금씩 제 얘기를 듣고 주변으로 모여들었다"며 "그렇게 일종의 '강연'을 하는 일이 빈번했다"고 미소 지었다.
'정숙'이 성인용품이 가득 든 가방을 잃어버리는 장면, 우여곡절 끝에 가방을 되찾은 뒤 넘어지면서 가방 속 내용물이 바닥에 쏟아졌던 장면을 언급하며 강 대표는 "저도 아주 조심하는 부분"이라며 웃음을 터트렸다.
실제로 강 대표는 방송 촬영차 성인용품을 한 아름 들고 택시로 이동하던 중 쇼핑백 속 제품끼리 부딪치면서 '기구'의 전원이 켜져 난처했던 기억이 있다고 한다.
그는 "아무리 눌러도 꺼지지 않고 오히려 더 진동이 세졌다. 너무 당황스러웠다"고 회상했다.
이어 "촬영하며 너무 긴장한 탓인지 집에 돌아올 때 쇼핑백을 방송국에 두고 왔는데, 제가 너무 얇은 쇼핑백에 담아가는 바람에 작가님이 혹여나 찢어질까 조심하셨다고 들었다"고 웃었다.
가게 주변 주민들의 시선도 마냥 곱지 않았다.
강 대표는 "몇 달 전 개업 7년 만에 처음으로 구청에 유해업소로 신고돼 공무원들이 찾아온 적이 있다"며 "어쩌다 신고자를 알게 됐는데, 평소 살갑게 지내던 동네 주민이었다"고 털어놨다.
드라마 속 '정숙'도 평소 가깝게 지내던 철물점 사장으로부터 해코지당한다. 철물점 사장은 정숙의 집 벽에 'SEX'(섹스)라는 낙서를 한 범인으로 드러났다.
강 대표는 "그 에피소드를 보며 아주 공감했다"며 "현장에서 일하는 친구들이 힘들까 봐 더는 그 주민분한테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지만, 이럴수록 더 숨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가게를 통유리로 감싸 개방성을 높이고 내부를 밝은 색상으로 꾸민 것도 그러한 취지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한국적으로 해석한 그림 작품은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내걸었다. 여성이 성적 호기심을 갖고 새로운 모험을 떠나 성장하길 바란다는 메시지를 담았다고 한다.
강 대표는 2011년 미국 성인용품점을 다녀온 친구의 말을 듣고 지금의 '피우다'를 구상하게 됐다고 한다. 그는 "갑자기 제 미래가 그려지면서 '천직을 찾았다'는 예감이 들었다"고 했다.
어둡고 음침한 성인용품점이 아닌 밝고 경쾌한 음악이 흐르며 직원으로부터 전문적인 제품 설명을 들을 수 있는 성인용품점 '피우다'는 그렇게 탄생했다.
개업 초기만 해도 성 기구에 대한 국내 인지도가 낮고 유사한 업종의 가게도 극히 드물었다. 이에 따라 대부분 손님도 외국인 혹은 외국에서 살다 온 한국인이었다고 한다.
강 대표는 "그것도 오래가지 않았다"며 "개업 몇 달 후부터 한국인 손님이 눈에 띄게 늘었고 현재는 약 70%에 이른다. '한국인들이 이런 공간을 기다리고 있었구나' 싶었다"고 했다.
이어 "초반에는 클리토리스(여성의 음핵)조차 모르는 사람이 많았다면, 이제는 중년의 어머니들도 그 용어를 알고 적극적으로 기구 사용법을 묻는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변화는 강 대표가 새로운 목표를 갖게 한 원동력이었다.
그는 "내 몸을 긍정하고 성적 욕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내면이 단단한 '정숙'이가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강 대표는 현재 자신만의 색깔을 담은 성생활 용품을 제작 중이다.
그는 "7년간 많은 공부를 했고 데이터도 쌓인 만큼 우리가 만드는 제품은 남들과 다를 거라는 자신감이 생겼다"며 "'피우다'만이 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어 수출하는 게 목표"라고 했다.
한국 사회의 성 담론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는 "타인의 성에 대해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마음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런 측면에서 성생활용품은 서로 다른 사람이 가진 다양한 취향을 현실적으로 실현해줄 수 있는 도구이죠.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도구의 역할, 용법, 의미는 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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