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12일 페이스북에 “드디어, 더불어민주당도 탈원전 정책이 잘못된 것임을 인정했습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한 대표는 여야가 원전 예산 2138억 원을 정부안대로 합의했다는 내용의 기사를 전제로 이 글을 작성했다. 이 글에는 원전 예산안에 대한 언급만 있을 뿐 신재생에너지 등 다른 예산에 대한 내용은 없다.
사실 민주당은 지난 11일 국회 산자위 예산소위에서 신규사업으로 △재생에너지 계통 수용성 증진사업(169억 9600만 원) △풍력발전핵심소재 원료화 지원센터(10억 원) △컨테이너급 ESS 화재안정성 평가 기반구축(2억 원) △50MW급 수소 융합발전기 핵심기술 개발사업(2억 원) △전기차 충전시설 통합관리 시스템 구축(1억 8900만 원)사업을 관철시켰다.
이 밖에 △산업부가 35억 원을 요구한 차세대 태양전지 실증사업에선 20억 원 증액 △100억 원 요구한 한국에너지공대 사업지원 100억 원 증액 △3141억 300만 원 요구한 신재생핵심기술개발 112억 원 증액 △1563억 7300만 원 요구한 신재생에너지보급지원 37억 2200만원 증액 △3263억 요구한 신재생금융지원융자 2000억 원 증액을 얻어냈다.
결과적으로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원전과 신재생 에너지 예산을 주거니 받거니하면서 타협점을 찾은 것으로 분석된다. 그런데도 한 대표는 오직 원전 예산만 언급하며 “탈원전 정책이 잘못됐다”는 요지의 글을 올린 것이다.
에너지 정책 관련한 전체 예산을 평가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유리한 측면만 강조한 아전인수의 전형이다.
전임 정부 시절 환경운동가 출신 국회의원을 중심으로 이른바 ‘탈원전’ 정책이 광범위하게 펼쳐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속내를 들여다 보면 사실과 다르다. 전임 정부 시절 오히려 원전에 대한 투자액은 늘었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재생에너지 정책을 적극 펼치면서도 산업통상자원부 관료들의 전문성을 존중했다. 그래서 산업부는 원전정책을 유지할 수 있었고 수소정책을 입안했다.
당시 민주당 송영길 대표, 이원욱 국회 과기정통위원장 등은 소형모듈원전(SMR) 개발 정책을 지지하기까지 했다.
산업계에선 원전 일감이 끊긴 시기가 불과 6개월이라는 전언도 있다. 전임 정부가 신고리 5·6호기를 공론화하면서 두산에너빌리티와 협력사는 원자로 제작에 나선 바 있다. 주기기 완성 6개월 후 신한울 3·4호기 물량을 받아 공장가동을 재개했다.
물론 환경운동가들이 '탈원전'이라는 용어를 구호로 사용한 것은 사실이다. “원전은 안전하다”라는 구호만 되풀이할 뿐 각종 사건사고를 알리는데 주저하는 원자력계의 태도를 환경운동가들이 못마땅해 한 것도 맞다. 환경운동가들의 노력으로 원자력계가 자정할 수 있었다는 평가도 들린다.
원자력계는 이런 환경운동가들에 대항해 태양광에 대한 각종 루머를 퍼트렸다. 나중엔 원자력과 태양광을 같이 진흥한다고 말하면서도 실제 원전 중심의 에너지 정책을 건의했다.
‘탈원전’은 정부정책과 산업현장에서 펼쳐지는 실체적 진실과 동떨어진 정치 구호일 뿐이다.
기자는 12일 국회 산자위 전체회의에서 확정된 예산소위 협상안에 내심 기뻤다. 산업부, 원자력계, 재생에너지업계, 수소업계의 요구가 골고루 반영됐기 때문이다. 이를 기점으로 원자력계와 재생에너지 지지자들의 반목이 사라지고 서로 공존하기를 바랬다.
그런데 이날 저녁 한 대표의 SNS 포스팅을 보고 정신이 아뜩해졌다. 지지자들을 의식한 게시글이겠지만, 공존을 위한 재생에너지업계와 원자력계의 노력이 빛바래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과학계에서 존경받는 어느 여당 국회의원은 “에너지는 정치와 거리를 둬야한다”는 발언을 줄기차게 하고 있다. 그처럼 한동훈 대표도 '탈에너지 정치'의 길로 들어서면 어떨까.
더는 탈원전, 탈탈원전 양진영으로 갈라져 싸우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