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소설가들이 본 암담한 교육현실…'킬러 문항 킬러 킬러'

연합뉴스 2024-11-13 10:00:59

안보윤 신작 장편 '세상 모든 곳의 전수미'

'킬러 문항 킬러 킬러'

(서울=연합뉴스) 황재하 기자 = ▲ 킬러 문항 킬러 킬러 = 장강명 외 13인 지음.

"규정을 다 지키며 사는 사람은 경쟁에서 점점 밀려나 나중에는 아예 게임에 끼질 못하게 돼."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이 치러지는 날 아침. 아버지는 곧 시험장에 가야 하는 수험생 아들에게 법적으로 금지된 수백만원짜리 집중력 강화제를 내밀면서 이렇게 말한다.

아들은 반칙이 싫다며 알약을 먹지 않으려 하지만, 이에 아버지는 "공정한 경기라는 건 애초에 존재한 적이 없다"고 설득한다.

"네가 정말 다른 수험생들과 동등하게 시험을 치를 수 있다고 믿니? 여태까지 네가 누린 혜택들을 떠올려보렴. 너처럼 해마다 미국으로 영어 캠프를 다녀올 수 있었던 학생이 네 또래 중에 몇이나 될 것 같니?"

열네 명의 소설가가 쓴 엽편 내지 단편 분량의 짧은 소설 열네 편을 모은 앤솔러지(선집) '킬러 문항 킬러 킬러'의 표제작(장강명 지음)에 담긴 이야기다.

정부는 공교육만 받은 학생이 도저히 풀지 못하는 '킬러 문항'을 사교육의 원흉으로 지목한다. 입시 컨설턴트(상담가)들은 그런 정부를 '킬러 문항 킬러', 자신들은 정부에 맞서는 '킬러 문항 킬러 킬러'라고 규정짓는다.

학원이 "수능에 어려운 문제가 없을 테니 실수를 줄이라"고 조언하자 학부모들 사이에서 집중력 강화제가 실수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는 소문이 돈다.

'킬러 문항 킬러 킬러' 속 소설들은 이처럼 한국 교육의 암담한 현실을 소재로 삼았다. 작년 8월부터 올해 1월까지 한겨레신문에 연재된 소설 9편에 다섯 명의 소설가가 쓴 작품을 추가로 수록했다.

입시에 유리하다는 이유로 자퇴를 권유받는 고등학생 이야기 '학교를 사랑합니다: 자퇴 전날'(이기호), 대안학교 출신 학생이 대치동 학원가에서 외면당하는 이야기 '한 바퀴만 더'(주원규), 과도한 입시 경쟁에 내몰리는 학생들을 바라보는 교사의 심경을 담은 '구슬에 비치는'(이서수) 등이 실렸다.

한겨레출판. 232쪽.

'세상 모든 곳의 전수미'

▲ 세상 모든 곳의 전수미 = 안보윤 지음.

사회의 병리적인 현상과 부조리를 짚어내는 작가 안보윤의 신작 장편소설이다.

화자인 전수영은 어린 시절부터 폭력적인 행동을 일삼는 연년생 언니 전수미 때문에 고단하게 살아왔다.

전수미는 방 안의 물건을 모조리 때려 부수거나 "죽어 버릴 거야"라고 부모님을 협박하고 성매매를 미끼로 낯선 남자를 집에 끌어들인 뒤 협박하는 등 점점 도를 넘는 짓을 벌인다.

전수미가 벌인 사고를 수습하느라 부모님은 늘 전전긍긍했고, 이 때문에 전수영은 누구에게도 관심받지 못하는 쓸쓸한 처지다.

성인이 되고 보니 전수미는 집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전수영은 언니와 같은 인간이 세상 어디에나 있다는 것을 차츰 깨닫는다.

전수영은 노견 돌봄 센터에서 일하게 되고 임종을 앞둔 병들고 늙은 개들을 돌보는데, 센터 원장이 '돈이 되지 않는' 개들을 골라 안락사시키는 것을 눈치챈다.

이런 비밀을 고객들에게 폭로하려 하자 원장은 전수영의 약점을 빌미로 입을 막으려 든다.

안보윤은 2005년 장편소설 '악어떼가 나왔다'로 문학동네 작가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2021년 '완전한 사과'로 김승옥문학상 우수상을, 2023년 '애도의 방식'으로 이효석문학상을 받았다.

현대문학. 196쪽.

jae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