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여년 경전 연구 종합한 전집 출간…"사람이 부처다" 강조
"직지심경 활자 갖고 떠들썩…내용이야말로 자랑할만한 것"
(부산=연합뉴스) 이세원 기자 = "내가 공부를 해보니 세상에 이렇게 좋은 보물이 있는데, 책장을 넘길 때마다 다이아몬드가 '와르르' 쏟아지는데, 이 훌륭한 다이아몬드를 주워 담으려고 안 하고 무엇에 관심을 갖는지 참 안타까워요."
불교의 가르침을 알기 쉽게 풀어 온 대강백(大講伯) 무비스님은 60년 넘게 이어온 경전 연구의 핵심을 종합한 전집을 내놓으면서 "공부 좀 하면 좋겠다"고 후학들을 향해 이렇게 당부했다.
120권이 넘는 무비스님 저서 중 29종 33권을 선별해 25권으로 재구성한 '여천무비스님 전집 화중연화'(火中蓮華, 불광출판사)가 23일 출간된다.
출간을 앞두고 12일 부산 금정구 범어 화엄전에서 기자 간담회를 연 무비스님은 "불교의 ABC에서부터 어린아이에게 밥을 씹어서 떠먹여 주듯이 친절하게 설명했다. 불교를 이해하는 데는 이것이면 넘칠 것"이라고 전집을 소개했다.
전집에서 무비스님은 부처 앞에서 예경(禮敬)을 드릴 때 외우는 예불문, 팔만대장경의 정수를 담은 천수경, 공(空) 사상을 압축한 반야심경을 다양한 예시와 함께 풀이한다.
금강경, 지장경, 법화경, 유마경, 직지심경(직지, 직지심체요절) 등 이름난 경전도 차례로 강설한다. 무비스님은 직지의 활자에만 지나치게 주목하는 세태에 안타까움도 표명했다.
"직지심체요절의 활자를 가지고 세상이 떠들썩합니다. 그 속에 들어 있는 정신이야말로 정말 자랑할만한 것이에요. 껍데기만 가지고 떠들썩하길래 속이 상해서 내가 알려야겠다고 한 것이에요."
그는 대강백(大講伯)이라는 경칭에 어울리는 연륜과 깊이를 보여주고자 한다. 불교에서는 오랜 기간 경전을 공부해 교학에 통달한 스님을 강사(講師)라고 부르고 이 군데 특히 존경할만한 분들은 강백이라고 칭한다. 대강백은 강백보다 한층 우러러보는 마음을 담은 표현이다.
중국 대혜(大慧) 대사의 서간문을 모아 놓은 책인 서장(書狀)이나 당나라 승려이며 선종의 한 갈래인 임제종 창시자 임제 의현선사의 법어와 언행을 소개한 임제록(臨濟錄) 강설도 전집에 실렸다.
임제록 강설에 소개된 임제스님과 황벽스님의 기행에 가까운 주고받기는 웃음을 자아내면서도 깨달음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 임제스님은 수행 중 황벽스님에게 갑자기 몽둥이 60대를 맞고 쫓겨난다. 그는 대우스님을 찾아가 몽둥이세례를 당한 경험을 이야기하다가 언쟁한다. 멱살을 잡힌 임제스님은 대우스님 옆구리에 주먹질하고 다시 황벽스님을 찾아간다. 자초지종을 전해 들은 황벽스님은 "어떻게 해야 이놈 대우를 만나서 한 방망이 단단히 때려줄 수 있을까"라고 말한다. 임제스님은 "기다릴 게 있습니까. 지금 바로 한 방망이 때려주시지"라고 말하고서는 손으로 황벽스님을 후려친다. 황벽스님은 "미친놈이 또다시 여기 와서 호랑이 수염을 뽑고 있어"라고 반응한다. 무비스님은 두 스님의 개성 넘치는 행동에 대해 "누가 그 높은 뜻을 알랴. 황벽과 임제만이 느끼며 주고받는 진검 싸움"이라고 전집에서 해설한다.
"선사들은 그냥 때리는 것이 아니라 깨달으라고 때리는 것입니다. 깨달으면 다리가 스무번 부러지는 것보다 더 가치가 있습니다. 선사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죽었던 사람들이 깨어날 정도로 힘이 불끈 솟아요."
무비스님은 가끔은 어렵고 딱딱한 경전을 내려놓고 조금 가벼운 마음으로 부처의 가르침에 다가갈 수 있도록 독자를 배려했다. 불교의 명구(名句)나 명언(名言)을 따로 모아서 해설하는데 2권을 할애한 것이다.
예를 들어 그는 근본을 놓치고 지엽적인 것에 집착하는 이들에게 "단지작불 막수불불해어"(但知作佛 莫愁佛不解語·다만 부처가 될 것을 알지언정, 부처가 된 뒤에 말을 하지 못할까 근심하지 마라)라는 송나라 대혜종고 선사의 말씀을 제시한다.
부처가 되면 법문을 못 할까 염려하지 말고 먼저 부처가 되라는 충고인 셈이다. 무비스님은 여기 딱 들어맞는 일본 승려에 관한 옛이야기를 전한다. 그 승려는 훌륭한 법사가 되면 법문하러 다녀야 한다며 말 타는 법을 먼저 배우고, 연회에 초대받을 때를 대비해 노래도 먼저 배웠으나 정작 법사가 될 공부를 못했다고 한다.
불교를 산에 비유하면 "올라가는 길과 그 방법은 여러 가지"이며 뛰어난 한 구절이 산을 즐겁게 오르는 오솔길과 같다는 것이 무비스님의 지론이다.
전집의 각 권 뒤표지에는 "인불(人佛) 사람이 부처님이다"라는 글이 적혀 있다. 무비스님은 간담회에서도 인불을 강조했다.
"사람이 부처님이라는 것을 알고, 모든 사람을 부처님이라는 마음으로 서로 위해 준다면 세상이 험악하지 않을 것입니다. 서로 위하는 사회, 서로 받들어 섬기는 세상이 될 것입니다. 세상을 평화롭게 하는 열쇠는 인불 사상에 있습니다."
무비스님은 최근 정치 지도자들이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하거나 의정 갈등 등 혼란이 이어지는 것에 대해서는 "불교에서 개인의 문제든지 국가적인 문제든지 우선 지적하는 게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이라며 "세 가지 몹쓸 독을 희석해내고 부드럽고 유연한 삶을 살면 좋겠다"고 말했다.
탐진치는 탐욕(貪欲), 진에(瞋恚), 우치(愚癡) 즉 탐내어 그칠 줄 모르는 욕심과 노여움과 어리석음 등 열반에 이르는 데 장애가 되는 번뇌를 의미한다.
1943년 경북 영덕에서 출생한 무비스님은 1958년 불국사로 출가해 1960년 여환 스님을 은사로 사미계를 받았다. 통도사 강주, 범어사 강주, 은해사 승가대학원장, 대한불교조계종 교육원장, 동국역경원장, 동화사 한문불전승가대학원장 등을 지냈으며 2018년 5월 조계종 최고 법계인 대종사 반열에 올랐다.
현재 부산 범어사 화엄전에 주석하며 유튜브 채널 '무비스님'에서 '염화실TV'라는 제목으로 화엄경 강의를 선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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