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2년 만에 1,400원 돌파…비트코인 연일 최고가
코스피 2,500선 밑으로 후퇴…삼성전자 4년 4개월 만에 신저가
(서울=연합뉴스) 한지훈 채새롬 기자 = '트럼프 트레이드'가 12일 국내외 금융시장을 강타했다.
미국 대선 이후 뚜렷해진 달러 강세에 원/달러 환율이 2년 만에 1,400원을 돌파했고, '트럼프 수혜 자산'으로 지목된 비트코인이 사상 최고가를 거듭 경신했다.
국내 증시는 외국인 매도세에 빛을 보지 못했다. 코스피가 2% 가까이 하락해 2,500선을 내줬고, 대장주 삼성전자[005930]는 5만3천원까지 내려 4년 4개월 만에 신저가를 새로 썼다.
◇ 환율 2년 만에 1,400원대…유로·엔화도 약세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당선 이후 한층 뚜렷해진 달러 강세가 원/달러 환율을 끌어올리고 있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미 달러화 대비 원화 환율의 주간 거래 종가(오후 3시30분 기준)는 전날보다 8.8원 상승한 1,403.5원으로 집계됐다.
이날 새벽 2시 종가는 1,401.0원으로 이미 1,400원을 넘어선 상황이었다.
다만,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 30분까지 이뤄지는 주간 거래 종가 기준으로 1,400원을 넘은 것은 미 긴축 기조로 달러가 초강세였던 지난 2022년 11월 7일(1,401.2원) 이후 이날이 처음이다. 야간 거래는 올해 7월부터 시작됐다.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화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전날보다 0.21% 오른 105.72를 기록 중이다. 장중 기준으로 지난 7월 3일(105.80) 이후 4개월여 만에 최고 수준이다.
달러 강세가 원화 약세와 환율 상승으로 이어지는 흐름이다.
이민혁 KB국민은행 연구원은 "미국 하원에서도 공화당 과반 확보가 유력해지며 '레드 스윕(공화당의 상·하원 장악)' 실현 가능성이 커졌다"며 "이로 인한 트럼프 트레이드가 달러 강세, 원화 약세의 요인이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주요 통화도 달러화 대비 약세를 나타냈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11일(현지 시간) 국제 외환시장에서 유로화는 1.0654달러로 0.61% 내렸다. 한때 1.0629달러까지 떨어졌다. 지난 4월 중순 이래 가장 낮은 수준이다.
일본 엔화도 약세다. 엔/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0.05% 오른 153.79엔을 기록하고 있다.
◇ 비트코인 사상 최고가 경신…알트코인도 덩달아 오름세
가상자산 시장은 모처럼 '불장'을 맞았다.
트럼프 당선인이 지난 대선 유세 과정에서 "미국을 가상자산의 수도로 만들겠다", "비트코인을 전략자산으로 비축하겠다" 등 파격적인 공약을 내놓은 데 따른 시장 반응이다.
미국 가상자산 거래소 코인베이스에서 1비트코인 가격은 9만달러에 육박한 수준으로, 10만달러 돌파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 업비트에서 1비트코인 가격은 이날 오후 4시 50분 현재 전날보다 2.29% 오른 1억2천736만원으로 집계됐다.
미 대선 이틀 후인 지난 8일 종전 최고가인 지난 3월 14일의 1억500만원을 돌파한 뒤 가파른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알트코인(비트코인을 제외한 가상자산)도 비트코인과 덩달아 일제히 오름세를 나타내고 있다.
시가총액 2위의 이더리움은 전날보다 1.61% 상승한 480만1천원에 거래되고 있다. 지난 7월 24일(488만3천원) 이후 4개월 만에 장중 최고가를 기록했다.
도지코인, 시바이누 같은 이른바 '밈 코인'도 거래량이 폭발하고 있다.
이 중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가 띄운 도지코인의 경우 1개에 500원대로 '동전주' 수준인데도 거래 대금이 비트코인을 앞서는 기염을 토했다.
가상자산 정보 사이트 코인마켓캡이 추산하는 '가상자산 공포 및 탐욕 지수'는 이날 기준 87로, 지난 4월 이후 7개월여 만에 80선을 넘어 '극도의 탐욕' 구간에 진입했다.
그만큼 포모(FOMO·뒤처지는 공포)에 휩싸인 투자자들이 '묻지마 투자'에 나서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는 뜻이다.
국내 투자 열기가 달아오르면서 한동안 마이너스(-)를 이어오던 '비트코인 김치 프리미엄 지표'는 이날 플러스로 전환했다.
임민호 신영증권[001720] 연구위원은 "트럼프 행정부가 실질적으로 공약을 이행할 가능성이 크고, 가상자산 산업 전반이 혜택을 받을 것이라는 기대가 형성돼 가격이 오르고 있다"고 평가했다.
◇ '국장'은 울상…삼성전자 4년 4개월 만에 신저가
국내 증시는 트럼프 트레이드에서 다소 소외된 모습이다.
이날 코스피는 전장보다 49.09포인트(1.94%) 내린 2,482.57에 장을 마쳤다. 지난 8월 5일의 '블랙먼데이' 종가(2,441.55) 이후 3개월여 만에 2,500선 아래로 후퇴했다.
유가증권시장에서 외국인과 기관이 각각 2천306억원, 1천95억원을 순매도하며 지수를 끌어내렸다.
특히 반도체 업종 투자 심리가 얼어붙으면서 대장주 삼성전자가 5만3천원까지 하락, 지난 2020년 7월 10일(5만2천700원) 이후 종가 기준 최저가를 기록했다.
코스닥지수도 전날보다 18.32포인트(2.51%) 하락한 710.52에 장을 마쳤다.
이런 상황은 간밤 미국 뉴욕 증시에서 다우존스30 산업평균지수·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지수·나스닥 지수 등 3대 지수가 나란히 최고가를 쓴 것과 대조됐다.
국제금융센터는 이날 보고서에서 "시가총액 비중이 크면서 대미 수출 의존도가 높고 트럼프 신정부에서 정책 변화가 예상되는 자동차, 배터리, 반도체 업종에 우려가 집중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이 같은 충격이 장기화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경민 대신증권[003540] 연구원은 "트럼프 트레이드의 영향과 파괴력이 점차 약해질 수 있다"며 "이번 주 실적 시즌이 마무리되면서 업종에 대한 불안이 진정되고, 수급상 외국인 선물 프로그램 매수가 들어올 가능성도 크다"고 전망했다.
hanj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