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우주 산업 확대로 수요 증가…하반기 24시간 서비스 시범도입
(경주=연합뉴스) 조승한 기자 = "반도체가 패권이고 전략 산업이 되다 보니 양성자 가속기를 이용한 내방사선 평가의 문호가 점점 닫히고 있습니다. 일본도 우리나라 반도체 회사들이 평가하러 오는 걸 막고 미국도 점차 닫는 추세입니다."
이재상 한국원자력연구원 양성자과학연구단장은 7일 경북 경주 원자력연 양성자가속기연구소에서 열린 한국과학기자협회 원자력아카데미에서 "반도체 기업들은 비용이 문제가 아니라 평가에 쓸 시간을 구하는 게 과제"라며 "최근 트럼프 당선 등으로 기술 패권주의가 더 심해지면 이런 자국 우선주의 문제가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양성자가속기는 수소 원자에서 전자를 떼어낸 양성자를 강력한 전기장으로 빛의 속도에 가깝게 가속하는 장치다.
가속된 양성자를 반도체에 충돌시키면 우주방사선이나 대기방사선이 반도체에 들어가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오류인 '소프트 에러'를 일으키는 환경을 구현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안정성에 대한 인증을 받을 수 있고, 반도체 내 방사선 취약 위치나 소프트에러 발생률 등을 찾는 것도 가능해 반도체 산업에서는 필수 인증 시험으로 취급된다.
원자력연구원은 2012년 세계 3번째로 100MeV(1억 전자볼트)의 국내 최대 전류인 20mA급 양성자 가속기를 구축하고 반도체 조사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대전 연구용원자로 '하나로'와 함께 국내에서 유일하게 산업용 반도체의 내방사선성을 시험할 수 있는 국제 표준에 등재된 시설이다.
이 양성자 가속기는 초당 약 12경 개 이상 양성자를 만들어 반도체가 10년간 겪을 방사선 영향을 1초 만에 검증할 수 있다.
특히 최근 기술의 발달로 반도체 선폭이 나노미터 단위로 내려가면서 방사선 입자가 주는 영향이 커지게 되자 반도체 검사의 수요와 중요성도 함께 커지고 있다.
이 단장은 가속기를 활용하는 반도체 기업이 2017년 7곳에서 지난해 63곳으로 늘었고, 이들 기업이 연간 빔 서비스 일수 120일 중 40%를 활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양성자가속기 시험의 또 다른 축은 최근 민간 주도 우주산업을 뜻하는 뉴스페이스 기조와 함께 폭발적으로 늘고 있는 우주 부품이다.
우주는 고에너지 양성자 등 방사선 입자로 가득 차 있는 만큼 이런 환경에서 위성이나 부품이 견딜 수 있는지를 검증하는 게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이 단장은 "올해 상반기 국내 우주 기업들이 요청한 서비스 일수만 140일"이라며 이 중 20일 정도만 배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수요가 느는 만큼 국내 기업들의 경쟁도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양성자가속기 빔 서비스 이용 경쟁률은 올해 상반기 4.17대 1로 설립 이래 처음 4대 1을 넘겼다.
도입 초기 8시간 기준 200만원가량의 서비스 비용이 전기료 인상 등과 맞물려 1천만원으로 늘었지만, 경쟁률은 줄지 않고 있다.
원자력연은 늘어나는 기업체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8월부터 24시간 빔 서비스를 시범 운영하며 하루에 최대 3차례 평가 기회를 제공하기로 했다.
이 단장은 "우선 야간 두 타임 중 하나를 열고 하반기 수요를 받았더니 경쟁률이 1.6대 1 정도"라고 설명했다.
원자력연구원은 이런 수요 충족과 동시에 향후 6세대 이동통신(6G), 자율주행차 등에 쓰이는 정밀 반도체 영향 평가가 가능한 200MeV급으로 양성자 가속기 성능을 확장한다는 방침이다.
200MeV는 반도체의 최종 성능 평가 최소기준으로, 이를 통해 현재 영국이나 캐나다 등에서 수행하는 국내 반도체 기업의 평가 수요도 흡수할 수 있으리란 기대다.
시설 확장에 드는 비용은 약 2천500억원 정도로 추산되며, 수요를 맞추기 위해서는 2028년에는 사업이 시작해야 할 것으로 본다고 이 단장은 설명했다.
그는 "미국은 국내 수요만으로도 충분하니 양성자가속기 평가에 있어 해외 대신 국내 수요를 최우선으로 하라는 백악관 보고서도 발표됐다"며 "시간이 늦어질수록 반도체나 우주 패권전쟁에서 경쟁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shj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