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원 강화 등 사회적 합의 있지만 '투명인간' 취급받는 이들 존재"
"한국의 뿌리 강조하는 '재외동포 정책' 逆으로 펼쳐야"
(서울=연합뉴스) 김지선 기자 = "이제 다문화 구성원을 우리 사회 일원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건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된 것 같습니다. 다만 여전히 외국인도 내국인도 아닌 '투명인간' 취급받는 이들이 존재하죠." (곽재석 한국이주동포정책연구원장)
일선에서 '다문화시대'를 직접 경험하고 있는 전문가들은 다문화인에 대한 차별을 해소하고, 지원을 강화해야 할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졌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기존 사회보장제도에서 소외된 이웃이 적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복지의 분절과 중복을 막기 위해 사안의 시급성과 효과성을 따져봐야 할 때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다문화 인구의 대부분은 우리보다 형편이 어려운 국가에서 온 중국동포·고려인과 외국인 노동자 및 국제결혼 여성 등이다.
특히 고려인의 경우 인구 소멸에 대한 대안으로 전국 지방자치단체가 앞다퉈 '모셔오기'에 나서면서 최근 가족 단위 이주가 늘고 밀집 지역이 증가하는 실정.
하지만 이들 중 한국 국적은 극소수로 대부분 러시아를 비롯한 구소련 국가 국적을 가진 외국인으로 분류되는 탓에 복지는 상대적으로 열악하다.
다문화 가정에 제공되는 돌봄 서비스가 고려인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사례도 다반사. 고려인 10명 중 4명이 고용이 불안정한 방문취업(H-2) 비자를 갖고 있다는 통계도 이를 증명한다.
곽재석 한국이주동포정책연구원장은 "재외동포청이 출범한 지 1년이 넘었지만, 지금껏 현장에서 피부로 느낄만한 변화는 없다"며 "각종 부작용만 있고 실효성은 없는 방문취업 비자를 폐지하고, 재외동포(F-4) 비자로 단일화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부모와 함께 중도 입국한 고려인 청소년은 상황이 더 심각하다.
한국에서 태어난 다문화 가정 아이들보다 언어·문화 적응의 어려움이 크기 때문.
유기옥 이주배경청소년지원재단 소장은 "2만여명으로 추정되는 고려인 청소년 대다수가 그들끼리만 어울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실제로 이주배경청소년의 사회 적응과 정착을 돕는 '레인보우스쿨' 구성원 절반 이상이 고려인 청소년"이라고 말했다.
유 소장은 "레인보우스쿨처럼 이들이 기댈 수 있는 '학교 밖 학교'가 늘어나고, 학교와 지역사회가 긴밀하게 협력해야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임영상 한국외대 명예교수는 그중에서도 후기 이주배경청소년(만 19∼24세)이 '시한폭탄'이라고 짚었다.
임 교수는 "중·고등학교 과정에서 학업을 포기한 고려인 친구들이 아무런 희망없이 유흥업소 등 잘못된 길로 빠질 수 있다"며 "이는 곧 우리 사회에 큰 부담으로 다가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차세대 고려인들도 '내일배움카드' 같은 직업교육 훈련을 받을 수 있어야만,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고 한국 사회에 연착륙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의견이다.
다문화 정책의 패러다임을 공급자가 아닌 수요자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최영일 김포시외국인주민지원센터장은 "일부 이주민 밀집 지역은 선주민과 이주민의 인구 구성 비율이 역전됐거나 역전을 앞두고 있다"며 자신이 맡고 있는 지역인 김포를 그 예로 들었다.
숙련도가 축적됐지만 단순 노무 분야 비자로 체류 중인 외국 인력(E-9)이 많은 김포는 이에 비례해 장기 취업이 가능한 숙련기능인력 비자(E-7-4)도 늘고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김포시는 가족 단위 정착을 희망하는 노동자들의 요청에 따라 방글라데시 숙련기능인력의 배우자에게 한국어 교육을 실시하고, 이들의 자녀를 포함해 이주배경청소년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다.
그는 이처럼 중앙·지방정부뿐만 아니라 읍면동 단위에서도 지역·인구·사회적 특성에 따른 맞춤형 정책을 통해 효율적으로 재원을 배분하는 것이 시급하다며 "외국인 전담 공무원을 채용하는 등 당사자의 니즈를 세심하게 반영한 선제 대응이 보다 확대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장기적으로는 이들의 한국 정착 지원에서 나아가 다문화 구성원들의 장점을 살려줌으로써 글로벌 인재로 키워나가야 한다는 조언도 나왔다.
국내 거주 고려인과 다문화 구성원을 지원해온 사단법인 너머의 신은철 이사장은 "독일이나 프랑스처럼 다문화가 경쟁력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다문화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필요하다"며 "외국 이주민이 가진 고유의 정체성과 문화를 인정하는 것이 우선돼야 하는데 지금 우리의 다문화 정책은 '한국화'에 머물고 있다"고 지적했다
글로벌 시대에 이중 언어·이중 문화를 아는 정체성은 경쟁력이지만 '한국화' 정책은 출신국의 말과 문화를 빨리 잊게 만들어 국가적인 손실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구홍 해외교포문제연구소 소장은 우리 사회의 바람직한 다문화 정책은 한국이 뿌리라는 것을 잊지 않게 하는 '재외동포 정책'을 뒤집어서 펼치는 것이라며 "이주 외국인이 한국 사회에 잘 적응하면서 동시에 출신국의 말과 문화를 잊지 않도록 도와야 궁극적으로 대한민국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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