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임순현 기자 = "나는 내가 유대인이라거나 여자아이라는 것보다 노동계급의 일원이라는 사실을 먼저 자각했다."
미국의 저명한 저널리스트인 비비언 고닉은 공산당원인 부모 밑에서 유대 이민자 노동계급이라는 자신의 위치성을 평생 예리하게 인식하며 살았다고 고백한다. 특히 공산주의에 대한 미국인들의 '무지한 적개심'은 그에게 체증처럼 단단히 얹혀 있는 경험이었다.
이 체증을 책으로 풀어내기로 마음먹은 고닉은 미국 전역을 돌며 과거 공산주의자였던 수십명을 만나 인터뷰했다. 그리하여 마침내 처참하고 비루한 삶 속에서 경이로운 열정을 피워낸 공산주의자들을 독자들 앞에 펼쳐놓았다.
20세기 100대 논픽션에 꼽힌 '사나운 애착'(1987)의 작가 고닉이 1977년 펴낸 '미국 공산주의라는 로맨스'(오월의봄)가 47년 만에 국내에서 처음 번역 출간됐다. 미국 공산주의자들에 대한 기록이자 고닉 자신의 또 다른 자기 서사로, 새로운 저널리즘으로서 르포 문학의 탄생을 알린 역작이라는 평가를 받는 책이다.
책은 역사의 한 시기에 존재했던 급진 사상이 아니라 그 사상을 온몸으로 겪어낸 이들에 집중한다. '공산주의'가 아니라 '공산주의자'에 대한 책이라는 정체성도 바로 이 지점에서 드러난다.
또한 이데올로기의 모순을 오롯이 안고 삶을 헤쳐 나갔던 이들에게 바치는 책이기도 하다.
열렬한 페미니스트였던 저자는 변질되는 페미니즘을 보며 매일 같이 도그마(dogma·독단적 신념)에 짓눌리고 압도당했을 평범하고 일상적인 공산주의자들을 향한 연민을 떠올렸다. '친여성' 노선에 반대하는 페미니스트들이 모조리 적으로 내몰리는 현실을 지켜본 저자는 "이데올로기가 도그마를 향해 돌진하는 속도에 나는 몸이 휘청거릴 지경이었다"고 한탄한다.
책 제목의 '로맨스'라는 수사는 공산주의자들의 경험과 독자 사이의 간극을 채우려는 저자의 태도이자 방식이기도 하다. 저자는 이상을 꺾지 않고 공산주의자로 살아가는 것과 현실에 타협하는 삶 사이에서 일평생 고강도 줄타기를 했던 숱한 공산주의자들에게 진한 연민을 표한다.
그들을 인간적으로 이해할 때 공산주의자들이 처했던 도그마의 함정과 모순에도 빠지지 않을 수 있다고 저자는 강변한다.
성원 옮김. 48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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