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조3천808억원대 천문학적 규모 재산분할 놓고 1·2심서 일진일퇴…'세기의 소송'
특유재산·'노태우 비자금 대물림'·유무형 기여 등 쟁점에 판결문 수정 논란까지
(서울=연합뉴스) 황윤기 기자 = 1조3천808억원이라는 천문학적 규모의 재산분할로 SK 그룹 경영권까지 흔들게 된 최태원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 소송 상고심이 대법원에서 본격화한다. 다만 법률상 쟁점이 다양하고 양측 공방이 치열하게 전개돼 다소 길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두 사람의 지난한 가정사를 두고 항소심 법원이 200쪽에 걸쳐 내놓았던 각종 판단과 법리적 쟁점에 대한 다툼도 한층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8일 법조계에 따르면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이혼 소송 상고심을 심리하는 대법원 1부(주심 서경환 대법관)가 이날 업무 시간 종료 시까지 간이한 방식의 판결인 심리불속행 기각 판결을 내리지 않으면서 사실상 추가 심리에 돌입하게 됐다.
대법원은 항소심 단계까지 제출된 방대한 기록과 최 회장 측이 제출한 500쪽의 상고이유서, 노 관장 측의 반박 서면 등을 충분한 시간을 갖고 검토한 뒤 추후 정식 기일에 판결을 선고할 것으로 보인다.
주요 쟁점에 대한 판단기준을 제시한다는 측면에서 대법관들이 나눠 맡은 소부에서 판단하지 않고 모든 대법관이 참여해 판단하는 전원합의체로 넘어갈 가능성도 거론된다.
◇ 최태원 SK 주식도 재산분할 대상?…"특유재산 분할 안돼" vs "판례 무시"
최대 쟁점은 최 회장이 보유한 SK 주식(옛 대한텔레콤 주식)을 재산분할 대상에서 제외되는 '특유재산'으로 볼 것인지다.
특유재산이란 부부 한쪽이 혼인 전부터 가진 고유재산과 혼인 중 자신의 명의로 취득한 재산을 말한다. 민법은 '부부별산제'를 채택하면서 특유재산은 부부가 각자 관리·사용·수익하는 재산으로 이혼하더라도 분할 대상에서 제외한다고 정한다.
앞서 2심을 맡은 서울고법 가사2부는 SK 주식을 최 회장의 특유재산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SK의 성장에 노 관장의 부친인 노태우 전 대통령의 '뒷배'가 작용했으므로 사실상 노 관장의 기여로 인정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재판부는 최 회장 명의 재산 3조9천883억원을 분할 대상으로 보고 총 1조3천808억원을 노 관장에게 넘겨주라고 판결했다.
최 회장 측은 그러나 SK 주식은 노 전 대통령과 무관하게 형성한 특유재산이 맞고, 노 관장이 단순히 협력하거나 내조했다는 이유만으로 재산분할을 받아선 안 된다는 입장이다.
SK 주식은 최 회장이 부친으로부터 증여받은 자금으로 인수한 것이어서 명백한 특유재산으로 분할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1심 대비 20배나 상승한 분할액수도 기존 관례를 크게 벗어난 판단이라는 주장이다.
최 회장 측은 항소심 법원의 해석을 따를 경우 "향후 이혼소송에서 고액 자산가들이 재산을 방어하기 어려운 상황을 초래할 수 있으며 별산제의 기본 원칙을 훼손할 위험이 있다"고 상고이유서에서 주장했다.
반면 노 관장 측은 최 회장이 재산분할 제도의 취지와 우리 법 및 판례의 태도를 무시하고 있다고 맞섰다.
노 관장 측은 기존 판례와 재판 실무가 혼인 중 취득한 재산을 부부의 공동재산이라고 전제하고 각자 기여분에 따라 재산을 분할한 점에 비춰볼 때 항소심 판결에 문제가 없다는 주장이다.
◇ '노태우 비자금' 사실인정도 문제…판결문 수정 논란도
특유재산에 관한 법적 다툼은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논란으로 이어졌다.
노 관장 측은 항소심 재판 과정에서 모친인 김옥숙 여사가 작성한 메모를 제출했다. 이 메모는 김 여사가 1998년 4월과 1999년 2월에 노 전 대통령이 조성한 비자금을 기재한 것으로 '선경 300억원'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2심 재판부는 이 메모와 1991년 선경건설(SK에코플랜트 전신) 명의 약속어음을 근거로 노 전 대통령의 자금 300억원이 최 회장 부친인 고(故) 최종현 선대 회장에게 흘러 들어갔다고 봤다. 이 돈이 SK그룹 성장의 종잣돈으로 쓰였고 노 관장의 기여도 인정할 수 있다는 논리다.
최 회장 측은 사실무근이라고 맞선다.
약속어음은 돈을 받았다는 증빙이 될 수 없고, 메모의 내용은 어떠한 실체도 없으며, 사실로 입증된 것도 전혀 없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노 관장의 기여는 인정할 수 없다는 논리다.
특히 '300억 비자금'의 태동은 노 전 대통령이 기업들로부터 받은 불법 뇌물에 기인한 것으로, 뇌물 수수는 대법원 판결로 확정된 바 있다. 따라서 비자금의 귀속을 인정할 경우 법원이 불법수익의 '대물림'을 인정하는 모순된 결과를 낳는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법원이 대를 이은 비자금의 소유 권한을 인정할 것인지를 둘러싼 공방이 예상된다.
이 사안을 두고선 가사소송에서의 입증책임과 증명의 수준에 관해서도 양측의 다툼이 있다.
판결문의 경정(사후 수정) 범위도 대법원의 심리 범위에 포함된다.
2심 재판부는 판결을 선고하고 17일 뒤 사후적으로 내용을 수정했다. 최종현 선대 회장 별세 직전인 1998년 5월 대한텔레콤의 주식 가치가 주당 1천원이었는데 이를 100원으로 잘못 적었다는 이유에서다.
재판부는 "중간단계의 사실관계에 관해 발생한 계산오류 등을 수정하는 것"이라며 "최종적인 재산분할 기준시점인 올해 4월 16일 기준 SK 주식의 가격인 16만원이나 구체적인 재산 분할 비율 등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칠 수 없다"고 했다.
반면 최 회장 측은 판결문 수정에 따라 최 선대 회장과 최 회장의 주식 가치 상승 기여분이 달라지므로 1조3천808억원이라는 재산 분할 판결도 잘못됐다는 입장이다.
이 같은 계산 오류가 재산분할과 위자료 규모를 도출한 실제 판결에 영향을 미쳤다고 인정되면 대법원은 판결을 파기할 수 있다.
양쪽 대리인단은 이 같은 쟁점을 두고 앞서 제출한 상고이유서의 범위 안에서 참고서면 등을 제출하며 다투게 된다.
최 회장은 대법원 선임·수석재판연구관 등을 지낸 홍승면 변호사와 법무법인 율촌의 이재근 변호사 등을, 노 관장은 감사원장과 국회의원을 역임한 최재형 변호사 등을 소송대리인으로 선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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